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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un 17. 2019

꽃 피는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

https://artlecture.com/article/822


Sprig of Flowering Almond in Glass, 1888, 반고흐미술관(Van Gogh Museum, 암스테르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고, 그래서 가장 안타까운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일생은 우리가 살아오며 진리로 믿고 있는 많은 가치에 정확히 반(反)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실함과 노력과 재능의 조합은 실패할 수 없다고 믿어 왔다. 이 중 하나만 있어도 밥벌이는 할 수 있고, 이 미덕이 합쳐지면 성공의 시너지를 낸다고. 산업사회와 눈부신 경제 발달의 시대에 이 덕목은 실제로 수많은 신화를 이루어 냈다. 한강의 기적에서 비롯하여 스타벅스나 애플의 성공사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 하나가 부족하여 결국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운이다. 알아봐 주는 이가 없어서, 조력자를 만나지 못해서,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생이 너무 짧아서. 이 모든 일에 대해 우리는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 운이 없었노라고.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지독히도 운이 없었던 한 화가를 애틋하게 추억한다. 


스물 셋의 봄이었다. 3월 초였던가. 교환학생 중에 짧은 봄방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인터내셔널 학생들만 듣는 수업이었는데,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온 아이들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봄방학 때 함께 미국 서부 여행을 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평소 친했던 아이들도 아니었는데 조금 의아하면서도 기뻤다. 조용한 동양 여자아이였던 내가 무슨 영문으로 그들의 동행자 후보에 오른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대답인즉슨, 동양인의 영어 악센트는 알아듣기 어려운데 내 말은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 친구들이 모이면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던 것이다. "프랑스나 스페인 애들 영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치?"


천식과 오랜 감기에서 회복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추운 맨해튼을 떠나 따뜻한 서부에 갈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 먼저 여쭤봐야 하는데, 하고 걱정하면서도 입으로는 이미 "I'm in!" 을 외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지도조차 제대로 볼 줄 모르던 어리바리한 아이였다. 여행 동지로는 답답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텐데 그들은 고맙게도 척척 준비를 해 갔다. 자동차를 빌려 서부 해안도로를 달리며 내려오는 경로였다.


10여 년 전의 여행에서 지났던 도시들은 좀처럼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 머릿속에 생생히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바로 아몬드밭이다. 끝없이 푸른 평원에 아몬드 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나무마다 흰 빛의 아몬드 꽃이 만개해 있었다. 미국 서부의 찬란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몬드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우리는 모두 탄성을 지르며 숨죽여 그 경관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과 멀리 보이는 태평양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아몬드 나무마다 꽃은 아낌없이 피어 있고, 꽃잎은 나풀나풀 날리고 있었다. 초록 잔디 위에는 꽃잎이 눈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어쩌면 천국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세상과 분리된 또 다른 세상. 오로지 아름답고 선하고 밝은 것만이 존재하는 세상. 무릉도원, 유토피아, 천계와 같은 이상향의 장소는 이런 곳일 것 같았다.


LA며 샌프란시스코, 산타모니카, 산타바바라와 같은 아름다운 도시들을 모두 거쳤지만 이 아몬드 나무들을 이길 만한 도시는 없었다. 나중에 반드시 그 아몬드 밭을 다시 보러 가리라고 다짐했으나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꿈인 것이다. 쉽게 닿을 수 없는 물리적 거리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공백은 기억을 더욱 완벽한 것으로 미화시킨다.



