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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Dec 21. 2019

스페인 예술 탐방_바르셀로나 4

스페인의 ★슈퍼국보★ 피카소, 알고보면 자의식과잉 허세남?

스페인, 시각의 유토피아 

지난 예술의 낙원

피카소와 가우디의 고향으로 떠나다


드디어 피카소의 이야기도 나눠볼까 합니다. 피카소는 스페인 출생의 세계적인 화가이죠. 그는 1973년까지 생존해있던, 비교적 현대의 사람입니다만 입지는 미술사 거장급입니다. 그러므로 스페인에도 그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상설/특별 전시해놓은 미술관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뭔가 팥빠진 붕어빵처럼(???) 아쉽고 공허한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피카소는 살아생전 매우매우 자의식과잉 허세남이었다고 해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르셀로나 3편_피카소 미술관 & 까탈루냐 음악당



1) 피카소미술관


바르셀로나에 왔으니 역시 피카소 전시를 보지 않을 수 없죠! 큐비즘(입체파)의 대가이자 현대미술에서 빼놓을수 없는 화가 피카소! 그는 스페인 출생이였습니다. 기존의 신체 묘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인체의 각 구조를 f(x)의 피노키오마냥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듯한 그림들은 당시의 사람들을 놀라게했죠. 뭐, 당시라고 해봤자 사실 그리 오랜 과거도 아니지만요. 바르셀로나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피카소 미술관이 있어요.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특별한 원화도 볼 수 있습니다.


허버허버 관람하느라 공간 사진을 많이 못찍은(...)


참고로 저와 일행은 평일 휴무일에 방문했다가 헛걸음을 한번 했습니다. 방문전에 구글 검색하셔서 오픈중인지 아닌지 꼭 확인하세요! 갤러리는 바르셀로나 골목길 어귀에 있는데요 막상 입장하면 그럭저럭 내부가 넓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타 미술관만큼 웅장한 규모는 아니어서 다소 놀랐답니다. 나름 피카소 미술관하면 매우 유명한 갤러리여서 규모적인 면에서 기대를 했는데 그정도는 아니었어요.


회화가 아닌 다른 전시물들도 관람가능


피카소 미술관에 꼭 오고 싶었던 이유는 당연! 눈으로 보고 싶었던 작품의 원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피카소 미술관 소장의 그림은 아니지만 최근 이곳으로 옮겨져왔으며 + 한국인이 꼭 보면 좋을 작품이에요. 무엇일까요? 아마 피카소 작품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당연 알고 계실거예요.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파블로 피카소


바로 한국전쟁의 참담함을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작품입니다. 원화입니다. 원화인데도 별다른 보호 장비? 가 눈에 보이지 않아 이것 또한 의외였어요. 6.25 전쟁에서 피카소가 목격한 미군부대의 참혹한 학살을 보여줍니다. 군대vs군대의 구도가 아닌 군대vs여성의 구도를 보여줌으로서 더욱 그 비극을 잔인하고 혹독하게 그려냅니다. 어머니 혹은 여형제의 손을 잡은 어린 소년과, 불러온 그녀들의 배에 냉혈하게 조준된 무기들을 보세요. 전쟁이 그려내는 참상과 대학살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나치가 유대인을 탄압하고 학살했던 것처럼 전쟁은 무자비한 홀로코스터를 만들어내고 이는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비극'입니다.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anti-war 작품이자 한국을 소재로 했다는 점, 원화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인의 기쁨이자 슬픔입니다. 


하지만 화가 났던 것은, 이 작품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습니다 (...) 피카소 미술관의 상설전시를 한국어 가이드로 관람할 수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의 학살' 작품은 한국어 가이드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 공허했습니다. 왜 주요작품 설명이 없는건데.


피카소! 하면 생각나는 작품들 역시 한국어 가이드가 없음


또한 한국 미술 교육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좌측 작품도 오디오 가이드가 없습니다. 피카소의 큐비즘을 떠올리면 저 작품이 단번에 생각나는데 해설이 없어 아쉬웠어요. 우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피카소의 작품은, 그가 스페인의 자랑스러운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나눠져있죠. 마치 깨져버린 사혼의 구슬처럼 (...) 프랑스, 영국, 미국 전 세계에 흩어져있어요. 아마도 그곳에 가면, 오히려 더 유명하고 어마어마한 피카소 역작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 거대 역작 '게르니카' 원화는 스페인에 있습니다. 이건 마드리드 편에서 소개할게요!


