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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는 지나간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한 소중한 선물이 하나 있다. 그 선물에는 여유 있는 사람의 향기가 흐르고, 무한히 깊은 애정이 넘친다. 수 천 년을 이어온 한국의 향기도 그 안에 배어 있다. 그 선물은 바로 ‘한옥’이다.
한옥은 한국인의 삶의 모습과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존중도 담고 있다. 기와를 얹은 집이든 볏짚을 얹은 초가집이든 자연을 거스르는 집은 없다. 자연과 어울리며 나무와 흙과 물, 바람이 만나 이루는 조화는 절정의 창의성을 보여준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너와 나의 편 가름이 없는 집, 공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이곳은 일상에 지친 마음의 치유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이 말은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 주어진 그대로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옥은 땅의 모양을 닮고, 시대를 닮으며, 인간의 지혜를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옥은 자연에서 보고 배운 질서가 그대로 건축으로 들어와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선물 ‘한옥’이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랜 세월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이제 아파트와 현대적인 상징들로 가득하다.
공기가 숨을 쉬고, 은은하게 빛을 받아들이며 자연의 소리가 드나들던 창호는 투명한 유리로 바뀌었다. 지붕의 처마를 따라 흘러내리던 빗물은 벽 속에 감춰진 관을 통해 어디론가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늘어진 곡선의 지붕은 이제 초고층의 마천루들이 만들어내는 메마른 직선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한옥 사이로 흐르던 골목길의 풍경은 사라지고 바둑판처럼 정리된 도로가 되어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잊어간다. 도로 위로는 차들이 주인이 되어 요란하게 오갈 뿐이다.
이런 변화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십 년이다. 나는 이것을 ‘실종’이라고 말한다. 한옥의 실종이다. 내가 한국에서 강연하거나 언론에 기고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안타까움을 적극적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사람들에게 적절히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바쁘다는 것이다. 미래 일류국가로 나아가기에도 바쁜데 전통이란 거추장스러운 것까지 살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전통은 미래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행시키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앞에 있다. 한국의 역할이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중요한 시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지난 1, 2, 3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은 없었다. 하지만 세계가 글로벌화하면서 한국의 지위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등 미래형 지능정보기술이 한국의 여러 연구실과 기업들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들을 이용한 로봇, 생명공학이나 나노기술 등 첨단 기술들은 한국의 사회와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주도한다.
한국은 세계 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나라들 가운데 가장 인프라가 좋은 나라다. 사람들의 인식도 이런 첨단 산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빠르다.
초고속 인터넷은 내가 다녀본 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나다. 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래 첨단 기술 산업은 가장 먼저 한국 소비자들을 주시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미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탁월한 유전자를 가졌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선두에 있으면서도 한국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정체된 분야가 있다. 그것은 전통을 해석하고 새롭게 성장하는 영역이다. 이는 세계적인 기술 선진국이나 급격한 도약을 준비 중인 나라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이다. 전통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려는 흐름은 기술이 가진 비(非)감성적인 특성의 해결을 위해 활발하게 연구되는 추세다.
가까이 일본이나 중국만 해도 전통 장인의 기술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과 미래 기술의 결합은 단순한 복사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국에는 이런 흐름을 선도할 만한 자산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다. 그중 미래 기술과의 접목이 지금이라도 가능한 것이 한옥과 관련한 요소들이다. 한옥의 기술, 조화에 대한 생각, 치유의 기능 등 다양한 요소가 이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한옥은 고리타분하고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옥이 가진 특별하고 과학적인 장점들은 무시되어 창고 구석으로 밀려나 먼지만 쌓이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들조차 한옥과 같은 전통 기술보다는 근대화 이후의 첨단기술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국 사람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불편하고 고리타분한 것이란 인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이것을 문화에 대한 자부심 부족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자부심의 부족은 왜곡된 역사 교육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세계 어느 전통 건축에서나 이런 불편함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불편한 고민들은 해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문명이 생겨났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자연환경과의 조화, 인간관계와 소통의 문제, 시간에 따른 노후화 등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점은 장점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에 의한 왜곡된 식민교육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면서 전통은 구차함을 넘어 혐오스러운 것으로 남았다.
