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 괜히 했다.
아빠 안심해~ 나 가족 생겼어
기숙사 다음으로는 룸메들과 자취를 해봤다. 방 3개 딸린 일반 가정집 월세로 살았다. 특이하게도 난 3인 3실로 살아본 경험이 두번이나 있다. 한 번은 대학 동기들과, 다른 한 번은 언니들과 함께 살았다. 친구랑 같이 살면 무조건 싸운다지만~ 나는 아니라고 믿었다. 왜냐면 방 하나에 다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3인 3실이니까! 서로에게 독립된 공간이 있고 커뮤니케이션 할 거실도 있으니 꽃길이라고만 믿었다. 기숙사에서 채우지 못한 자유, 자취방에서 이젠 펼쳐보리!
1) 자의로 만든 내 가족!
아무나 함께 살 수는 없다. 같이 살기위해선 마음이 맞는지 아닌지 치열한 눈치싸움이 필요하다. 쟤 평소에 잘 씻는 애지? 너무 올빼미or아침형은 아닌가? 경제 수준도 비슷하겠지? 말로 표현을 안할 뿐이지 서로 따져봐야 할 항목이 한 두개가 아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같이 살면 쟤랑 싸울까?" 이 물음에 NO 라는 대답이 나와야만 룸메로 통과된다. 상대방에게 나도 마찬가지일 터. 같이 살기로 합의를 보고 부동산 앞에서 만난 순간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기만 했다. 아흐, 이 사람들이랑은 같이 살아도 괜찮겠어.
<동거가 시작되는 그 곳, 다이소>
나: 욕실 발깔개는 무슨 색으로?
A: 핑크 어때?
B: 너어어무우 좋아~^^
(꺄르륵x30 + 깔깔x50)
항상 다이소에서 같이 쇼핑할 때 제일 행복하다. 빨래바구니 사이즈를 고르면서도 뭐가 그리 웃긴지 벙글벙글 웃기만 했다. 친구/언니들과 함께 산다는 사실은 뭐랄까, 집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는 수학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분명 오늘이 첫날인데 마지막 날은 없대. 매일매일 노는 거야! 한 번은 공부를 위해서 자취를 했고 또 한 번은 출근을 위해서 자취를 했는데 즐거움의 결은 비슷했던 것 같다. 내가 내 손으로 가정을 꾸리면 이런 기분일까(아님) 자의로 만든 가족! 서로의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요. 다들 기분이 좋으니까요. 다이소 욕실코너 앞에서 우리네 유대감이 최대치를 찍었다.
2) 스스로가 선택한 재앙, 동거인
자.. 함께 산다는 게 항상 기쁘기만 한다면 왜 사람들이 "같이 살면 꼭 싸운다." 라는 말을 했을까. 자고로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서 외치는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젠장) 분명 유대감 맥스를 찍었던 내 가족인데 살아보니 너무 안맞더라. 심지어는 3명이 각자 술자리에서 같은 날 서로를 향해 울분을 뱉은 적도 있었더랬다. 우리는 별별 이유로 다 싸웠다. 이건 뭐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친구와 살았던 경험 + 언니와 살았던 경험을 짬뽕해서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더랬다.
룸메A가 가스 벨브를 안 잠근다 (집 터진다니까!)
룸메B가 빨래를 지 것만 돌린다 (같이 좀 돌리자!)
룸메B가 먹고 난뒤 자기 수저만 설거지한다(나는 니것도 해주는데!)
룸메A가 빨래를 널고 나니 내 원피스가 사라졌다 (어허)
룸메A랑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3일 내내 집에 오지 않았다 (어허?)
룸메B가 신발 신고 나갈 때 마다 내 신발을 밟는다 (야!)
나열하면 끝도 없다. 아니 우리 가치관 비슷한 사람들 아니었어?! 세상에 별별 이유로 다 싸운다. 정~말 사람이란 1도 같지가 않더군. 얘는 얘대로, 쟤는 쟤대로 라이프스타일이 다 다르다. 나이가 나와 같던 아니던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람인 이상 쌀알만한 이유로도 싸우는게 가능했다. 3명이서 같이 살다보니 1:1:1로 싸우는 노답 상황도 있었고, 2:1로 싸웠던 상황도 있었다. 그냥 집에서 가족이랑 싸우는 이유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싸웠다. 기분 상해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인생 희노애락이 자취방에 있더라, 아, 가끔 희랑 락은 없기도 했다.
일주일째 언니가 집에 오지 않는다.