피카소의 초기 미술 작품


본격적으로 피카소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도 미술관련 전공자는 아니기에 배운대로 쉽게 풀어써보겠습니다. 피카소는 결론부터 말하면 엄친아 (...) 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와 전혀 다른 삶이라고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우실까요? 그의 아버지 호세 루이즈 역시 스페인의 화가이자 미술교사였습니다. 피카소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으며 어린시절부터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단단하고 풍족한 뿌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초기작품에는 상당히 아카데믹한 면이 많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세요. 고전명화의 느낌이 물씬 풍기죠? 그가 1880년대의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아카데믹한 면이라고 판단됩니다.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교과서위주로 배워(~) 개성있는 작품이란 생각은 그닥 들지 않죠. 


파란잔 파블로 피카소


그는 인물에 대해 그리던 초창기의 아카데믹한 작품에서 조금씩 벗어납니다. 이 파란잔은 길고 얇은 판화인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인물이 없어요. 푸른 색감에 피어난 한송이의 붉은 꽃이 매우 눈에 띕니다. 청색조의 날렵한 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신기하게도 이 작품을 방사선 촬영한 결과, 한다발의 꽃을 든 남자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도무지 저는 보고 믿을 수 없었지만 오디오 가이드에서 그러더라구요. 모쪼록 이 작품은 청색시대에 들어선 피카소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러한 청색시기를 피카소 개인의 첫번째 예술시기라고도 한다네요. 그가 아카데믹한 면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의 색채를 갖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마고 파블로 피카소, 훨씬 알록달록해진 색감


정물을 그리며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기른 그는 비로소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인물의 본질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고독, 모성, 질병, 광기처럼 매우 소외되고 슬픈면이었습니다. 마고를 보세요. 붉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에 띄지만 그것이 온전히 기쁨만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뮤즈가 갖고 있는 소외되거나 어두운 면모까지도 담고자 했던 피카소 였습니다.


그런데 아세요? 피카소는 사실 무척이나 자의식과잉 화가였다는 것을 (...) 그와 관련된 일화를 보면 얼탱이가 없는 에피소드들이 참 많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는 집안이 좋고 전문적인 교육을 날때부터 받은 엄친아였습니다. 자신 스스로, 실력이 있고 촉망받는 인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돈 대신 수표에 사인을 해주면서 '언젠가 매우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네요. 밥먹을 때도 이런 방법으로 공짜로 먹었다고 합니다. 이 식사비보다 지금 내가 지불하는 수표가 훨씬 값비싸진다면서 말이죠. 주인 입장에서는 뭔 저런 미친놈이 다있나 싶었겠지만 재수없게도, 그 말은 사실이 됐습니다. 




물론 황당하긴 하지만 그의 허세는 사실 나름대로의 믿는 구석이 있긴 했습니다. 이유있는 자의식과잉이었죠. 그 이유는, 그가 진실로 현대미술사에 있어서 눈부신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가 살아생전 미술 작품들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예리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그림에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떠한 서사가 담겨있는지 구구절절 tmi 남발하듯 설명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한 색과 선의 조합보다 무언가 이야기가 있고 사연이 있는 작품에 더 매혹을 느낀다는 걸 피카소는 알고 있었죠. '스토리 텔링'의 힘을 처음으로 이용한 화가일까요? 아무튼 이러한 전략은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전략이라기보다는 그가 진실로 자신의 작품에 애정이 있었기에 스토리까지 잘 펼칠 수 있었겠죠.


