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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Feb 07. 2024

겨울이 끝나간다

그리고 세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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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일찍 운동에 나섰다. 무릎이 좀 삐걱대나 싶어서 조금만 뛰려고 했는데 아시안컵 관련 뉴스를 보다가 20분 정도 뛰었다. 경기를 보지 않아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도 몰랐다. 많이 아쉬운 시합이었나 보다.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걸까.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분노하고, 어떤 장면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건네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동을 마무리했다.


집에 오니 책이 도착해 있었다. 어제부터 손꼽아 기다렸는데 나간 사이에 도착했나 보다. 서평 공모전에서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샀고 우선 세 권이다. 무엇을 살까 고민이 많았는데 직접 받아 보니 무척 만족스럽다. 연휴 동안 열심히 읽고 정리해야겠다. 구입한 책은 다음과 같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

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모두 보관함에 넣어 놓고 여러 날 묵힌 책들이다. 집에 (아직 안 읽은) 책이 많아서 어느 순간 책 사는 일을 좀 망설이게 되었는데 - 그런 것치고는 홍콩에서도 꽤 많이 샀... - 책에 밑줄을 쭉쭉 긋고 끼적이며 읽지 않으면 마음에 차지 않아서 말이다. 빌린 책들은 남의 집 구경하듯 조심스러워서 살금살금 읽게 된다. 중간중간 붙인 인덱스도 다 떼어야 해서 반납할 때면 이래저래 아쉬운 마음이 크다.

책 샀습니다!! 하하하


요즘은 개성 있는 책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대뜸 내용부터 보았다면 근래에는 표지와 폰트, 판형과 종이의 재질까지 괜히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이 책 한 권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표지 그림 하나에도, 제목에도 시선이 오래 머문다. 책들 중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의외로 두꺼워서 놀랐고,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은 언젠가 우연히 보고,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가 엇! 하고 주문했다. 집에 을유문화사의 책들이 여럿 있는데, 이 같은 느낌의 책은 처음이라 자세히 살폈다. 흐릿하게 번진 듯 블러 처리된 글자들이 내 눈의 문제인지 무엇인지 몰라 오래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오래, 응시하라는 뜻 같았다.


그중 <스토너>를 제일 먼저 펼쳤다. 다음 주 초에 있을 독서모임의 선정 도서이기에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극찬한 책이라 해서 궁금했는데 과연! 1장만 읽었는데도 내심 놀랐다. 모처럼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난 듯하다. 한 인간이, 어떤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 눈 뜨는 순간을 이토록 세련되고 담담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니! 가능하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스토리가 진행되기 전이지만 이 작품은 아마도 스토리보다는, 내면의 묘사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겨우 1장 읽고 말이 많군요. 다 읽고 독서 에세이란에 서평을 써 봐야겠다. (*서평이 궁금하신 분들은 '네이버 블로그'에도 놀러 오세요, 라고 브런치에서 당당하게 블로그 홍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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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앞둔 수요일. 흐린 하늘이 고요한 하루였다. 거리를 걸을 때 설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가게마다 내어 놓은 과일 상자, 명절 선물세트를 든 사람들의 종종걸음. 명절에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묻는 친구들의 메시지.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었는데 조금 전에 결정했다. 잠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속히 내 자리로 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쓸 참이다. <스토너> 같은 작품들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 좋은 글들은 너무나 많고 시간은 빠르고 삶은 참으로 순간인 듯하다. 물론 얼마 전 형신은 '삶은, 계란'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지만. 그래서 점심으로 계란을 삶아 먹었다. (네?)


저녁에 K를 만나 와인 바에 갈 예정이었는데, 사정으로 못 만났다. 너무 아쉬워서 K의 퇴근길을 비대면으로 동행하며 전화 통화로 대신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고 즐겁다. 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재미있게 살자고, 많이 놀고 좋아하는 일들을 하자고 다짐하며 끊었다.


그래, 노는 일은 참 중요하다. 홍콩과 시즈오카를 흘러 다니며 새삼 노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멍하게 있는 시간, 상념에 젖는 시간 그러니까, 내가 나와만 있는 시간. 이 시간들이 나를 세우고 살리고 결국에는 나아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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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특강을 진행하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즐겁게 준비해 볼 작정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글을 이야기하고 책에 대해 나누는 시간은 내게 최대치의 행복을 선물해 준다. 힘겨운 순간들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하다. 이 마음을 잊지 말자.


겨울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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