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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Jan 23. 2022

조금 어두워도 나쁘지 않다

화장실 등 


화장실 등 두 개 중 하나가 깜박거리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 즈음이다. 이전 사람이 인테리어를 하며 달아놓은 등이라 나는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런 건 어떻게 바꾸지? 의자를 놓고 올라가 이리 당겨 보고, 저리 당겨 보고 하다가 결국 손을 놓은 채 시간이 흘렀다. 


깜박거림이 조금 심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은 괜찮고, 또 어느 날 심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어느 날 괜찮아졌다. 마치 내가 보내는 하루처럼. 그런 하루들에 익숙해지듯 나도 깜박깜박 숨이 죽으며 사그라드는 불빛에 익숙해졌는데, 어제 드디어 나갔다. 동서로 나뉜 두 개의 등 중 서쪽 등이 완전히 나가 버린 것이다. 


어?


근데 생각보다 괜찮다. 한쪽에 내려앉은 어둠이 반갑고 편안하다. 서쪽에서 이를 닦으며, 동쪽을 바라본다. 눈이 너무 부시다. 나 필요 이상으로 밝은 세상에 살고 있었는지도 몰라. 세수를 하고 잽싸게 다시 서쪽으로 도망쳐(그래 봤자 반 걸음) 물기를 닦았다. 역시 편안하다. 뭐야, 동쪽의 불빛만으로도 충분했네. 그렇다면, 당분간 이렇게 지내볼까. 


어둠이 있어야겠네. 삶에도. 그리고 화장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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