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방에는 가격택이 있다
강남에 입성합니다
물론 호화롭진 않습니다
8명이서 살던 쉐어하우스가 문을 닫았다. 추워서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진짜 폐점했다. 서둘러 살 곳을 다시 구해야 했는데 당시 내 상태가 좋지 못했다. 심신이 힘들었던 시절이라 집을 알아보러 다닐 에너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쉐어하우스의 도움을 또 받기로 했다. 대신 이번에는 룸메가 좀 적은 집으로... 아파트 아니어도 괜찮아... 집에 낯선 사람이 적었으면 해...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룸메를 줄이고 싶다면 공간도 줄여야 했다. 룸메가 적을 수 밖에 없는 주거환경으로 가야만 했다. 그리하야 선택한 게 이번엔 방 2칸 짜리 빌라였다.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서 살았다.
1) 자유는 10만원 더 비싸요
쉐어하우스는 매우 합리적인 주거 타입이다. 누리고 싶다면 응당 지불해야만 한다. 빌라에는 1인용 개인방과 2인용 방이 따로 있었다. 당연 1인 방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 월 55만원을 내야만 한다. 이 정도면 지방 기준에선 웬만한 오피스텔 월세값과 맞먹는다. 그러나 여기는 강남이다. 인프라와 접근성을 누리면서 1인용 방까지 헐값에 누려보겠다? 서울에선 가당치도 않다. 이곳의 자유는 좀 비싸다.
2인용 방을 쓰면 월 45만원이었다. 고민이 됐으나 1인용 방을 쓰려면 입주자가 퇴실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더라. 어쩔 수 없이 2인용 방을 선택했다. "돈 아낀 셈치자." 긍정회로를 열심히 돌려봤다. 사실은 쬑끔 마음이 아쉽긴 했다. 45만원에 1인 방을 쓸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10만원 비싼 방은 채광도 좋았고 환기도 잘됐다. 반면 내 방은 안에 건조대까지 놓고 지내서 너무 좁았다. 개인 자유가 거의 없었다. 역시 비싼 건 다 이유가 있어. 서울의 가격택에는 모두 논리가 존재하는구나. 끄덕끄덕. 나는 한번 더 대한민국이 만만치않은 나라임을 배웠다.
2) 강남 피플
그래도 이번 쉐어하우스의 매력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입지다. 강남! 월 45만원에 강남 빌라에서 산다고 하면 아주 나쁜 조건은 아니다. 비록 창을 열면 바로 앞에 나무 한 그루없이 사무실 건물이 보여 민망했지만... 아무튼 부산에서 살다온 나에게 강남이란 환상 그 자체였다. 환상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거리 구석구석에도 외제차가 있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어도 사람들은 구찌신발을 신고 있었다. 흠~ 다들 한따까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물론 그 환상이 깨진 건 오래가지 않았다.
마라샹궈 하나 배달해먹는데 배달비가 5천원? 소신발언 하겠습니다. 전 부산에서 배달비가 4천원 넘는 곳을 본 적이 없었어요(예전기준) 여기는 배달비가 5천원은 무슨 6천원까지도 책정됐다. 거기다가 음식값은 용납가능할 정도라지만 거슬릴 정도로 비싸서, 매번 먹긴하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동네 슈퍼마트에서 물건을 사도 체감상 편의점과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교통 하나는 참으로 좋았다. 서울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마음 먹으면 경기도도 갈 수 있다! 문화시설도 많고 내로라하는 전문의가 있는 병원도 많았다. 강남은 별천지구나 느꼈던 순간이 더러 있었다. 대신, 생활비를 정산할 때마다 매순간 비용이 책정된다는 걸 깨달았다.
