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초반에는 거리감각이 서울에 맞춰져 있었다. 서귀포에 살면서 제주시를 방문할 때면 "서귀포에서 왔다고요?멀리도 왔네."라는 말들이 신기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제주의 흐름에 익숙해지니 제주시에 가는 건 정말 멀게 느껴졌다. 이제는 서울에서 강원도 놀러 가듯이 가끔 가는 곳이 되었다.
거리감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이 전보다 느릿해지며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뒤처지고 있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들 자신의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는데 나는 이래도 괜찮은 건가? 무계획도 아니었다. 쉬는 기간을 어느 정도 정해놓고 내 인생 처음으로 마음 편히 쉬어보자 했건만, 그동안 책임감에 눌려 살아서 그런지 쉬는 기간에도 죄책감과 불안함이 불현듯 찾아왔다.
서울에서의 내 생활 흐름을 보면 어릴 때부터마음 편히 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잠깐' 쉰다는 것조차 죄책감이라는 가시로 마음 깊이 박혀있었다. 가시는 뺐지만, 남은 상처 때문일까 갑자기 찾아온자유가 불안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면 나는 쉬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강한 정신력이라 생각했는데 쉬는 기간을 좀 길게 갖는다고 불안해하는 내가 좀 짠해졌다.
함께하던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생활이란 내가 나 자신을 평소보다 더 자주 들여봐 줘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항상 해주던 격려와 위로를 나 자신에게도 해주는 습관을 길러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