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
제 키요?
153, 아니 155cm요.
제 키는 153cm입니다. 대충 그렇습니다. 여자치고도 꽤 작은 키라서 키를 물어보는 질문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항상 2cm의 거짓을 보태서 155cm 정도라 대답했습니다. 작은 거짓도 거짓인터라 키 생각만 하면 늘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더러 누군가는 왜 153이면서 155라 말했냐 묻습니다. 그럼 저는 혹시라도 컸을지 모르니 대충 올림한 거예요~라며 씨알도 안먹힐 변명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요? 냉정했죠. "그럼 160도 되겠네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봐도 160으론 안보이는 키라 그 정도로 거짓말하진 않으니까요.
여자는 키가 작아도 괜찮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싫은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키가 크고 싶었어요. 제 추측엔 모계유전으로 키가 더 크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 키크는 약도 먹어보고 줄넘기도 열심히 뛰었으나 신체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왕이면 귀여운 사람보다 멋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귀여움도 귀여움 나름이라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귀엽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어요. 또한 시혜적인 멘트 앞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여자는' 이라는 단서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키가 작으면 안 되고 여자는 되나요?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에게나 자신이 원하는 체형이 있습니다. 저는 키가 크길 바랐고요. 그러므로 타인이 '괜찮아' 라고 판단할수록 씁쓸함이 더 커졌어요.
너는 깔창 안깔지?
아니요. 죄송합니다. 저도 살면서 깔창, 정말 많이 깔아봤어요. 한 때 인터넷에 키작은 남성들을 위해서 깔창이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네요. 한창 꾸미는데 관심이 많았던 터라 저도 그 깔창을 사봤습니다. 남성용 중에서도 제일 작은 S사이즈로 사왔어요. 제 발이 225mm정도라 아무리 S라도 많이 컸습니다. 집에서 가위로 슥삭슥삭 잘라 발에 맞게 바꾼 다음, 컨버스 하이 밑창에 깔았습니다. 4~5cm 정도는 은밀하게 클 수 있었죠. 한번은 신발을 신고 친구를 만나는데, 누가봐도 굽 높은 워커를 신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깔창도 많이 까셨는지 티가 났습니다. 저는 그런 신발만 봐도 동질감이 들어요. 친구가 말하기를 "너무 티난다. 아무리 키가 작아도 그렇지 너는 깔창 안깔지?" 라더군요. 어어... 지금 발밑에 있는데. 아무리 키가 작아도 라니, 키가 작으니 깔창을 까는 건데요. 혹시 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나요?
160은 돼야 어른답지.
제가 고등학생일 때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는 저를 보면 항상 기도처럼 말하셨어요. "160만 넘어라. 160만." 당신도 키가 작으셨지만, 요즘 세상엔 워낙 키 큰 사람들이 많으니 꼭 그래야 한다더군요. 저도 진심으로 바랐어요. "160만 넘어라. 160만." 하지만 DNA는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할머니가 속상해하셨어요. 아무리 여자라도 요즘은 160은 넘어야 어른 같아보인다며. 저는 지금도 나이만 먹고 어른답지 않은 키로 삽니다. 아직도 할머니는 저를 보고 혀를 차셔요. 할머니, 키가 작아서 속상한건 누구보다도 저랍니다.
키 커봤자 뭐해.
어디가서 키가 작아 고민이라는 티를 내지는 않아요. 이미 어른이고, 더 클 일도 없거니와 성형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체념했거든요. 하지만 제 키를 알아보신 사람들 중엔 먼저 나서서 저를 대변해주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키가 큰 것보다 작은 게 더 좋다더라고요. 죽었다 깨어나도 공감은 안될 말이었습니다. 키가 큰 사람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153에 만족할 이유는 또 없거든요. 반대로 키가 커 고민인 사람들도 똑같으실 거예요.
초등학생 몸이네.
음. 그러게요. 키가 작으면 묵묵히 살아도 언제나 초등학생이 됩니다. 초등학생이란 말에서 벗어나려면 적어도 빵빵한 가슴이나 굴곡진 골반, 터질 것 같은 엉덩이 정도는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러면 또 어떡하나. 네. 노력을 해야겠지요. 성형외과에 가서 골반 필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800만원이라고 하네요? 상당히 놀랐지만 그렇게라도 노력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 "추천하지는 않아요." 골반필러를 주력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제 몸매가 골반으로는 가망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전 그 말에 작은 위로를 느꼈습니다. 지금은 그 돈의 반절로 치아교정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153cm로 살아가는 건 특별하지 않습니다. 편하지도 않고요. 크게 불편하지도 않네요. 그냥저냥 키 작은 여자인 상태로 살아가는 거죠. 가끔 초등학생 몸이란 말을 들어도, 여자니까 다행이란 말을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합니다. 깔창 깔고 킬힐 신으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는 거죠 뭐. 치열한 외모시장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억지로라도 귀여운 시늉을 하며 이미지를 셀링하면 됩니다. 참 아쉽습니다. 내가 차라리 158이라면, 아니 160이라면, 인심써서 165라면, 그 보다 170이라면 정말 나는 편해졌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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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쓰고 최근에 건강검진 받았는데 154라고 나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