3) 쉐어하우스만의 장점
지난 번에 말하지 못한 쉐어하우스만의 특징이라면 바로 관리서비스다! 매월 지불하는 비용에 기본 관리가 포함돼있다. 월 1회씩 정기 청소 및 관리가 이뤄진다. 개인 공간은 건드리지 않으시고 오직 공용공간(화장실, 거실, 부엌 등) 청소만 해주시는데 이게 꽤 편리하다. 여러 하메들이 오고 가다보니 공용공간을 함께 청소하기기가 힘든데, 견딜만한 위생상태로 늘 보존되기 때문이다. 특히 화장실은 머리카락으로 배수구멍이 막힐만할 때쯤 관리서비스가 진행되므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변기가 막히거나 기물이 파손되는 등 공용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쉐어하우스 측에서 수리를 진행해준다. 내가 이용했던 쉐하업체에서는 해당 비용을 100% 부담해줬다. 십수만원이 청구되더라도 이후 영수증 처리를 잘 해놓으면 돈을 받을 수 있다. 보험 실비 청구하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혼자 살면 집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내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쉐어하우스는 그 부분에서 책임어 덜하다.
4) 우리 사이 연결고리 (없음)
이번 쉐하만의 특징이라면, 앞서 말했듯 방의 가격이 다르고 인원이 다르다보니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이 집에서 딱 1달 정도만 살다 퇴거했는데, 차마 풀지 못한 짐박스가 있었다. 이걸 방에 놔두려니 도저히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거실에 어쩔 수 없이 방치를 해둬야했는데 1인실을 쓰는 하메가 조금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하메는 개인 방을 쓰고 그 곳은 프라이빗 공간이 넉넉한 편이라 짐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내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하고 이 집에서 살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공용공간을 차지해도 되는지 전전긍긍했다. 룸메랑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냈으나 다른 방 하메와 나눈 대화로는 "아침 샤워 언제 해요?" "저8시요." "아 네." 이게 전부인 것 같다. 한달 내내.
또 다른 '우리'도 있었다. 그건 바로 옆 쉐어하우스 룸이다! 이 빌라는 여러 층에 쉐어하우스가 있었는데 모두 같은 업체가 운영중인 것이었다. 그런데 남성용 집과 여성용 집이 딱 붙어있는 바람에 불편한 그림이 연출되기도 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벽을 타고 옆집에서 "데마시아!! 펜타킬!!!!" 하는 소리가 거의 매일 들려와서 미치는 줄 알았다. 조용히 하라고 말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바로 옆집이니 괜히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말자 싶어 꾹 참았다. 업체에서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쉐어하우스만의 고충이다.
5) 총평
일단 와글와글 8인 쉐어하우스와 비교하자면 3인 쉐어하우스는 훨씬 더 조용한 느낌이다. 또한 독방과 not독방이 따로 있으면 서로 끈끈하게 뭉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대신 룸메가 많은 것보다는 사는데 있어 조금 편하기 하다. 마포구와 강남구를 비교하자면 어떨까? 나는 오히려 마포구가 더 좋았다. 인프라는 비슷한데 좀 더 인간미가 있는 느낌이었다. 강남구는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비쌌다. 살면서 배운 거라면 "돈 많이 벌기전까진 강남에서 혼자 자취 못하겠다..." 정도. 아파트와 빌라도 비교해보자. 확실히 아파트의 치안이 곱절 더 우수했다. 주변 조경도 예쁘고 삶의 질이 더 높다. 대신 대중교통 접근도는 빌라가 더 우수했는데 이 부분은 강남인 점도 있고, 길가에 위치한 빌라라서 그런 점도 있겠다. 아무튼 룸메가 많은 걸 제외하자면 나는 이전 쉐어하우스가 더 좋았다!
빌라 쉐어하우스 잘~ 살다 갑니다
자유도 ★★★☆☆
재정부담 ★★☆☆☆
즐거움 ★★☆☆☆
편안함 ★★☆☆☆
추천: 치안 신경안쓰는 사람, 옆집 소음도 잘 참는 사람, 채광이나 풍경 전혀 신경 안쓰는 사람, 낙천주의자, 돈 많이 써도 다 경험이지~라고 생각 가능한 사람
비추천: 안전 제일주의, 고요주의자, 짐많은 사람, 채광과 풍경 신경 많이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