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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Oct 22. 2023

하루를 채우는 온전한 순간들

주말 동안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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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선생님은 지난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며 처음 만났다. '경청'이라는 단어가 사람이 되면 꼭 선생님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는 사람의 말을 온 마음을 다해 듣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말이건 같은 교사의 말이건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다정히 물어오곤 했다. 한 톤 높은 밝고 경쾌한 목소리, 활짝 웃는 얼굴. 선생님이 나타나면 그 자리가 환해졌다. 말 그대로 꽃과 같은 사람.


1학기에 우리는 교내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2학기에는 같은 부서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1학기 때 나는 교사도 아니고 시간강사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독서모임에 들어가 발제까지 했는지. 그래도 참 즐겁고 좋았다. 그 자리에서 어쩌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감사하게도 많은 선생님들께서 첫 책을 읽어 주셨다. 그때 L 선생님도 책을 읽고 따로 연락을 주셨다. 책을 읽고 있는 사진과 함께.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맞은편에는 지금의 신랑님이 된 그분이 앉아 계셨고 직접 사진을 찍어 주셨다고.


선생님, 저 어제 친구 만났는데 제가 얘기하다 말고 샘 책을 꺼내 읽었잖아요!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하하하 웃었다. 그게 데이트 시간이었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런 마음들이, 참 고마웠다. 모든 글은 읽어주는 누군가로 인해 조금 더 반짝이고, 조금 더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므로. L 선생님은 이번 두 번째 책 사진도 보내 주셨다. KTX로 이동하는 중에 읽었는지 창밖으로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진은 물론 그분이 찍어 주셨으리라. 어떤 한 사람의 소중한 순간에 나의 글들이 자리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 내게 큰 힘을 주는 것도 드물다.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일까. 아니라면, 좀 더 노력할 일이다. 좀 더 진실되게, 마음을 다해 살아볼 일이다. (이만 오천 번째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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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L 선생님의 결혼식이었다. 나는 올해 초 학교를 나오기 전에 먼저 그 소식을 듣고 꼭 가야지 다짐했던 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가면 또 오지랖일까 싶어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던 여름날, L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한 단톡방으로 초대했다. 단톡방 이름을 보고 헉!! 하고 육성으로 놀랐다.


엄태주 작가님 출간 기념 모임


아니 이게 웬 황송해서 세 번 구르고 다섯 번 펄쩍 뛸 일이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퇴직하신 원로 선생님 세 분,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 부장님이 또 두 분 그리고 나였다. 감사와 황송을 넘어 진땀이 다 났다. 무릎을 꿇고 앉아 땀투성이 메시지를 간신히 보내고 어쩌면 좋아를 연발했다.


출간 기념 모임은 정말로 진행이 되었다. 학교 근처 맛난 식당에서 근사하게 저녁을 먹고 차까지 마시고 헤어졌다. 아침부터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이 그날 밤까지 쿵쿵댔다. 그만큼 좋았고 감사해서 집까지 삼보일배로 갈 뻔했다. (갔어야지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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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우리들은 L 선생님의 결혼식에서 또 만나자고 입을 모았다. 선생님은 성당 결혼식이라 시간이 길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나는 그때 재차 다짐했다. 가야지. 꼭 가야지. 겨우 1년 남짓 일하고 너무 주제넘게 여기저기 다 얼굴을 비추는 것 같지만- 언젠가 <환대의 기억>이라는 글에 썼듯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부끄러운 마음도 좀 접어 두자고 마음먹었기에.


L 선생님의 결혼식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모자랄 시간이었다. 가을답게 쾌청했고 성당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하객들의 얼굴도 빛이 났다.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 부부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식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과 식사를 한 후 자리를 옮겨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면서도 아쉬워 다음을 기약했다.


여러 곳을 떠돌며 살 때 제일 아쉬웠던 것은- 한 곳에서의 연이 그치고 다음으로 건너갈 때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이었다. 인연이 다하면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게 잘 안되었던 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서는 떠나온 곳과 나 사이에 연꽃을 띄우듯 살 줄도 알게 되었다. 그 연꽃을 따라 건너온 아름다운 누군가가 있다면 반갑게 손을 내밀자. 그리고 때로는 나도 건너가 보자. 그랬더니 아주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도 사람만은 남아 오늘날까지 큰 힘이 되고 있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셨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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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 몇 권을 정리하고, 이언진의 시문집 <불타다 남은 시>를 읽었다. 원제는 <송목관신여고>이다. 이언진은 조선 후기 역관으로 26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에 자신이 써 온 모든 원고들을 다 불태웠다고 한다. 부인이 간신히 그러모은 시편들이 일부 남아 <송목관신여고>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온다. 이를 한글로 옮겨 정리한 책이 <불타다 남은 시>. 어디에선가 이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겨 어렵게 책을 구했다. 자신이 평생 써 온 글들을 불태울 때의 마음, 이란 건 어떤 걸까. 그려 보니 마음이 짠하게 아프다.


연암 박지원과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언진의 실력을 높이 사 마음속으로 몰래 아꼈으나, 언진이 너무나 어린 나이였기에 기세를 좀 누르려는 마음으로 곁을 주지 않고 시문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언진의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며 글을 남겼다고. 이해가 된다. 너무 아끼면, 오히려 쓴소리를 하게 되는 것. 쓴소리를 들으면 샐쭉하게 돌아설 것이 아니라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살아갈수록 쓴소리를 해 주는 사람이 줄어든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귀하게 여기며 곁에 두어야 할 것. 옛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비로소 정신이 좀 든다.


아무래도 이 시대의 빠른 속도가, 나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든 맞추어 살아야겠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불타다 남은 시>를 책으로 엮은 출판사와 옮긴이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저런 연구를 왜 하나, 이 시대에 저런 것이 다 무슨 쓸모인가 그런 눈길들에도 아랑곳 않고, 조용히 당당한 자세로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 세상에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언젠가 한 글에서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이 세상에 쓸모 있는 것들만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쓸모없어졌을까?


그런 마음이다. 모두 이유가 있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담]

엄지의 아가들 이름은 '초코와 커피'로 정해졌다. 아직은 둘 다 '초코'에 가깝다. 자라면서 조금 더 옅은 색을 띈 녀석이 '커피'가 될 예정이다. 오늘은 아직 눈도 못 뜬 아기 강아지들 사진으로 마무리를 대신해 본다.

누가 초코, 누가 커피가 될까_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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