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청예 Jun 03. 2021

소설로 월700 버는여자

따라 하지마세요 뭐든지

*0000는 실제 사이트이며 가명입니다.





[박영선 님으로부터 3,500,000원이 입금-]

[지정은 님으로부터 3,500,000원이 입금-]



"수 코스로 1인분이요."



 이번 달도 채웠다. 나는 딱 월에 이 정도를 번다. 1원도 엇나가는 일이 없다. 오늘로 1년째이다. 기념적인 날이니 모처럼 기분 좀 내보자. 혼자 먹어도 한 끼에 30만 원이지만 아깝지 않다. 잔고가 풍족하니까.



 수 코스에는 다랑어가 부위별로 서빙된다. 그날마다 바뀌는 사케도 추가된다. 풀로 다 즐기려면 어림잡아 50분이 소요된다. 주방장이 영리한 편이라, 50분 먹고 10분 앉아 쉬다 가라는 뜻이 틀림없다. 한 끼에 온전히 1시간을 투자하면 온 몸이 만족으로 꽉 찬다. 극진한 대접, 내가 바라던 바다.



"실례지만 무슨 일 하시는지."

"글 써요."

"어떤?"

"소설요."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내가 소설로 이만큼 성공했다고 하면 당연 유명한 드라마 작가, 히트 친 영화감독, 예능작가 정도를 읊는다. 그것이 모두 틀렸다고 하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만큼 순수 글쟁이가 나 정도로 돈을 버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이번에 걸려든 영선 씨와 정은 씨를 예로 들어볼까. 그들은 문학 쪽 문하생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그득그득한 학생들이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즐겨한다. 나는 국내 탑 문학 커뮤니티 운영자 계정을 100만 원에 샀다. 그 후 [추천 SNS계정]으로 나의 SNS를 게시했다. 한마디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원맨쇼 한 거다. SNS에는 주로 내가 쓴 소설을 올린다. 딱 읽기 좋을 분량에, 요즘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문체와 소재로 이뤄진 글이다.



 내 특기라면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것. 또 하나 더 뽑자면 글을 매우 빨리, 많이 쓴다는 것. 나는 하루에 4,000자짜리 글 5편을 소화할 수 있다. 자. 그럼 이 글을 팔아서 돈을 버냐고? 천만에! 소설 따위는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글을 사지 않아. 다만 훔칠 뿐.



"박영선 씨 맞으시죠? 사이버수사대에서 연락드렸습니다."



 하루에도 몇백 명이 걸려드는 내 덫들에는, 그들이 탐낼만한 글들이 많다. 아니 굳이 글이 아니어도 된다. 문단, 더 잘게는 문장이 있다. 나는 SNS 프로필에 '편하게 읽다 가세요. 저는 그냥 직장인입니다.'라는 함정을 넣어놨다. 어떻게 굴러가냐면, 이 지점부터가 재미있다.

 


 문하생들에겐 욕심이 있다. 더 기발한 문장, 더 참신한 소재의 글을 써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글에 관해 고민한다. 그만큼 진심이니까. 근데 눈 앞에 꽤 괜찮아 보이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도 온라인에 전체 공개로 대놓고 올라와있네. 더군다나 이 사람은 작가도 아니래. 직장인이래. 문체 괜찮은데, 단어 좋고, 소재 그럴 듯 하단 말이지. 어때, 모방에서 창조가 시작된다는데 한번 갖다 써볼까?



 쉽게 걸려든다.



 한 문장만 훔치는 건 시작이다. 한 문단씩 가져가면 더 확실해지고, 아예 키워드나 구성을 훔쳐간다면 더욱 고맙다. 문체만 바꾸면 안 걸릴까? 어림없다. 0000 사이트는 월 30만 원만 내도 카피들을 다 잡아준다. 유사율 10%까지는 내가 봐준다. 그래, 애썼구나- 싶으니까. 대신 10%를 넘어서는 순간 가차 없다. 지적재산권침해 및 저작권침해, 영업방해, 정신적 손해보상까지 모두 다 건다. 영업방해는 왜 거냐고? 난 출판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다. 출판 쪽은 사업자 하나 따는데 돈도 안 드니까. 그런 내가 출판을 위해 쓴 글을 문하생들이 훔치는 거다-라고 판을 짜는 거지.



 창작자에게 '트레이싱 이력'은 죄악이다.



 모방에서 창작이 나오는 건 맞지. 모든 창작이 다 그렇지. 하지만 우리에겐 룰이 있잖아? 예술 혹은 사기 둘 중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한다. 모방할 거라면 덜미를 잡히지 말아야 하고 창작할 거라면 끝장나게. 그게 이 바닥의 룰이다. 어설픈 실수는 죄다. 논문 한 페이지만 훔쳐도 난리가 나는 세상인데 너무 남의 글을 우습게 본 건 아닌가요? 오히려 내 쪽에선 당당하다. 350만 원은 그들의 예술가 인생 목숨 값과 같다. 트레이싱으로 고소된 혐의 평생 안고 살래요? 돈 낼래요? 아니 그러게 괜찮아 보인다고 막 가져다 쓰면 되나요. 350 받고 뭐라도 된 듯한 훈장님 훈수는 덤.

 


 처음 K의 글을 훔쳤을 때 내가 냈던 벌금 값이 350이다. 나는 그날의 치욕을 잊지 못한다. 어미만 바꿔 쓰면 모를 줄 알았는데, 덜미가 잡혀버렸다. 출간 계약을 맺었던 작품은 일방적 계약 파기를 당했다. 지인들은 모두 나를 '문장 좀도둑' 정도로 취급했다. 세상에만 나왔다면 대작이 됐을 텐데. K는 치밀하고 짤 없는 년이었다. 그 년이 조금만 더 멍청했다면 들키지 않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내 글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그런 연유로 350씩 두 명이다. K보다 내가 2배는 더 똑똑하다는 징표다. 내게 붙은 라벨을 수많은 문하생들에게 건네주는 값 350만 원. 나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이 라벨을 붙여줄 것이다. 계속해서 내 글과 공간을 추천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현혹하면서.




(픽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