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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여성 문학, 이탈리아 문학, 작가의 정체성

by 김시연

단순한 우정 이야기 이상의 서사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는 두 여성의 우정을 중심으로 한 성장 서사이지만, 단순한 우정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정체성, 계급 상승,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의 생존과 선택의 문제를 다루며,

20세기 이탈리아 나폴리라는 특정한 지역성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특히 '우정'이라는 테마를 통해 두 여성의 대조적 삶을 탐구하면서, 경쟁과 연대, 동경과 질투, 동화와 배척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심연을 깊이 파고든다.


서사적 특징과 문학적 기법


1인칭 시점과 내면 서술 – ‘레누’의 필터를 통한 세계

레누(엘레나 그레코)의 1인칭 서술을 통해 진행된다. 이것은 단순한 회고담이 아니라, 레누라는 인물의 심리와 감정의 흐름에 따라 서사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이다.


레누의 서술은 객관적이지 않다.

그녀는 리라를 이상화하거나, 반대로 폄하하며 자신의 불안과 열등감을 투영한다.

독자는 리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으며, 레누의 시선에 의해 재구성된 리라만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읽는 내도록 리라의 실체를 확신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리라란 누구인가?’를 탐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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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라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그녀를 경멸했을까?”
“내가 리라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나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적 요소


레누의 감정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며, 때로는 사건보다 그녀의 생각과 느낌이 먼저 전달된다. 기억과 현재가 뒤섞이며, 시간의 흐름이 유동적이다.


리라와 레누 – 거울 속의 자아와 분열된 정체성



“리라는 나의 눈부신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리라는 레누의 ‘이상적 자아(Ideal Self)’이자 ‘경쟁자’.

레누는 리라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평가한다. 그녀는 리라가 가진 천재성, 직관, 강한 의지를 동경하면서도, 리라가 사회적으로 실패해 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성공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동일시와 분리의 끊임없는 반복 과정.


레누는 문학과 지식을 통해 사회적 상승을 꿈꾸는 인물이지만 그녀의 모든 선택에는 리라의 존재가 영향을 미친다. 리라 없이 레누는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없다.

리라는 본능적으로 세상을 꿰뚫는 비범한 인물 그러나 그녀는 결국 환경에 갇히고, 체제의 희생양이 된다. 그녀는 사회적 실패자로 남지만, 레누의 정신 속에서 불멸한다.



“나는 리라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결국 이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 자아 탐색과 존재론적 문제로 확장된다.



공간과 계급 – 나폴리의 골목에서 사회적 상승까지



“우리는 언제나 벗어날 수 없는 나폴리에 갇혀 있었다.”


나폴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운명을 결정짓는 공간이다. 폭력과 가난, 가부장제와 계급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제한된 삶을 살아간다. 리라는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레누는 교육을 통해 나폴리를 떠난다. 그러나 레누는 결국 나폴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라와 나폴리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상승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내면에는 나폴리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공존한다. 결국 그녀는 지리적으로는 떠났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나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회적 계급 상승이 진정한 해방을 의미하는가?

교육과 지식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만들어내는가?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여성 성장소설에서 벗어나 사회적 계급 구조를 비판하는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누구인가?


여성의 삶, 계급, 사회적 억압 속에서의 선택과 희생을 탐구하는 문학적 실험이다.

레누와 리라는 서로의 거울이다. 리라는 사라지지만, 레누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이 소설은 두 여성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자아의 형성을 탐구한다.



“우리는 누구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가?”
“우리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과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가?”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 질문을 던지며, 독자를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선, ‘삶’ 그 자체에 대한 문학적 탐구가 된다.



가부장제와 여성의 역할 분석


1) 여성의 삶을 결정짓는 억압적 구조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여성 인물들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리라와 레누는 이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


리라 – 결혼과 가정을 통한 생존 전략


리라는 자신의 천재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구조 속에서 길을 잃는다.

교육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하지만, 이는 그녀를 더욱 억압적인 현실로 몰아넣는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안정이 아니라 새로운 감옥이 된다.


레누 – 교육과 사회적 상승을 통한 탈출


레누는 리라와 달리 지식과 교육을 통해 나폴리를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후에도 나폴리는 그녀를 따라다닌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리라와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지 못한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지만, 궁극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여성의 삶에서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준다.


2) 여성의 우정과 연대 – 그러나 완전한 동등함은 불가능한가?


“나는 리라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이 작품에서 여성 간의 우정은 단순한 동지애가 아니다. 우정과 경쟁, 동경과 질투가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다.


리라와 레누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서 ‘권력의 문제’를 내포한다.

레누는 리라를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이기고 싶어 한다. 리라는 레누에게 지적 우위를 가지지만, 사회적으로는 점점 몰락한다. 두 여성은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서로의 존재가 버겁다.


페란테는 ‘여성 연대’의 이상을 단순히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인 관계 속에서 여성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때로는 억압할 수도 있는지를 그려낸다.



3) 나폴리라는 공간 – 여성의 가능성을 가두는 사회적 감옥


나폴리는 폭력, 가난, 가부장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다. 여성들은 나폴리에서 벗어나야만 자신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리라는 떠나지 못한다. 그녀는 끝까지 나폴리에 남아 있으며, 이 공간의 희생자로 남는다.


레누는 떠났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녀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계층을 상승했지만, 여전히 리라와 나폴리를 떠올린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도망친 공간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단순히 ‘여성 성장 서사’가 아니라, ‘공간과 여성’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나폴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억압적 시스템이다.




나폴리 사중주와 이탈리아 문학의 흐름



1) 이탈리아 문학 전통 속에서 페란테의 위치


“엘레나 페란테는 21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가장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탈리아 문학의 전통적인 주제인 “계급”과 “사회 구조”를 여성 서사와 결합한 작품이다.


이탈리아 문학 속 계급 문제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 – 『말라볼리아 가(家)』(I Malavoglia, 1881) → 가난한 어촌 가문의 몰락

알베르토 모라비아(Alberto Moravia) – 『경멸』(Il disprezzo, 1954) → 전후 이탈리아 사회에서의 도덕적 타락

프리모 레비(Primo Levi) –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 1947) →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


페란테는 이러한 사회적 탐구를 여성의 시각에서 재해석했다.

나폴리의 사회적 계급과 여성의 삶을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이탈리아 리얼리즘을 창조했다.

<나폴리 사중주>는 단순한 성장 소설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를 투영하는 거대한 거울이다.




페란테의 익명성과 작가의 정체성 문제


1) ‘페란테 현상(Ferrante Fever)’ – 익명성의 신비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엘레나 페란테는 철저히 익명을 유지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있었지만, 본인은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익명성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독자들은 작가의 개인사를 배제한 채 오직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나폴리라는 공간과 여성 서사의 리얼리티가 작가의 실체보다 더 강렬한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익명성은 또한 ‘작가 신화’를 만들어냈다. ‘페란테가 실존하는 인물인가?’라는 논쟁 자체가 소설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익명성은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문학적 전략’으로 작동했다.




2) <나의 눈부신 친구>는 무엇을 남겼는가?


여성 문학으로서 <나의 눈부신 친구>는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탈리아 문학 전통 속에서 나폴리라는 공간과 계급 문제를 리얼리즘과 결합했다.

작가의 익명성 페란테는 작품 그 자체로 강렬한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 질문을 던지며, 현대 문학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가?”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둘러싼 환경이 결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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