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icture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렉처 ARTLECTURE Jul 16. 2019

발끝으로 서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

- 에드가 드가, 발레리나의 화가

발끝으로 서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

- 에드가 드가, 발레리나의 화가


https://artlecture.com/article/884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졌을 그녀의 발 사진, 그러나 볼 때마다 그 고통의 흔적에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그녀의 발 사진. 매일 연습을 거른 적이 없으리라는 것은 쉬이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연습 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는 그녀의 말은, 사소한 핑계를 끊임없이 만들며 스스로의 게으름을 합리화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킬 정도의 희생과 노력을 감수하며 그녀가 들인 땀의 무게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어 그저 감탄하게 된다.


취미로 발레를 한 지 제법 오래 되었지만 바쁘거나 다른 일이 생기면 자꾸 휴지 기간을 두게 된다. 이러니 실력이 늘 리 없다. 발레학원의 벽은 두 면이 모두 거울로 되어 있다. 자신의 동작과 자세를 끊임없이 관찰하기 위함이다. 발레리나 자신들 외에도 그들을 관찰하여 더욱 잘 알려진 사람이 있다. 바로 프랑스 화가 드가(알레르 제르맹 에드가 드가, Hilaire-Germain Edgar DeGas, 1834-1917)이다. 발레학원의 벽에도 드가의 보급판 그림 서너 개가 연달아 걸려 있다. 발레의 화가로 불리는 드가. 그러나 그의 발레리나들을 소재로 한 그의 유명한 그림은 그가 발레리나들의 노고에 대해 특별히 경탄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발레 애호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드가가 주목한 것은 발레 본연의 예술적 특성만은 아니었다.


발레수업 The Balle Class, 1871-1874,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파리


발레 대기실, 1872,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어쩐 일인지 아름다움은 종종 척박함과 동일시된다. 예술가는 배를 곯아야 할 것 같고 궁핍함과 곤궁함을 몸소 겪어보아야 할 것 같고 낮은 지위와 세상의 편견을 뚫고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워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실상 예술은 그 어떤 것보다도 경제적이며 금전적인 요소와 결부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한 서민들이 아름다움을 꿈꾼다고 한들 생계를 팽개치고 매달리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양성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관심과 재능, 적극적인 뒷받침이 함께 제공된다. 실기 레슨이나 물감, 도구, 악기, 의상 등의 준비를 위해서는 비용이 수반된다. 따라서 예체능을 전공했다고 하는 것은 일정 수준의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와 동일시된다.


드가의 시대에는 그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화가들은 대체로 가난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값싼 술과 허기만 채울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먹으며 그림을 그렸다. 드가는 달랐다. 그는 부유했다.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갖추었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파리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인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Lycee Louis-le-Grand)를 졸업하고, 법대 진학을 희망하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소르본 대학 법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술에 빠져 국립 예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드가에게는 내색할 수 없는 공허가 있었다. 13세 무렵 어머니의 외도와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를 목격했던 것이다. 유년의 경험은 예민했던 그의 기억에 깊이 자리잡아 여성에 대한 그의 인식을 왜곡시켰다. 여성에 대해 그는 때로 깊은 연민과 처절한 사실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철저히 관찰자로 존재한다. 이토록 많은 발레리나를 그리며 염문 한 번 난 적이 없다는 데서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드가가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너머의 현실을 슬쩍슬쩍 그림에서 보여준 것은 그의 생애와도 유사해 보인다. 타인들의 시선으로는 완벽해 보였을 지 모를 그의 외관상 조건이지만 그 내면에 숨겨진 트라우마는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테니. 드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발레리나들은, 그 아름다움을 위해, 혹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다른 대가를 치른다. 그들에게 있어 발레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무대 위의 무희, 1876-1877, 오르세미술관, 파리


당시의 발레리나들은 지금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의 딸들이 시도하는 예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녀의 예능과 비슷했다. 몸을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고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춤을 춘다는 것은 남사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발레리나들이 무대의 조명을 받으며 상반신이 드러난 무용복을 입고 춤을 출 때 부유층은 좌석에 앉아 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부채나 오페라 글라스를 들고 그들을 관람했다. 지금은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지만 당시에는 시각적 유희의 대상이었다. 발레리나가 되는 소녀들은 가난한 하층민 집의 소녀들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무용수를 원하는 부유층 스폰서를 만나 당장의 생계 걱정 없이 살기를 원했다. 화려한 무대의 뒤에 놓인 그들의 실상은 이처럼 척박했다.


