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일이 있어도 이젠 혼자 살아야한다!
또 친구랑 같이 살겠다고? 그것도 원룸에서?
아직 정신 못차렸군
그렇다. 정신을 못차렸다. 셋이 살았던 룸메이트들이랑은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힘들었던 거 아닐까? (물론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긴 한다) 그럼 그것보다 더 더 더 가치관이 맞는 친구랑 살면 괜찮지 않을까? 결국 이 여성은 좁아터진 원룸에서 동거를 하기까지 이릅니다. 원룸에서 둘이서 살아본 경험은 꽤 있다. 근데 정말 원룸에서 누군가와 함께 사는건 베프랑 해도 안된다. 내 앞에서 그런 얘기하면 등짝 때리러 가겠다. 돈을 아끼기 위해 원룸에서 타인과 함께 살겠거든 꼭 그 주거생활을 일찍 끝내길 바란다. 왜냐고? 왜냐면...
1) 둘이 싸우면 누가 중재해주나
베프랑/연인이랑 함께 산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좋은가? 벌써부터 온 세상이 알콩달콩 좋아 미치겠다(난 연인과 동거를 해본 적은 없지만 친구랑 살아도 알콩달콩하다) 밤이면 같이 영화보고 외식도 같이하고 즐거운 일이 정말 많다. 솔직히 말하면 셋이 사는 것보다 오히려 단 둘이서 사는 게 난 더 즐거웠다. 아무래도 단 둘이서만 함께 산다는 걸 전제하다 보면 룸메이트를 고르는데 좀 더 까탈스러워진다. 나와 안맞을 사람들은 1차적으로 다 걸러진다. 거기다가 방도 하나지 않은가. 원룸에서 같이 산다는 건 상대에 대한 극강의 호감과 호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월세 반반 부담하구 청소는 격주로 돌아가면서 하자
너무 좋으네~^^ (이렇게나 잘 맞다니!)
서로 기분 나쁜 일 있으면 먼저 말해주기!
딱 좋으네~^^ (흐흐 이젠 별일 없겠지 ㅋㅋ)
기쁠 줄만 알았다. 좁아 터진 원룸에서 단 둘이 사는 것. 솔직히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대나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원룸에서 둘이 살 일을 만들바에야 고향집으로 내려가겠다. 원룸에서 둘이 사는 무주택자들의 삶,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서로가 맞지 않아 싸운 일보다 공간이 주는 박탈감에 서러웠던 적이 많다. 좁은 우리에 가둬놓으면 착한 동물들도 괴로워한다. 그러다보면 몸 싸움을 하기도 한다. 원룸 동거도 마찬가지다. 셋이서 살 때와는 조금 다르게,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물론 있을 수도 있겠다) 환경이 주는 빡빡함에 미쳐버린다. 그런데 둘이서 사니 중재해 줄 사람이 없다. 서로 섭섭하거나 소원한 마음이 들어도 어색...한대로 버텨야 한다.
2) 감정도 공유가 되나요
공간이 좁다보니 동선은 겹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 동일하다. 분리가 안되는 환경에서 사는 게 왜 위험하냐면, 상대방 감정에 내 일상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룸메가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을 겪고 오면 그 기운이 나에게 모두 쏟아진다. 직접 하소연을 하거나, 고민 상담을 하거나, 혹은 집 안에서 전화통화로 누군가랑 싸우거나 등등. 방법은 여러가지다. 감정도 공유가 된단 거다. 물론 함께 살면서 룸메와 슬픔을 나누는 게 뭐가 나쁜가. 전혀! 나쁘지 않다. 응당 동거인으로서 서로를 잘 보듬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부정적인 사람과 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간이 좁으면 적당히 알아서 피할 수가 없다. 친구일 땐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옆에서 계속 영향을 받는다? 이게 사람을 미쳐버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추워 에어컨 좀 꺼
난 더운데
그럼 네 쪽에만 바람 가게 해
고정이라 그게 안 되잖아
감정 뿐만이 아니다. 모든 시설/가구를 공유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추위나 더위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는데 상성이 맞지 않으면 큰일 난다. 꼬부기랑 파이리랑 싸우면 물속성인 꼬부기가 이긴다. 온도점이 다른 사람도 서로 붙으면 분명 한 쪽의 말을 듣는 걸로 결론이 난다. 중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이 좁고 모든 시설을 같이 나누다보면 결국 한 쪽은 물리적으로 희생을 치러야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동선이 좁아 싱크대나 책상에 발을 박기도 한다. 원룸에서 둘이 살면 피지컬적으로도 각오를 해야한다. 이 부분은 감정 외적인 부분이라 배려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기도 하다. 이왕 원룸에서 동거를 하겠다면 10평 정도는 되는 곳에서 살길 바란다.