보일러 틀면 혼날까봐 냉골에서 잤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2016년 1월. 룸메이트 언니 둘이 모두 집을 나갔다. 1명은 세계여행을 한다고 집을 아주 비웠다. 다른 1명은 사업 준비로 바빠서 집을 비웠다. 방이 3개인데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래도 언니들이 공과금은 공평하게 1/3 해줄테니 편하게 살라더라. 돈을 아끼려고 노후된 주택에서 살았더니 보일러 섹션을 나누는 게 불가했다. 나 혼자 살면서 보일러를 펑펑 틀면 왠지 언니들이 혼을 낼 것 같았다(좀 무서웠다.) 그 언니들이 평소에 절약정신이 투철했어서, 내가 조금만 틀어도 '언니 마지노선'을 넘어갈게 분명했다. 틀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보일러를 안틀고 살았다. 그 해 겨울 아현동은 증말 드럽게도 추웠다. 싱글 전기장판에 의지해 누워자는데 밤이면 외풍이 들어와 코가 빨개졌다. 그 때 내가 뭔생각 했는지 아는가. "공기가 차가우니 모공이 조여지겠군. 오히려 좋아." 어린 덕분에 긍정적이었다.
3) 괜히 했다 도원결의!
참 아쉬운 기억이 많다. 3룸에서 살면 내 딴에는 하이틴 시트콤 한 편 찍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냥 인간극장. 우리끼리 잘 지키자며 알콩달콩 규칙까지 적었으나 언제나 분란은 종이 테두리 밖에서 발생했다. 서로 다른 사람을 품기에 그 때 나와 룸메이트들은 어렸다. 존중은 하는 것보다 받는 게 쉬웠기에 더러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방 3개가 나눠져있다고 해서 주거환경이 완전히 분리된 게 절대 아니다. 명심바람! 그러므로 분리된 방에서 살더라도, 여러명과 함께 살 때는 긴장해야 한다. 특히 공용공간은 잘 관리해야 한다.
<주거 가치관 체크>
안먹는 음식 곧바로 음쓰통에 버리나요? 냉동실에 얼리나요?
설거지 할 땐 다같이 하나요? 자기 것만 먼저 하나요?
반찬은 덜어먹나요? 반찬통에 바로 먹나요?
국은 국자로 퍼나요? 숟가락으로 퍼나요?
빨래는 편할 때 돌리나요? 정해진 날 돌리나요?
섬유유연제는 다우니써야 하나요? 샤프란 써야 하나요?
아이고.
특히 친구 3명이서 사는 것은 단 둘이 사는 것과 매우 다르다. 그 이유는 3명이서 살면 정말 콩가루 파티가 될 수도 있고, 좋은 중재자가 있으면 어떻게든 굴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A의 라이프스타일과 동시에 B의 라이프스타일까지 함께 존중해야 한다. 와중에 나의 라이프스타일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럿이서 사는 게 오히려 더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말하고 싶다. 같이 사는 친구는 엄마 역할을 해도 엄마가 아니며, 동생 역할을 해도 동생이 아니다. 아무리 가족같다 한들 우린 결국 다 평등한 관계이므로 동등하게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사소한 인테리어, 집꾸미기, 청소, 모든 면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쉽지 않다. 너무 쉽게 도원결의 하지말 것. 차라리 도원결의는, 월세 계약기간이 끝난 뒤 퇴거하는 날에 해도 늦지 않다.
4) 총평
3명이서 함께 사는 게 힘들긴 하지만 안정성 면에선 분명 좋긴 하다. 집이 텅텅 빈 경우가 별로 없고 누구라도 1명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생각하기에도 자녀가 홀로 사는 것보다 여럿이서 살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으시다. 생활비를 부담할 때도 3빵이 가능하니 재정 효율도 높아진다. 누구는 요리를, 누구는 인테리어를 잘할 테니 각자 장점을 살려 살다보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 서로가 조금씩 배려한다면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친구 셋과 함께 살면 분명! 기쁜 일이 더 많을 거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서로를 경계하고 또 긴장해야 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완전히 나와 동등한 + 나와 다른 개인이기 때문에 사전에 배려하라는 말이다. 3명 중 1명만 핀트가 엇나가도 그 집은 살얼음 판이 된다. 꼭 명심하길 바란다. 언제나 관계는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또한 3명이서 함께 살려면 최소 주택/빌라여야 한다. 이 타입의 주거환경은 기본적으로 유지비용이 조금 든다. 노후도에 따라 수리가 빈번히 발생할 수도 있다.
3인 3실 주택 잘~ 살다 갑니다
자유도 ★★★☆☆
재정부담 ★★☆☆☆
즐거움 ★★★☆☆
편안함 ★★★☆☆
추천: 외로움이 많은 사람, 인간미 넘치는 주택/빌라에서 살고 싶은 사람, 부모님 잔소리를 덜고 싶은 사람, 생활비 부담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사람, 배려심이 많은 사람
비추천: 자기 주장 강한 사람, 하고싶은 말을 표현 잘 안하는 사람, 지나친 짠순이or사치러, 히키코모리(공용공간 관리 필요함), 화장실에서 남이 싼 똥냄새 맡으면 구역질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