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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Sep 17. 2021

홈스테이! 헐값에 부자체험 하기

다 된 가정에 나라는 재 뿌리기


진짜 남의 집에서 살아봤다
심지어 국가도 다른 남의 집.


골 때렸던 3인, 2인 자취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뉴질랜드로 떠났다. 초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이 때 북섬 브라운즈베이 라는 곳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돈이 많은 아랍, 유럽친구들은 홈스테이를 거의 안하고 flat이라 불리는 주거를 많이 했다. 나라마다 flat 문화는 조금씩 다르지만, 집 하나를 임대해서 혼자 사는 타입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무주택자인 내가 뉴질랜드에서 주택이 있을리가 없지요? 임대할 돈도 없다. 이왕 사는거 영어공부도 하는 겸 홈스테이를 해보자~ 뉴질랜드 낭만에 잔뜩 젖었다(낭만중독자)



...홈스테이 주거! 솔직하게 이랬다!




1) 헐값으로 부자체험 하기, 단! 운이 좋아야.

홈스테이 호스트는 크게  분류로 나뉜다. 첫째 문화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경우, 둘째 임대수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경우. 홈스테이가 100% 선량한 사람들과 문화교류를 하는 주거라고 생각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의외로 2 타입 외국인이 왕왕 있더랜다. 나와 함께 어학원에서 공부했던 선배 홈스테이 집은 환경/시설이 좋지않고 대접도 차별적이었다. 썩은 과일이나 상한 음식을 서빙받았다더라. 홈스테이 특성상 돈만 밝히는 사람은 소수긴 하겠으나 어쨌든 0% 아니다.


참고용사진입니다! 출처 네이버블로그


Jenny and John의 ★프라이빗 2층 전원주택★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 브라운즈베이 위치
바베큐데크 완비, 화장실 3개, 방 6개, 개인 차고, 멀리 오션뷰


나는 운이 좋아 매우 좋은 집으로 연결이 됐다. 처음 집에 들어갔을 때 대문이 뭔 궁전처럼 돼 있어서 식겁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양쪽으로 끼익 문을 열면 한 눈에 다 안담길만큼 높은 층고와 샹들리에, 바베큐데크, 정면 오션뷰가 쫙 펼쳐진다. 사진을 첨부 못하는게 통탄스럽다! 휴대폰을 여러번 바꾼 탓에 그 시절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슬픔) 주거 비용이 아주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그 가격에 절대 살아볼 수 없는 부잣집이었다. 제니는 회계원, 존은 해군이었는데 둘이 사는 곳은 여기저기 FLEX천지였다. 플스나 엑스박스 같은 게임기도 잔뜩 있었다. (근데 나는 게임 안했음)



2) 아무 것도 살 게 없어요!

본격적으로 홈스테이 주거 특징을 말하자면 진짜 몸만 가도 된다. 몸만 슥 가도 어련히 살아지는 주거타입이다. 기숙사보다 완비된 시설이 훨씬 더 많다. 왜냐? 당신은 '집'에 가는게 아니라 누군가의 '가정'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게 완비돼있다. 부잣집 홈스테이로 간다면 모든 가구들이 집에서 쓰던 거 보다 더 좋다. 폼클렌징, 바디워시, 접시, 컵, 모든 게 어나더 레벨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껏해야 이케아 접시가 웰메이드라고 생각했는데 그 집에선 뭔 독일에서 수입한 어쩌고 플레이트로 밥을 먹었다. 이게 뭔. 하지만 이 말을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비극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아무것도 살 게 없지만, 역으로 모든 걸 빚지고 있다. 물건 하나하나에 그 집만의 규칙이 존재한다. 가정의 룰을 익히지 않으면 낭패보기 쉽상이다.



3) 아임쏘리 입에 달고 살기


OH MY GOD!!
WHO DID THAT?!!


존과 제니 가정의 문화를 잘 몰랐던 초반, 나는 진짜 막 굴러온 돌처럼 살았다. 사사건건 실수하는 게 너무 많아 부끄러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화장실 문화였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음날 난, 백인 얼굴이 얼마만큼 빨개질 수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가뜩이나 큰 눈을 튀어나올만큼 뜨고는 대체 왜 휴지를 변기에 버리지 않았냐고 괴로워했다. 그 나라는 그렇더라. 휴지통에는 정말 생활 쓰레기나 위생품만 버리더라고... 낸들 알았나... 모르는 건 가끔 죄가 된다. 췡피한 것보다 새로 입주한 아시안걸의 쏘 더티 티슈를 보게해서 미안했다... 제니 아임 쏘리... 댓츠올마이폴트...


<또 다른 당시 대화 번역본>
제니: 아시안들은 밥을 좋아하지? 소이소스도 좋아하구~
나와 일본룸메: 예쓰 위 러빗 ^^)b
제니: 그래서 밥에다가 간장을 뿌려왔어
일동: ??????
제니: 스페셜 디너 포 마이 걸즈~
일동: ?????????????