그러나 그는, 여성편력이 심했기에 '위인으로 칭송해선 안된다.'라는 평가도 받습니다. 여러 여성 뮤즈를 사용했지만 그들 중 자살한 사람이 무려 둘이나 됩니다. 생존자 중에서도 정신병을 얻은 사람이 둘입니다. 유부녀와 동거를 하기도 했고 10대 소녀에게 홀딱반해 버리기도 했죠. 그가 188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생존한 사람인걸 고려해야 합니다. 이 시기의 도덕적 윤리관이 지금과 크게 상이할까요? 그는 자신이 뮤즈를 소모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알면서도 오직 작품을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편취했습니다. 그러므로, 파블로 피카소를 인간적으로 위대한 거장이라고 추켜세우는데는 분명한 오류가 있습니다. 물론 그를 어떤 화가로 기억하냐는 현대에 남은 우리의 몫이며 개인의 판단입니다만, 아직까지 세상은 그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하긴 합니다(고갱도 이런식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디오 가이드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공허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모방작품 총 58개 파블로 피카소


또한 피카소는 '모방'에서 영감을 얻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나쁜말로하면 '손민수 장인'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괜찮다 싶은 것을 따라하는 작품이 꽤 있습니다. 이후 마드리드 편에서 브라크의 큐비즘 작품과 비교하면서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모방이 미술에 있어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우수한 작품을 예리하고 민첩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니까요. 피카소는 특히나 벨라스케즈를 좋아했습니다. 벨라스케즈 역시 스페인의 화가인데요. 아래의 그림이 바로 피카소가 58번이나 재해석한 벨라스케즈의 시녀라는 작품입니다.



벨라스케스 역시 스페인 사람이라 동향인에게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요? 아니요. 이 작품을 보면 굉장히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인물의 직업/행동/표정 역시 다양합니다. 생동적이죠. 그래서 분석할 포인트가 매우 많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피카소는 오리지날 인물의 색과 형태를 죽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합니다. 물체, 공간을 변형하고 강렬한 색과 기하학 덩어리로 모방합니다. 피카소의 시녀들을 탄생한 셈입니다. 이 58개의 모방작품을 만드는데 5개월이 걸렸다고 해요. 


과일바구니를 든 사람 파블로 피카소


그럼 이제 그의 모방이 아닌, 순수한 그만의 큐비즘 작품을 살펴봅시다. 입체주의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갈피를 잡아가던 시점의 그림입니다. 초기 스타일의 화풍과 굉장히 멀어지죠. 고전주의와 당시의 큐비즘을 절묘히 조화시켰습니다. 낮은 채도는 슬픔을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그가 본질적으로 보고자 했던 소외된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요. 과일바구니를 든 자연스러운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후기 인상주의와 큐비즘의 사이에 존재하는 그의 과도기 작품입니다. 


비둘기들 9점


9개의 작품이 있는 '비둘기들'을 보세요. 큰 창문이 있죠? 고전적인 주제에서 창문을 주로 내부와 외부의 대화를 말합니다. 피카소는 이처럼 고전적인, 아카데믹한 면을 아예 떨쳐내지는 않되 자신만의 큐비즘에 녹여냈습니다. 독방이 있는 비둘기와 새끼 비둘기, 그들의 솜털 등의 다양한 디테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를 꼼꼼히 분석한 것처럼 이 작품에도 잘 녹아 있습니다. 또한 창을 통해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듯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외부에서 내부로 말려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창 안쪽에서 더 섬세하게 묘사된 비둘기들이 이를 강조시켜줍니다. 이것은 '만(灣)'의 느낌을 더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그의 라이벌이었던 앙리 마티스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 강렬한 색채들을 보세요! 야수파 마티스가 이 작품을 본다면 "이 녀석, 색채 좀 쓸줄 아는데?"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색조와 구조 모든 것이 앙리 마티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피카소 자신에게도 라이벌의 존재는 꽤 긍정적인 창작 동기가 됐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남기기도 했거든요.


"도달할 목표가 없는 모든 것, 정복한 것, 꿰뚫은 수수께끼에 나는 관심이 없다."
-파블로 피카소


자클린의 초상 파블로 피카소


이 작품으로 피카소 미술관을 마칩니다. 이것은 1961년에 피카소와 결혼한 마지막 뮤즈인 자클린의 초상입니다. 강렬한 한쪽 눈을 보세요. 마치 관찰자를 꿰뚫어보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큐비즘을 담고 있으면서도 매우 현대적입니다. 왜냐하면 두개의 틀 액자속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잘 보면 겉 테두리 액자프레임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실존 액자속의 그림액자, 그림속의 그림인 셈입니다. 강렬한 한쪽 눈으로 관찰자를 바라보는 느낌이 더욱 깊어지고 오묘해집니다. 


