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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r 11. 2022

무증상 증상의 날들

절친의 코로나 확진에 관한 짧은 기록


절친 L이 코로나에 걸렸다. 약 일주일 전의 일이다.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된 날이라 살짝 긴장한 채로 주몽의 탄생 배경에 대해 열심히 수업하고 돌아 나오는 길. 막 교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는데, 별안간 휴대전화에 L의 이름이 떴다. 느낌이 싸했다. L은 나의 첫 출근날과 수업 시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절대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학교 안이라 일단 부재중이 뜨도록 놓아두고 급히 메시지를 타전했다. 곧 퇴근인데, 나가서 전화할게. L은 간단히 답했다. 나오면 연락 줘.   


L은 무척이나 조심성이 많은 친구다. 코로나 이후로 대중교통보다는 99%의 확률로 자차를 이용하고,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도 되도록 자제해 왔다. 지난 연말부터 몸이 안 좋아 죽 병원 진료를 받았는데 그 때문에라도 더욱 조심하고 있던 찰나였다. 백신도 2차까지 다 맞고, 진료 일정 때문에 3차 백신 시기를 조율하고 있던 즈음 코로나 확진이 된 것이다.


나 코로나래.

뭐어??? 어디에서???

모르겠어. 병원일까?

병원?


앞으로의 진료 일정에 따라 며칠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미리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 후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 병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멀쩡했던 몸 상태가 며칠이 지나자 이상했다고. 몸살처럼 오한이 들고 목소리가 가고 컨디션이 안 좋아 직감적으로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였다. 병원 내에서는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다인실이 없어 2인실을 혼자 쓰는 바람에 접촉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는데 왜? 이유를 물어 무엇하나. L은 급히 퇴원 수속 후 차를 몰아 집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가는 길에 PCR 검사를 하고 일단 격리에 들어갈 거라고. 병원에 가기 전 나를 만났던 게 생각 나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확진 일주일 전 즈음 L과 나는 저녁에 잠깐 얼굴을 보기로 했었다. 원래는 L의 집으로 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내가 그 전 일정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식사는 못하고 차 한 잔만 했던 것.


너는 괜찮아?

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어휴, 다행이다.


L은 컬컬한 목소리로 다행을 말했다. 만난 지 좀 됐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자가진단 해 봐. 어, 알았어. 일단 집에 도착하면 연락 주고 약 잘 챙겨 먹고 쉬고 있어. 나도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목이 아픈가? 두통이 있나? 가래? 설사? 콧물? 오한? 어느 것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사놓기만 하고 해 본 적 없던 자가진단 키트를 꺼냈다. 깊숙이 찔러야 한다고? 동영상을 틀어놓고 곁눈질해 가며 코를 찔렀다. 이 망할 놈의 코로나.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찔림을 당하는 게 낫지 직접 찌르려니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수전증 때문에라도 의료진은 못 되었겠군. (여타의 실력 부족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똑, 또옥. 검체가 섞인 용액을 떨어뜨렸는데, 테스트 줄이 나오는 흰 바탕 표면이 별안간 전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엇, 이거 양성인가?? 설마 내가 L한테 옮긴 건가?? 나 무증상이었는데 몰랐나?? 아니, 근데 주변에 확진자가 없었는데!! 밀접 접촉도 한 적이 없는데!! 게다가 방금 학교도 갔다 왔는데...!! 마스크를 한 번도 안 벗은 게 그나마 다행인가. 학교에 연락하면 설마 출근 첫날 만에 잘리는 걸까. 아, 그건 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하면서 머릿속으로 삼라만상을 그리는 사이 대조선인 'C'에 아주 붉게 선명한 선이 나타나고 붉게 물들었던 흰 표면도 마르면서 다시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T에는 일절 변화가 없었다. 한 줄. 그렇다면 음성.


다음 날 아침, L이 전화했다. 기침이 시작됐다고. 콜록콜록 마른기침이 아니라, 쿨럭! 컥! 쿠엑! 하는 기차 화통 기침이라 옆구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얼마 못 가 전화를 끊고, 메시지만 주고받는데 세상에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독감 한번 걸린 적 없던 L은 이건 새로운 종류의 아픔이라고, 예측되지 않는 증상과 강도에 밤낮을 앓고 있다며 이제 곧 나아지겠지 했다. 나도 블로그를 뒤져 코로나 확진 후기 200개 분량을 정독하며(코로나 검색 학사학위 정도는 딸 수 있을 정도) 시일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증상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런데, 웬 걸. 다수의 경험에 따른 빅데이터를 종합하면 3~4일 차에는 분명 차도가 있어야 하는데, 4일 즈음 L과 연락이 뚝 끊겼다. 그러니 격리 중이라 가 볼 수가 있어야지. 많이 아픈가, 어떻게 되고 있나,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닌가. 아침에 연락을 하면 늦은 오후나 저녁때에야 많이 아프다며 단답의 메시지가 왔다. 기침은 여전하고 속이 울렁거려 나흘이 지나도록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그나마 먹을 수 있다는 과일을 급하게 사서 보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다. 일주일 만에 4킬로가 빠졌다고 했다. 이놈의 망할 코로나가 사람 잡네, 진짜.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그제 부로 L은 드디어 격리에서 해제되었다. 그사이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파서 하루는 119에 연락을 하니 우선순위가 아니라 도와드릴 수 없다는 답변이 친절한 목소리로 들려왔다고. 올 1월에 수술을 받고 다음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있던 중에 확진을 받았는데도요? L은 기운도, 어이도 없어서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그냥 끊었다고. 양쪽 다 이해가 된다. 물론 모든 국민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고, 과부하로 시스템이 거의 마비 수준이라는 것은 알지만 순간 L이 느꼈을 좌절감과 공포에 대해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어디에서, 어느 순간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낫는지도 모르는 채로 시간만 흐르기를 기다리며 꾸역꾸역 약을 먹는데, 그게 참 고역이더라고 오늘 L은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간신히 기어나가서 10만 원을 주고 수액을 맞았다고 했다.


태주야. 가볍고 어쩌고 그런 거 진짜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 그냥 안 걸리는 게 최선이고, 걸리면 일단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해. 너무 괴롭다.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다시 또 깨닫는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정지되고 일상의 전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흘러야 일상이고, 지나가야 세월인데 아픈 동안 모든 게 멈춘 채로 아픈 몸만 일렁이고 있으니 너무 괴로웠겠다. 나 역시 옆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게 또 괴로웠다. 특히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확진과 격리란... 괴로움에 괴로움을 더하는 일이겠다. 가족이 있는 상태의 격리는 또 그것대로 어려움이 크겠지만. 이러나 저러나 다 문제구만.


오늘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확진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소식을 계속해서 들어서일까. 괜한 두통이  생긴  같다. 괜히 으스스 컨디션도  좋은  같고. 감기 기운인가? 코로나일까? 오랜만의 출근이 주는 긴장 때문인가? 코로나에 걸리면 손등에 붉은  하나가 생긴다든지,  뒤에 파란 뾰루지라도 올라  , 코로나구나! , 아니구나!   있었으면 좋겠다. 자가진단 키트로도   없는  몸의 상태라니.  몸의 상태를 전혀   없다는  코로나의 진정한 공포 같다. 그리고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게 혹시 해가 될까  마음 졸이는 시간도 무척  공포다. 증상이 없어도 있는  같고, 있어도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사는 것이야말로, 물론. '무증상 증상'이라는 아이러니한 명칭처럼 그러니까, 무증상 증상의 날들처럼 지금  순간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L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리고 코로나라는 놈의 완전 소멸을 고대하고 또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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