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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r 05. 2022

1년 만의 출근

3월 새 학기 첫 출근 풍경에 관한 짧은 기록


어제 1년 만에 출근했다.


전날 , 괜히 가슴이 쿵쿵 뛰고(원래 쿵쿵 뛰는 것이지만서도), 손에 땀도  흠뻑 나는  같았다(원래 다한증이 있지만서도). 잠들기 전부터 알람을  개는 맞추어 두었다. 5 40, 5 50, 6, 6 10... 이런 정성을 잠자는  들이면 꿀잠을  텐데 말이다. 잠귀가 밝아 보통  알람에 번뜩 깨지만 혹시  일어날까 , 혹시 다시 잠들까 , 혹시  들을까  하는 그놈의 '혹시나'  때문에  난리. 결국 어둠 속에서 휴대폰이 요동쳤을  언제나 그랬듯  알람에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퇴사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A ㅏ... 출근해야 ㅎ ㅏ 는구ㄴ ㅏ...


왜죠? 1년 만의 출근이면 기쁘지 않나요? 학교잖아요? 아이들 만나는 거 즐겁지 않나요? 보람되잖아요? 다 맞는 말이다. 1년 만의 출근이라 기쁘고, 학교라 감사하고, 아이들 만나는 거 즐겁고 보람도 있고... 그런데 그냥... 그냥 아침에 일어나는 건 그 모든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과 보람에 앞서 일단 힘들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전날 괜히 떨려하다가 새벽 1시 넘어 간신히 잠들었기 때문이겠지. 준비에 혼신을 다하다가 출발도 전에 나가떨어지는 타입.


시간 강사라 수업이 있는 날, 해당 시간 전에만 가면 문제는 없지만 조급증 환자답게 1시간 정도는 일찍 도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7시 25분 교문 통과. 아이들 등교는 아직인가 보다. 체온 체크하시는 선생님이 막 나오시다가 인사를 하셨다. 마주 꾸벅 인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무실 지정받은 자리로 입성. 먼저 나와 계시던 부장 선생님과 옆자리 선생님께서 깜짝 놀란 얼굴로 맞아주셨다. 어머, 새로 오신 강사 선생님이세요? 넵! 자리는 여기구요. 편하게 계셔요. 여기 다 언니랑 이모 뻘이니까 편하게. (옛? 아앗...!! 선생님, 제 나이도 사실은......) 엇! 넵!!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았다. 어색하고 민망한 마음. 이래서 첫 출근이 제일 힘든 것 같다. 전학생처럼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자리에 놓여 있던 교과서와 문제집들을 이리저리 휘릭휘릭 넘겨 보았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휴우- 잘할 수 있겠지. 마음속으로 아자! 기합을 넣어 보았다.


8시가 가까워 오자 교무실 밖이 한층 소란스러워졌다. 8시 5분까지가 등교 리미트 타임이란다. 창 너머로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쿵쿵 발걸음 소리. 깔깔대는 웃음소리. 우우 몰려다니는 소리. 얘들아, 서로 떨어져 걷기! 선생님 소리. 선생니임! OO이가 복도에서 뛰어요! 얘들아, 마스크 똑바로 쓰랬지! 누가 지금 붙어 다니니?? 그러거나 말거나 아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새 학기는 이토록 분주하고 복잡하고. 발랄하게 살아 있고.


자리에 앉아 귀를 쫑긋쫑긋하며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첫 시간에 할 말들을 골랐다. 십 년 가까이 전국의 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 왔지만 첫 번째 시간에 건네는 첫인사는 여전히 어렵고 어색하기만 하다. 닫혀 있는 교실 앞문을 열고 슥- 들어갔을 때 이 편으로 까맣게 쏟아지는 수십 개의 눈동자들. 일부러 활짝 웃으며 자신감 있게 교탁 앞에 서지만 반짝이는 눈빛들을 마주 보고 있노라면 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그 짧은 순간에도 할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침묵을 먼저 깨야 하는 건 이쪽이니까 매번 새롭게 용기를 그러모아 인사를 건넨다. 대부분 '안녕'하느냐는 인사다. 안녕하세요오! 하면 메아리처럼 안녕하세요! 가 따라온다. 안녕하다는 그 말이 어느 때보다 고맙고 대견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들은 여전히 초롱초롱 빛나는구나.


다들 긴장했죠? 새 학기라?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찡긋 웃는 아이. 네에, 하는 아이. 모아이 석상처럼 굳어 있는 아이. 깜박 졸음이 몰려온 아이. 그리고 꽤나 익숙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러운 척하려는 어른 하나. 이번 주와 다음 주는 30분씩 하는 단축 수업인 거 알고 있죠? 네에! 아이들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단축 수업이라 좋아요? 대답 없이 에헤헤 웃는다. 귀여운 열여덟 살들. 음, 그리고 오늘은 일단 OT를 할 건데 뭐, 다들 진도 나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죠? 네에에! 목소리가 더욱 밝아진다. 어느새 학교 다닌 지 십 년 차가 다 된 베테랑들이지만 수업 짧게 한다니까 마냥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은 안내만 간단히 한다니까 더 좋아한다. 그래도 대면 수업하니까 좋지? 네에에에. 학교 오니까 좋아요? 네에에에, 학교 좋아요오.


그래, 귀찮고 싫은 거 투성이지만 그래도 같이 어울려 우당탕탕하면서 어쨌든 열여덟을 나고 있구나. 코로나가 많은 것들을 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한 시절만큼은, 그러니까 웃음이랄까 서로에 대한 염려랄까 그 사이사이의 기쁨과 감사랄까 나름의 소소한 행복이랄까 일상의 소중함이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무엇들은 결코 해하지 못하겠구나. 목청껏 문학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떠들고 돌아와 잠시 자리에 앉은 사이, 이런 글귀들을 끼적여 보았다.


앞으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언제나 그랬듯 가장 많이 배우는 건 나겠지. 아이들 자체가 벌써 문학인데, 시이고 소설인데 내가 제일 많이, 가장 깊이, 무척이나 흠뻑 배울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여담>

그건 그렇고, 이제 <주몽 신화>부터 나가야 하는데 떠오르는 것은 오직 송일국 배우뿐... 왠지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은 걸음마 정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무렵 교생실습을 나갔었는데 말이다. 그때 만난 고1들은 벌써 서른 초반이 되었겠구나. 맙소사. 지난번 글에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어느 날 다시 '와, 2022년에 시간 강사를 나갔었는데 말이다. 그때 만난 고2들은 벌써 서른 초반이 되었겠구나'라고 적겠지. 그때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무엇이든 일단 코로나는 없겠지. 없어야만 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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