실화다. 당시 내 룸메는 일본인이었는데 제니는 동양 문화에 대해 잘 몰랐다. 아니, 애매-하게 알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냅다까라 밥에 간장을 붓고 볶음 야채랑 주는게 아닌가. 그 순간 몰아친 싸-함이란... 한일 국경을 초월해 우린 일심동체로 말을 잃었다. 이거 인종차별인가? 치열하게 눈치보며 알아낸 결과 제니는 진심이었다. 우리는 당연 잘 먹지 못했다. 아무리 쌀이랑 간장에 환장하는 아시안이라고 해도!! 밥에 간장뿌려 먹는건 너무 하잖아요!! 다 지난 보릿고개를 뉴질랜드에서 소환하시나요.



4) 새로운 문화 새로운 문제



사실 뉴질랜드 가면 삼시세끼 양고기 먹을 줄만 알았다. 근데 막상 가보니 삼시세끼까지는 아니고 삼시두끼 고기를 먹긴 했다. 가끔 간장밥 같은 얼토당토않은 메뉴가 나오긴 했으나 정말 lamb을 많이 해줬더랬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식문화였다. 식문화 뿐만이 아니다. 호스트는 뉴질랜드인이고 룸메이트는 일본인이니 몰아치는 문화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매일매일 이벤트를 겪었다. 뭐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건 당연 홈파티 문화였다. 그런데 여기에 소극적인 일본친구를 곁들인.


~와글 시끌벅적 새러데이나잇 홈파티~
제니: 너무 즐겁지 않니? 이게 우리의 culture 란다^^
나: (눈돌아가는중@_@) so good~
제니: 일본인 친구도 나와서 즐기라고 하자꾸나
일본룸메: ...난 그냥 오늘밤은 책을 읽고 싶어 조용하게...
제니: NO~ 다같이 즐거운 밤을 보내야지!
일본룸메: (아 싫은데)

        

일본룸메가 어떤 포인트에서 홈파티를 거북해하는지 이해가 됐다. 혼자 쉬고 싶은 저녁인데 웬 사돈에 팔촌까지 와글와글 집으로 불러서 온종일 느끼한 음식을 먹고 떠드는게 충분히 힘들만했다. 또한 일본룸메는 시종일관 초조해보였다. 한국과 일본은 집과 집 사이 거리가 좁기 때문에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이웃에게 민폐가 된다. 왜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친구집인데도 친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내가 다 조마조마 한 거. 일본룸메는 혹시라도 주변 이웃들이 뭐라할까봐 조마조마했다. 호스트는 당연 우리의 조심스러운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고 그날 파티는 밤까지 계속 됐다. 그랬더랬다~



5) 다 된 가정에 나라는 재 뿌리기


낄 수 업서... 나는... 낄 수 업서 흑흑...  (출처 호주슈퍼맨블로그 상업이용가능이미지)


하지만 홈스테이 주거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건 문화보다도, 공동체에 대한 시선이었다. 친구끼리 자취를 하는 건 세명이서 하든 둘이서 하든 '우리'가 곧 메인 공동체다. 우리끼리는 모두 동등하다. 그러다보니 소속감과 유대감이 형성된다. 반면 홈스테이를 하면서 난 온종일 '이방인' 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건 내 문제가 맞다. 내 마인드가 오픈이 안 돼있기 때문에 타인의 가정에 잘 녹아들지 못한 거다. 하지만 변명을 해보겠다.


주말에는 남섬에 있는 딸에게로 갈 거야
너 혼자 있어도 괜찮지?


호스트 부부는 딸을 보러 3일 정도 집을 비웠다. 룸메이트는 같은 일본인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나는 며칠간 그 커다란 집에 혼자 있어 봤다. 제니는 자신을 'mom'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도 좋다고 했지만 역시나 my mom은 아니더라. 남의 가정, 남의 집에 끼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어 울적했다. 근사한 바베큐데크가 있고 멋진 정원이 보이는 부엌에서 밥을 먹어도 가족이 그리웠다. 홈스테이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my' homestay가 아니라 'your' homestay라는 점 아닐까.



6) 총평

여러 주거타입 중 홈스테이는 문화교류까지 경험할 수 있어 유익하다. 굳이 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드물게 홈스테이가 가능한 경우도 있더라. 하숙과 뭐가 다른데? 라고 되묻는다면 음... 할 말 없긴하다. 아무튼 홈스테이는 식비를 포함해서 월 주거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돈만 내면 몸만 떨렁 가도 편하게 살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헐값에 초-부잣집에서 살아볼 수도 있다. 다만 빈 집이 아니라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란 걸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내 친구도, 가족도 아닌 쌩판 외국인, 타인이 살고 있는 집에 당신이 갑자기 쑥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간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즐거운 일만큼이나 외로운 일도 종종 생기리라. 그래도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이것만큼 좋은 게 또 없다. 안전하기도 하고!



타국 홈스테이 잘~ 살다 갑니다


자유도 ★★☆☆☆

재정부담 ★★★★☆

즐거움 ★★★☆☆

편안함 ★★☆☆☆

추천: 외국어를 빨리 배우고 싶은 사람, 인스타 인증샷 많이 남기고 싶은 사람, 원룸이고 나발이고 알아보기 귀찮아서 걍 몸만 가고 싶은 사람, 안전하게 살다오고 싶은 사람, 외향적인 사람,

비추천: MBTI - I 유형, 남한테 절대 먼저 말 안거는 사람, 편식 심한사람, 생활스타일이 까탈스러운 사람, 집에서 조용히 독서하고 차마시는게 좋은 사람, 고집 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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