내 인생의 전부였다.

by 자명

가끔 내게 언제부터 그림을 했는지 묻는 분들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5살~7살에는 유치원대신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초등3학년부터 또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초등 3~4학년에는 집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고 연필소묘를 배우기 시작했다. 선연습을 하고 도형들을 그리고, 수채화도 배웠다.

5학년에는 학원을 하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학원은 6학년때까지 다녔는데 석고소묘, 정밀소묘, 정물수채화, 풍경수채화, 구성디자인을 배웠다.

당시 난 서울에 살고 있었고 예중을 가고 싶었지만 아빠가 지방으로 가게 되어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중1~중3까지 동네 미술학원을 다녔다.

석고소묘와 정물수채화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중3땐 예고에 가고 싶었는데 아빠의 반대로 인문계고를 갔었다. 고1였을 때 공부 안 하고 그림만 그려서 학교성적이 떨어진다고 아빠가 학원을 그만두라고 하셔서 그만뒀다.


고1 어느 날,

학교 미술시간에 아그리파 석고 소묘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그리파 석고가 반가웠다.

머릿속에도 손에도 기억하니까 예전에 하던 대로 여백을 구분하는 선을 그려 넣고 십자 선도 그려 넣고 연필을 들고 기울기를 재고 종이에 연필을 대는데 연필 끝에서부터 손끝을 타고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나 그림 다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집에서 단식투쟁을 하면서 아빠한테 매달려서 다시 학원을 갈 수 있게 됐다. 입시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예비반 수업이라 다시 소묘와 수채화를 배웠다. 그러다 고2쯤에 디자인반으로 옮겼고 발상과 표현 시험 준비를 하게 됐다.

수채물감, 연필, 스틱파스텔, 연필파스텔 등으로 그렸다. 고3방학 때는 아침 8시~밤 10시까지 그림을 그리느라 학원 근처에서 고시원생활을 했다. 공용샤워실이 있고 창문도 없는 작은 방이지만 상관없었다.


고3 입시가 끝나고 미대를 갔다.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들어갔다. 수능을 망쳤기 때문에 속상했다.

학교는 학부제여서 1학년때는 연필소묘, 서양화(유화), 한국화, 조소, 철사공예 등 여러 가지를 배웠다. 1년을 다니고 휴학을 했다.

휴학 1년간은 방황하며 다른 여러 일들을 했다. 그러다 다음 해에 한예종 시험을 준비하게 되어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 또 고시원 생활이 시작됐다.

서울에서의 1년이 아마도 내 인생에서 그림을 가장 열심히 많이 그리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학원수업시간은 7시~10시인데 나는 수업시간 외에도 계속 학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고시원에는 씻을 때만 갔고 잠도 그냥 학원 바닥에서 점퍼를 덮고 잤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림을 그리다가 졸리면 잠깐 자는 식으로 잠을 쪼개서 잤고, 밥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 어떤 날은 썰지 않은 김밥을 왼손에 잡고 먹으면서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시험 날짜는 다가오는데 내 맘대로 안 되는 손이 답답해서 거의 매일 울었다. 손에서 피가 나면 더 서러웠다. 피가 나는 손은 밴드를 감고 아픈 허리와 에는 파스를 붙이며 그렸다. 진짜 열심히 했었다.


1차 시험은 실기+영어시험인데, 아쉽게도 시험은 영어 때문에 떨어졌다. 탈이 나가있었는데 친구가 말했다.

"더 좋은 길이 있어서 그리로 가라고 그러는 걸 거야."

그 말이 참 힘이 되었다.


다시 내려와서 다니던 학교에 복학을 했다.

4학년까지 그냥 학교-집만 다녔다. 4학년 2학기에 잠깐 디자인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학교를 다니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했고 계속 프리로 활동했다. 2015년에는 교수님이 운영하는 일러스트학원을 다녔다. 그곳에서 수채물감으로 그리는 동화일러스트를 배웠다. 그림을 더 배우고 싶어서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 원장님이 계시던 일러스트학원을 6개월 더 다녔아크릴화, 수채일러스트, 동화일러스트, 페인터를 배워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산그림 정회원이 되었다.

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내 그림을 그리고 굿즈를 만들고 페어에 참여도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5년 차까지는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울고 싶지 않아서 지난 시간들은 잘 떠올리지 않는다.

영화 '위플래시'를 보면 드럼을 열심히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가 나는 손을 차가운 물에 담가가면서 스틱을 계속 잡는다. 나는 그 장면이 서울에서 학원 다닐 때의 내가 생각이 나서 슬펐다. 영화 후반부에는 연주하러 가야 하는데 주인공이 교통사고로 다쳤다. 피범벅이 된 주인공을 보며 나는 병원이 떠오르지 않고 '얼른 일어나서 스틱 잡고 뛰어'를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주인공이 피범벅인 상태에서도 스틱을 잡고 뛰는 모습에 나는 안도하면서도 눈물이 나서 울었다.


만약, 내가 그림을 들고 있는데 비가 오면 나는 비를 맞아도 그림에게 우산을 씌운다. 그림은 살아야 한다.

나는 이제 올해로 프리 13년 차 예술인이고 38세가 되었다.(만 나이로는 36세)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속에서 그림을 빼면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림을 놓을 수가 없다.


어떤 작가님은 내게 "아니 도대체 전생에서 그림에 한이라도 맺힌 거 같아요."라고 하시던데, 그런가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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