여기서 하나 더! 자클린에 대한 피카소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자클린의 목이 상당히 얇고 깁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클린은 목이 굵고 짧았습니다. 


자클린의 생전 모습


이 여인은 피카소가 죽은 이후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칩니다 (...) 그러나 딸인 캐서린 휴튼과 바르셀로나측이 여전히 커뮤니케이션하고 있기에 이 딸이 여러 작품을 미술관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과연 자클린은 하늘에서 피카소와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이미 거기에는 6명의 뮤즈가 더 기다리고 있을텐데.



2) 까탈루냐 음악당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밤거리, 크리스마스 시즌 실컷 누림


피카소 공부까지 빡세게 했으니 이제 음악 감상하러 갑시다! 우리는 즐거운 플라맹고 공연과 음악회를 듣기위해서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 길거리에 아름다운 조명들이 즐비했습니다. 오른쪽은 엘꼬르테 잉글레스 백화점이며 스페인 고유 브랜드 백화점입니다. 예쁘지요? 꼭 폭포처럼 조명이 쏟아지는데 세비야에도 비슷하게 꾸며놨더라구요.


작아보이지만 무척넓은 ZARA 매장


또한 스페인에 왔으면 옷 쇼핑을 해야죠. 세계적 스파 브랜드 ZARA가 스페인 브랜드입니다.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쇼핑해보세요. 저는 못했답니다. 집시한테 돈을 다 털려서요(흐긓그흑흑). 텍스 리펀도 요청하셔서 꼭 받으세요!


작은 공연장의 플라멩코 공연


그리고 플라멩코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스페인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곳이 꽤 많습니다. 시간과 가격대를 각자 고르셔서 선택해보세요. 화려한 몸시위와 탭댄스에 입을 떡! 벌리며 봤지만 너무 피곤해서 좀 졸았습니다 (...) 근데 진짜 꼭 한번은 감상하고 귀국해주세요. 절대 잠이오거나 졸린 공연은 아닙니다. 제가 너무 방전돼서 그만 (...) 아무튼 간에 진짜 짱입니다. 최고 최고! 와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드디어 까탈루냐 음악당입니다! 이 음악당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꼭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아름다운 공연장입니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역시나 지독한 디테일과 수려한 아름다움, 곡선미로 점철돼있습니다. 매우 격식있는 장소이기에 복장규정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짧은 치마와 노출, 나시 의상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공연 시작 시간을 엄격준수합니다. 한 5분정도 늦어도 조용히 들어가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시면 입구 CUT! 아까운 표값을 날리게 되실지도... 



정말 아름답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까탈루냐 음악당! 좋은 기회가 있어 VIP 티켓으로 무려 맨앞에서 2번째 줄에 앉아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이날 우리가 감상한 공연은 헨델의 메시아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노래 아시죠? 이 음악이 바로 헨델의 메시아입니다. 2부에 나왔습니다.


음악당 천장까지 완벽함


사실 저희 정말 걱정많이 했습니다. 낮일정이 너무 타이트했는데 클래식 감상이라니, 백퍼 자는거 아니냐?!! 빼박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너무 피곤했던 여행객들은... 무려 VIP 석에서 성악가들과 눈이 마주치면서까지 졸아버리는 대참사를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헤드뱅잉도 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도무지 졸음이 컨트롤이 안됐으며 하필이면 앞자리라서 숨을 수도 없었고 중간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위안인것은 메인 성악가? 테너분? 그분도 본인 파트 끝나고 앉아서 눈 비비는거 다 봤습니다. 사람이면 어쩔 수 없구나 싶었어요. 초호화 오케스트라 돌비 사운드 어쩌고를 들어도 졸아버리는 ....


헨델 메시아 요약


이 한장으로 저의 음악감상 요약을 대체합니다. 미술은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클래식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다보니 졸았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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