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그리는데 푹 빠진 일상이 계속되었다. 어느덧 꽃집에서 가져오던 꽃 종류가 부족해졌고, 자연스레 제주에 피는 들꽃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차를 타고 그냥 보이는 들꽃을 찍어보려 했다. 하지만 서울과 달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제주에서 여자 혼자마음 편히사진 찍기란 생각보다 힘들었다. 어째서 찍고 싶은 들꽃은 저쪽 멀리 외진 곳에 있는 걸까.
계획이 바꿨다. 제주에서 들꽃을 찍는 모임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모임은 좀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은 보통 무례한 사람이 꼭 껴있는데 굳이 기분 상할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무례한 사람보다 꽃을 그리고 싶은 내 욕구가 더 컸다.
한참을 검색하고 나서 한 모임을 찾았다. 꽃에 진심이고 2차나 술자리 없는 모임. 딱 내가 찾던 모임이었다. 살짝 긴장한 얼굴로 가입신청을 하고 얼마 안 돼서 출사날에 참석하는 것까지 허락되었다.
첫 야생화 출사 모임
야생화 출사 모임에 참석하는 날이 왔다. 그동안 모임의 사진을 보며 나도 복장을 갖춰 입었다. 다행히 서울에 있을 때 종종 등산을 했던 터라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있었다. 등산복, 등산신발, 모자, 장갑 등 야생을 파헤쳐도 문제없을 무장을 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10명 안 되는 사람들이 모였고 대다수 어르신이었다. 아마 내가 제일 어린듯했다. 그래서인지 "아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동!"
"이 야생화이름은 ○○입니다."
"찍으세요."
"자. 이동!"
"이 야생화는 귀합니다. 찍으세요."
"이동!"
.
.
.
제주 구석구석 오름, 바다, 숲 여기저기 찍고 이동하는 반복을 몇 번 했을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과 아주 잠깐 하던 대화는 야생화에 대한 주제가 전부였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첫 모임이 끝났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차에 혼자가 돼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 '
'너무 좋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보람찬 출사였다. 특히 모임의 회장인 어르신에게서 야생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첫 출사 이후로 계절이 바뀌도록 모임에 참석을 했고, 바람대로 제주의 들꽃들을 그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