실제 아몬드 나무(출처: 동아일보)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은 내게 그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낯선 환경에서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혹여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이라도 시킬까 잔뜩 겁먹어 있던 시절. 감히 결석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뒤쪽에 앉아 열심히 경청하던 내성적인 동양 여학생에게 과감히 일행이 되기를 청해 준 친구들은 아직도 고맙다. 그 친구들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서부를 여행하는 것은 물론, 그처럼 자동차를 빌려 해안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이 우리에게만 봄날의 향수와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동안 과일나무의 꽃을 그리는 데 탐닉했던 고흐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라는 역작을 탄생시키기 이전에 이미 수많은 꽃들로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방식을 터득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끝마친 스케치들은 색채보다는 생동감이 더 많이 느껴져. 난 다시 그림에 전념하고 있어. 여전히 꽃이 핀 나무들을 그리고 있지. … (중략)… 새로운 나무를 발견했는데 분홍빛 복숭아 나무처럼 아름다워. 아주 밝은 분홍빛의 살구나무들이지.” (1888년 4월 9일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친구들과 열흘 동안 함께 서부를 여행하며 수다를 떨다 보니 난해하게만 들렸던 스페인계 영어와 프랑스계 영어가 제법 잘 들렸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이야기하니 자신감도 붙었다. 조금씩 수업에서도 덜 조용하고 더 말이 많은 학생이 되어 갔다. 교수님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이 갑자기 그리울 때나 향수병이 도지는 것 같을 때, 아몬드 꽃이 만개한 풍경을 떠올렸다. 꽃잎마다 빛을 잔뜩 머금었다가 내뿜고 있던 황홀한 정경을. 꽃잎이 흩날리는지 빛의 부스러기들이 흩날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밝았던 순간을. 하늘도 바다도, 꽃잎도 잔디도,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이 빛나고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희고 푸른 빛들로 가득 찬 향연은 세상이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사람의 기억이 이 우아하고 장엄한 환희의 풍광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했다.


Peach Trees in Blossom, 1889, 코톨드갤러리(Courtauld Gallery, 서머셋 하우스, 런던)


Orchard in Blossom, 1888,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Scotland)


고흐가 그리고 싶었던 아몬드 나무의 빛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필경 그는 자신이 그 자연의 장관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으리라. 아무리 그려도 만족할 수 없어 동일한 대상을 계속 그렸으리라. 같은 소재를 반복해 그렸던 그의 마음은 아몬드 꽃이 흩날리던 그 곳에서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던 나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셔터를 눌러 보아도 사진은 내 눈으로 본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오롯이 재현할 수 없었다. 한스러울 정도로 안타까웠다. 고흐 역시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고흐가 화폭에 재창조한 아몬드 꽃이나 해바라기를 보고 감탄하나 그 자신은 그림에 결코 만족할 수 없었으리라.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극도의 아름다움을 위해 끝없이 붓을 움직였을 화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그의 마음은 섬세하고도 생명력이 넘치는 고유의 붓터치로 남아 지금도 우리에게 자연의 장엄함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잘 알려진 대로,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동생 테오가 낳은 조카 '빈센트' 때문이었다. 형의 정신병적 기행과 헤어나지 못하는 빈곤을 묵묵히 지지하고 조력해 준 테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고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테오는 자신의 아들에 형의 이름을 명명함으로써 형에 대한 변함없는 우애와 애정을 증명해 보였다. 빈센트는 사랑하는 조카가 혹여 자신처럼 불행한 삶을 살게 될까 염려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생겼음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였다. 그 순간, 삶에 대한 그의 의지는 잠시나마 불타올랐을 것이다.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조카에게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아몬드나무의 경이롭고 환희로운 빛이었으리라.


정신적 불안과 경제적 결핍 속에서도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겼을 고흐의 열정과 고뇌가 전해진다. 그의 절망적이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자꾸만 마음이 먹먹해진다. 삶은 모든 각도에서 그를 옥죄어 오고 있었으나 그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출구 없는 고통 속에 살았으나 삶을 벗어난 후에는 전 인류의 찬사를 받은 그의 아이러니한 삶이 떠올라서 그림은 더 숭고한 청색의 희망과 백색의 순수로 빛난다.


Almond Blossom, 1890, 반고흐미술관(Van Gogh Museum, 암스테르담)




글_아트렉처 에디터_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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