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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Oct 12. 2023

스무 살 때의 나는 무엇이었을까?

브런치에서 네이버 블로그 이야기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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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20번째 생일이 되었다며 각종 정보를 자꾸 알려 주었다. 가장 처음으로 등록된 포스팅, 가장 많은 하트를 받은 포스팅, 가장 많은 장소를 태그한 블로그 등 하나씩 들어가 보다가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이런 역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어느 순간 삭제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이 땅에 남아 여전하게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게 고맙고 기뻐서였다. 그러면서 내 블로그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떠올려 보았다.


기억하기로 2004년에 처음 블로그를 만들었던 것 같다. 만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건지 모르겠다. 네이버 아이디를 만들면 블로그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니까, 사실은 블로그가 아닌 메일 계정을 만들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리고 그때는 한창 싸이월드에 빠져 살 때라(왜 다들 아시잖아여 찡긋) 네이버 블로그로 뭘 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다 싸이월드에 살고(?) 있었으니까. 도토리 사서 스킨 깔고 배경음악 넣고 일촌평 쓰고 파도를 타고... 네, 여기까지. (제발)


문득 궁금해져서 내 블로그의 첫 포스팅이 언제였고 그 내용은 무엇이었나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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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의 제목은 <나의 사랑 허공에의 질주>로, 2006년 4월 28일 23시 30분에 올렸다.


허공에의 질주. 좋은 영화다. 중3 때 처음 보고 충격받았던 영화. 리버 피닉스에 빠져 <아이다호>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그 여파가 꽤 오래갔나 보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잠잠하다가 2006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포스팅을 시작했다.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들을 싹 모아서 하나씩 업로드한 게 그해 여름. 그 첫 글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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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다스림은 마땅히 가을 기운을 띠어야 하고

처세는 의당 봄기운을 띠어야 한다.

                                                                                     - 장조, 주석순의 <내가 사랑하는 삶> 중 -


한양대 교수 정민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면, 나 자신에게는 가을바람처럼 매섭고 엄격하게,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화창하고 따스하게 대할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반대로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글귀이다. 자신을 다스림은 가을 기운을 띠어야 한다. 가을 기운. 그 맵고 차가운 그러나 쾌청한 기운. 나는 탁하고도 탁하다. 나는 나에게 너무 너그러워. 다른 이들에게 좀 더 널리 베풀 순 없을까. 몇천 년 전의 사람들이 벼루에 먹을 갈아 썼을 이 글들이 새 천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경종을 울린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컴퓨터에서 납작이 눌린 이 글자들이 옛 묵향을 전할 수 있을지?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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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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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

스무 살 크리스마스 이브에 왜 이런 글을.

연애나 할 것이지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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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 줄까.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 '스무 살답게' 좀 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맨날 고전이다 뭐다, 야학이다 뭐다 하며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말고 스무 살답게. 그런데 스무 살다운 건 뭐지? 그렇다면 그때의 나는 스무 살답지 않았나?


아니다. 나는 무척이나 스무 살다웠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대로 야학 동아리에 들어가 야학 교사가 되었고, 동서양 고전을 읽으며 토론도 했다. MT도 갔고, 여름에는 자전거로 제주도도 일주했다. 에세이를 써서 공모전에 내고 공부도, 학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어설펐지만 사랑도 했다.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데이트도 많이 했다. 그 모든 시간이 내 스무 살이었고 나는 충분히 스무 살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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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들이 아주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블로그를 뒤적이니 불과 몇 분도 안 되어 어제처럼 살아온다. 오래된 기록이 주는 선물일까. (다시 생각해 보니 좀 흑역사 같기도 하고) 스무 살이었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또 있다.


너무 비장하게 살지 마.


그렇다. 스무 살의 나는 비장했다. (가볍게 살면 죽는 병에 걸렸던 시절) 세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웅 심리야 뭐야...)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오래 살았다. 그래서 교육사회학을 공부하고 시민단체에 들어가고 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글도 많이 썼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10년 가까이 책을 읽고 토론도 했다. 돌이켜 보니 참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며 살았구나 싶다. 그 치기 어림이 때로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다. (솔직히 허세도 있었지 뭐) 하지만 그 시절이 아니면 또 언제 그런 마음을 품고 살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내가 애틋하기도 하다. 뜨겁게 매일을 불태우며 살았던, 나의 이십 대와 스무 살에게 잘했다고 진한 포옹 한번 해 주고 싶다. 근데 이제 귀에 속삭여 주어야지.


그래도 그 비장함과 어깨 뽕은 좀 내려놔. (사실 어깨는 오히려 좀 굽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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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이십 년을 건너왔다. 두 번째 스무 살, 뭐 이런 말도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마흔이지 뭐. 마흔이 되니 참 좋다. 의도치 않게 한 살 깎이긴 했지만 나는 40대가 된 내가 좋기 때문에 그냥 마흔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누군가 '오십은 더 좋다'라고 한 말을 듣고 두근대며 기다리고 있다. 내가 거쳐 온 시간들 중 그 어디로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끔 90년대가 그립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있다는 것을.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채로 남겨 둘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이 작은 공간이 모두 품고 있다는 게 참 고맙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래서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그저 하루하루 기록할 일이다. 스무 살의 나도 그랬다.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오늘 하루를 살고, 쓰고, 쓰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썼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뭐야, 또 비장해진 느낌인데. 그렇다면 이건 그냥 내 성향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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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는 사실이 문득문득 놀랍다. 앞으로 이십 년이 더 흐르면 또 어떨까. 2043년의 나에게 미리 물어본다. 육십의 나는 조금 덜 비장한지. 조금 더 행복한지. 조금 더 너그러운지. 조금 더 깊어졌는지. 쓰고 보니 바라는 게 참 많기도 하다. 그냥 매일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며 평안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살고 있기를 바란다.


바람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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