드가는 무희의 아름다움과 냉혹한 현실에 모두 주목했다. 여성의 신체와 의상을 표현한 그의 색채와 선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지만, 무용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는 특히 여성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상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것일까. 절친했던 화가 마네와 그의 부인을 그린 그림에서 부인의 얼굴을 너무 괴이하게 그려 놓아 분노한 마네가 그림을 찢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쩌면 드가가 그려낸 발레와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움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그려내기 위한 장치였을 수도 있다. 가장 비현실적인 것과 가장 현실적인 것의 대비를 통해 그 간극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드가의 다른 작품 ‘압생트’ 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술 이름을 그대로 붙이는 것이 적절치 않게 느껴졌던 탓인지 ‘카페에서’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이 그림은 부유와 허기, 물질과 공허를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잘 차려입은 여인은 행복해 보이지 않고, 독한 술과 풀어진 눈동자로 간신히 현실을 지탱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 드가의 그림 속에서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여인을 찾기는 어렵다. 웃고 있다 한들 웃음은 피상적이거나 직업적이다. 사랑받는 여인의 충만한 표정이 아니다. 드가의 자화상은 더하다. 사람들에 대한 그의 자세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중보다는 그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묘사를 위한 것이 중점이었음을, 자화상조차도 대단히 객관적이고 무미건조하게 그려낸 이 화가의 그림은 극명하게 전달한다.


압생트(L'Absinthe), 1876, 오르세미술관, 파리


자화상, 1855,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파리


평생 여성을 그렸지만, 평생 여인을 싫어했으며, 여인과의 스캔들 한 번 없이 홀로 삶을 마감한 드가. 그의 그림에서 여성은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이자 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며, 가정을 위해 희생되거나 공연을 위해 소모된다. 개개인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추상적 상징으로서의 여성만을 그렸기에 역설적으로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아무 감정 없이 스케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대로 우리가 그의 그림에 열광하는 것은 화가의 무심한 시각으로 채색된 그림 속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도 발레리나들은 그림의 주인공일 수 없다. 그림 속에서도 그림 밖에서도 대상이자 객체로만 존재할 뿐, 주연이 될 수 없었던 그녀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드가의 발레 그림은 발레에 대한 선호도의 상승과도 연관된다. 우리가 경탄하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은 가능한 좁은 면적의 힘으로 몸을 지탱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흔히 생각하는 발레의 아름다운 선은 발끝으로 서서 몸의 선을 가능한 곱고 정교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발레리나의 모든 고통이 여기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코어(몸의 중심)의 근력과 관절의 턴아웃, 발등을 동그랗게 휘어지도록 쭉 뻗은 포인트 자세와 같은 동작은 기본적인 준비 작업이다. 발끝으로 선다는 것은 그만큼의 보이지 않는 근력을 길러내어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며,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여 가벼워져야 한다는 말이자. 고작 발 하나만큼을 높이 서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는 발레리나의 발이 감내해야 하는 땀의 무게와도 같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발레리나들의 훈련과 다름 없는 매일을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딱 발끝을 든 정도의 높이를 올라가기 위해 매일을 분투해야 하는.


발레 학원에서 극기훈련과도 같은 강도의 수업을 마치고 땀에 젖은 채 드가의 그림을 볼 때면 가끔 그 아이러니가 실감난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우아한 운동인 줄 알지만 근력과 유연성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운동이 발레이다. 발레리나들의 매일은 이와 같을 것이다. 현실을 잊을 만큼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발레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 우리의 매일도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발끝으로 서기 위해 감당해야 할 무게를 드가의 그림에서 본다.


무대 위의 발레 리허설, 1874, 파스텔과 오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



글_아트렉처 에디터_반승아


Artlecture.com

Create Art Project/Study & Discover New!

https://artlecture.com

매거진의 이전글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