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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바라기 Oct 05. 2023

07. 덮어두었던 욕망이 열렸다

손그림의 맛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기분 좋은 이상한 날.

파란 하늘에 유난히 화려하고 하얀 구름이 몽글거렸고,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이 날이었다. 세상만사 마음이 너그러운 상태로 정처 없이 제주 길을 드라이브했다. 한적한 마을길에 들어서니 길 따라 쭈욱 아마릴리스가 피어있었다. 마음이 편하면 모든 것이 더 예뻐 보인다더니, 꽃이 핀 것을 눈에 담고 싶어서 차를 세우고 말았다. 사진으로 몇 장 찍은 후 기분에 취해 아마릴리스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기분 좋은 날이어서 그랬을까. 여유로워서 그랬을까. 평소라면 그냥 했을 생각을 눈을 이글거리며 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더 매력 있네. 그리고 싶게.'


그림을 태블릿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손그림은 마음에 덮어뒀었다. 현실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손그림에 대한 욕구는 항상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었고, 이상한 날에 나도 모르게 불타올랐다. 불은 활활 타올랐고 이 불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시작하자.







내가 그림 그리는 작업실은 컴퓨터가 전부였다. 그래서 손그림에 필요한 미술도구를 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손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내 주력은 파스텔이었으나 작업실이 너무 지저분해질 것 같았다. 간단하면서 청소가 편한 재료가 필요해...

음...

음...

아!

색연필!!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색연필로 그리는 꽃'을 찾으니 식물 세밀화와 보태니컬아트가 나왔다. 이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꽃을 그리고 있었고 색연필의 종류도 정말 다양했다. 신세계를 찾은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동안 관련된 공부를 했고 몇 번의 화방을 오가며 재료를 구매했다.


그리곤 즐겁게 그렸다.






손그림의 맛을 다시 느끼게 해준 아마릴리스     <자연바라기 그림>




그림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재미있었다.



사실 예전부터 동물은 좋아했지만 식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꽃선물은 선물 준 그 사람의 마음이 좋았고, 길에 핀 꽃은 그 꽃을 보며 예뻐하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근데 이번 손그림으로 꽃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꽃들도 그려보고 싶은 걸 보면 말이다. 그 후 작업실에 꽃을 사 오며 계속 그림을 그렸고, 그릴수록 욕망은 더 커져서 이젠 제주를 다니며 보이는 모든 들꽃들이 그리고 싶어졌다.


뭐야. 나 꽃에 홀렸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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