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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Oct 26. 2023

그 일은 때로 외롭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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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미래를 그리는 일이 시들해졌다. 그건 매일의 삶이 내 눈과 목소리를 빼앗고 내 귀를 닫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대로 살아가면 삶의 끝 날에 나는 무엇과 마주하게 될까.  - 2020년 6월 27일 오전 10:10


모 대학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던 시절. 휴일 출근 수당으로 아빠 엄마께 최상급 고기를 사 드리고, 얼마 만인지 모를 자식 노릇을 하며 살았다. OTT도 세 개나 가입했다. (그때 유튜브 프리미엄의 강을 건넌 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 다음 달은 또 어떻게 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좋았지만 왜인지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그해 내내, 매일을 사는 일이 슬프고 힘들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이 드는지 잘 몰랐다. 처음에는 서른일곱에 다시 신입이 되어서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직무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이런 메모를 남겼다. 휴대폰을 바꾸고 며칠 지나지 않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래서 이 글이 내 휴대폰 메모장의 첫 글이다. 내친김에 마지막 메모는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바로 어제였다. (기억력 무엇)


내가 아닌 것에 가담하지 않는다. - 2023년 10월 24일 오후 11:52


어젯밤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적은 글이다. 그는 일과 소설을 병행하다가 어느 날 결심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소설만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전업 소설가가 된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에 이르는 시기에 그는 굵직한 장편을 여럿 써 냈다. 그 시기에 라이팅 하이(Writing High, 러닝 하이와 비슷함)도 여러 번 경험했다고 한다. 오로지 글과 나만 두고 종일 글 생각만 하며 미친 듯이 써 내려갔던 그 시간들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2013년 하반기와 2014년의 고독과 집중력, 몰입감은 여전히 그립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무척 로맨틱한 시기이기도 했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구분이 명확했고, 내가 아닌 것에 나는 가담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아주 잘 벼린 칼날이 된 듯했다. 현대인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감정이고 기회였다. 

-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87p 中  


내 눈길을 잡아챈 문장은 마지막이었다. '현대인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감정이고 기회였다'라는 말을 읽고 책을 탁! 덮었다. 너무 좋아서였다. 무척 부럽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살면서 몇 번이나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온전히 나로 사는 경험. 겉으로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쉽지 않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내가 어떤 시공간에 있을 때 비로소 나다울 수 있는지를 또한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쓰면, '왜 이렇게 '나'에 집착하는가? 자아 비대증도 아니고. 그놈의 '나'와 '나' 그리고 '나' 좀 버려라'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를 잊고 나를 버리는 일도 우선 전 단계가 선행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나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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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사는 일에는 하등 지장이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이런저런 이름표를 많이 붙여주기 때문이다. 그게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때로는 그쪽이 훨씬 편하기도 하다. 애써 나를 내 보이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구 엄마와 아빠, 남편과 아내, 며느리와 사위. 일을 하면 또 그 일터에서의 직함이 붙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밖에서 붙여준 이름표를 으레 한두 개쯤은 달고 살게 된다. 많은 사람은 십여 개도 넘지 않을까. 나도 오랫동안 그 이름표들에 기대어 살았고 지금도 내 시간의 일부는 당연히 이에 기댄 채 흘러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어렵고 사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는 동안 내게도 이런저런 이름표가 많이 붙었다. 직업과 직장을 여러 번 바꾸면서 덩달아 이름표도 자주 바뀌었다. NGO 활동가, 연구원, 회사원, 대표, 입학사정관, 강사, 교사... 모두 내가 머물렀던 공간들에서 세상과 사람들이 붙여 준 것이다. 내가 무척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들도 있고, 좋았지만 그만큼 힘들어서 나오자마자 얼른 떼어 버린 것들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들 중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오래오래 달고 싶었던 이름표가 있는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오래오래 달고 싶었던 이름표?


이런 시절에, 이런 사회에서 아직도 그런 걸 바라면서 찾고 있다고? 아직 정신 못 차렸구만?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야? 이제 그만 삐딱한 척하고 적당히 포기하고 살아.


우다다다 따라붙는 말들은 내가 직접 들었거나 건너건너 들은 말들이다. 주로 멀지 않은 사람들이 전해 온 말들이라는 게 포인트이다. 나도 잘 안다.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 얘도 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너무 애쓰지 말고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졌다. 일단 그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의 삶이 나는 그렇게 편해 보이거나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물리적으로 정말 불편하거나 안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한테는 별로 그렇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연하다. 나한테 좋았다고 해서 타인에게도 좋을 것이라 여기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못해 위험한 생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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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살면 된다.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선을 해하지 않고 법을 지키는 선에서 그냥 각자의 삶을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이지. 서로 다르기를 원하면서 막상 다르면 이상하게 못 견디지. 비슷하지 않아야 하는데 비슷하지 않으면 화가 나지.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충고를 하고 조언을 한다. 가르침을 주고 교훈을 남긴다. 대체로 가까워서, 아끼니까 그렇다고 한다. 아마 나도 무수히 그래 왔을 것이다. 아니, 그래 왔다.


그렇다. 나도, 직업병이 있다 보니 자꾸 남들에게 답을 주고 싶어 한다. 그게 답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과한 리액션 병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야말로 '나한테 좋았다고 해서 남들에게도 좋으리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좀 버려야겠다. 잘 안될 때가 많지만 노력해 보아야지. 한국에서 나고 자라, 이미 형성되어 있는 '어떤 자기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지만(사실 불가능)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게 아닐까. (어김없는 반성과 다짐, 젠장!)


그러니까, 서로가 너무나도 가깝고 가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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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들은 이제 좀 멀어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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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방치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면서 자기 자신의 궤도를 도는 것이다.


그 일은 때로 외롭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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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표를 다 떼어 버렸을 때 나는 무엇일까.


내 이름도 나는 아니고, 내 직업도 내가 아니며, 내가 사는 곳, 내가 입는 옷, 내가 나온 학교, 내가 가진 명함 역시 나는 아니다. 외부의 그 무엇도 나는 아니다. 그렇다면 장강명 작가는 무엇으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했을까. 수많은 시간과 공간 속에 나를 던져 본 경험으로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아닐까. 내가 누구이고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드디어' 깨달아 버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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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지만

그 일은 때로 외롭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여담]

어제 아침에 이 글을 시작해 오늘에서야 겨우 마무리했다. 지우려다가- 그냥 두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런 날이 너무 많은 게 문제지만)


사흘 내내 사람들을 만나고 오늘 '초코'와 '커피'를 보러 시골집에 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양평 용문사에 갔더니 온통 가을이다. 아빠는 기분이 좋아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우시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비가 흩뿌린 길 위를 달려 도착하니 엄지가 뛰어나왔다. 저 안쪽에서 강아지들이 낑낑댄다. 조심조심 품에 안으니 폭신하고 따끈하다. 일주일이면 눈을 뜬다고 해서 성급하게 내려왔더니 아직 눈을 안 떴다. 아빠 엄마 나 셋이서 궁금해하며 들여다보다가 결국 '강아지 눈 뜨는 시기'라고 검색해 찾아보았다. 일주일이 아니라 2주란다. 크흡. 마음이 너무 앞섰다. 그래도 내일 또 나가 보아야지. 밤사이 얼마나 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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