3) 이렇게 돈을 아낄 바에야
물론 생활비는 기막히게 아낄 수 있다. 일단 원룸 자체가 모든 주거타입 중 제일 저렴한 편에 속하는데 그걸 둘이서 쓰면 절약은 말할 것도 없다. 혼자 원룸 사는 사람들도 한번쯤 월세 N빵하고 싶다는 생각하지 않는가? 식비의 경우, 의외로 1인가구로 혼자 사먹는 것보다 둘이 같이 먹으면 더 절약된다. 왜냐면 입이 2개다보니 식자재를 남기지 않고 야무딱지게 활용 가능하다. 배달음식도 1인분 12,000원 / 2인분 15,000원 이런 식으로 차별적으로 책정된 경우가 많다. 2인분을 시키면 더 절약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이 모든 절약들이 다 궁상이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원룸 동거는 여러번 강조하겠다. '협소한 공간'이 제일 강력한 빌런이다. 아끼고 즐겁게 살다가도 좁은 공간만 보면 갑갑해진다. 더군다나 이 좁은 공간을 룸메와 쉐어링까지 해야 한다. 고산지대에 사는 것도 아닌데 숨이 턱 막힌다. 차라리 매달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나가서 혼자 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든다. 매달 N빵치던 생활인데 나 혼자 쑥 빠져버리면 룸메는 어쩌나? 반대로 룸메가 쑥 빠지면 내 생활비는 더블이 된다. 잔인하게 말하자면, 같이 살기로 한 계약기간 동안은 서로가 족쇄다.
4) 총평
분명 들어갈 땐 베프였는데 퇴거할 땐 그냥 친구가 돼버렸다? 주위에 제법 많았다. 뭔가 큰 사건이 있어 싸운건 아닌데 그냥 좁은 곳에서 서로 고생하다보니 상대가 지긋지긋해진 거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고 나면, 그 시절을 추억하며 더 끈끈해지는 사이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대만 봐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다행히 전자였지만 후자인 사람도 적지 않다. 친구든 연인이든 동거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찐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단 한명의 사람과 사는 데도, 나도 모르는 내가 튀어나오곤 한다. 근데 난 동거를 한번 쯤은 해보라고 권유하겠다.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고, 주거 가치관도 정확히 알 수 있다. 원룸 동거 같은 극악의 주거환경에선, 내가 가진 진짜 욕망이 뭔지 더 빨리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넓은 집을 원하는지 그냥 집만 있으면 되는 사람인지, 함께 사는 사람은 친절해야하는지 독립심이 강해야 하는지, 내가 의외로 먹지 못하는 음식은 무엇이며 싫어하는 행위는 무엇인지. 한평생 몰랐던 자기자신을 발견해보시라. 물론 그 과정에서 룸메와 다소 서먹-해질 수도 있으나 그건 협소한 공간탓을 해버리자. 좁아터진 원룸이 문제다!
2인 1실 원룸 잘~ 살다 갑니다
자유도 ★☆☆☆☆
재정부담 ★☆☆☆☆
즐거움 ★★★☆☆
편안함 ★☆☆☆☆
추천: 동거인이 너무 좋아 미칠 것 같은 사람, 극강의 협소공간 체험을 하고 싶은 사람, 박애주의자, 금욕주의자, 긴축재정이 필요한 사람, 멘탈 쎈 사람
비추천: 독립심 강한 사람, 생리현상 잦은 사람, 지나치게 수다스럽거나 지나치게 과묵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 동물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케바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