내가 한국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전통을 다시 한번 애정어린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쌓여 발전한 전통 한옥에서의 장점들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출발선에서 도약을 노리고 있는 한국에게 전통 기술의 장점은 그 도약을 위한 구름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재료나 기술일 수도 있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이나 철학일 수도 있다.
그것을 찾아내고 바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온 것이다. 장점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불편함만 탓하다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보물은 묻히고 말 것이다.
전통은 한 국가의 운명을 가르고 시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훌륭한 자산으로 성장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독일은 전통을 국가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독일인들은 1, 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모든 것을 잃고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런 폐허에서도 불과 수십 년 만에 그들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해내는 경제 선진국의 지위에 올랐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그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는 단순히 기술만 뛰어나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기술 이전에 전통이 있다.
독일은 오랜 철학과 문학, 예술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괴테, 실러, 베토벤, 하이든과 같은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독일의 전통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주목할 점은 이 전통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발전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며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옛 것을 이어받아 이를 토대로 성장했다.
과거와 현재의 지적(知的)이면서도, 감성적인 교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한 교류를 통해 배우고, 융합하는 정신의 전통을 만들어 냈다. 정신은 문명의 큰 줄기를 만들었고, 사회의 체계와 질서를 잡아왔다.
그러한 전통을 대하는 자세는 독일만이 가진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한국도 지난 수 천 년 동안 전통이 문명과 역사의 큰 줄기를 가다듬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전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이 한옥이다. 한국은 한민족이란 울타리에서 나뉘고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하면서도 한옥이라는 고유한 집을 유지해왔다. 미국의 집을 아메리칸 하우스, 프랑스의 집을 프렌치 하우스라 부르지 않는다. 유독 한국의 집만 한옥이란 특수한 이름을 가졌다. 이는 한국의 특별한 방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옥을 세우는 과정부터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그 전통이란 과학적인 창의성과 사람 사이의 소통, 자연에 대한 존중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한옥을 세우는 과정을 나열해보면 한옥의 특수성이 잘 드러난다. 한옥은 먼저 돌과 흙을 이용해 평지보다 약간 높게 단을 쌓는다. 그런 다음 기초석을 놓고 나무 기둥을 세우면서 시작한다. 여기에 황토를 활용해 벽체를 만든 다음 창을 내고, 이후 지붕을 얹는 순서로 진행된다. 지붕은 서까래와 계판이라 불리는 반듯한 널빤지를 깐 다음, 무게를 분산시키고 균형을 잡아주는 적심목을 차례로 놓는다. 그 사이에 흙을 채워가며 기와를 얹게 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성으로 완성한 집이 바로 한옥이다.
이러한 과정은 내가 알던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놓는 것이었다. 내가 살던 미국 내슈빌의 집이나 지금 거주하는 집과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과는 달리 복합적이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담아 마침내 특별한 구조물인 한옥이 완성된다.
그 복잡함과 섬세함 속에 한국 장인들의 기술이 숨어 있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재료들이지만 집 짓는 과정에서 특별함을 갖는다. 못이나 화학적 접착제 하나 없이 완벽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부터, 재료들의 특성을 유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장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장인들은 주변 자연에서 얻어진 것들만으로 수백 년 세월을 버티는 집을 짓는다. 기둥은 한국의 산하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나무를 다듬어 세우고, 기와는 집터의 흙을 구워 만들며, 이를 고정하는 것 또한 황토다.
황토로 지어진 집은 습도 조절에서 다른 어떤 집보다 뛰어나다. 콘크리트나 철판, 돌로 지어진 집은 안과 바깥을 철저하게 구분짓지만 황토는 자유로운 공기의 순환을 끌어낸다. 숨을 쉬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가장 가까운 재료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적응하고 받아들인다. 이는 아토피와 같은 현대 문명의 병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처방이 될 수도 있다.
현대식 주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옥만의 뛰어난 점은 배치에서도 나타난다. 사랑채를 두고 중정을 마련하는 모습에서 배려의 전통이 있다. 조립하는 과정과 처마, 집의 배치에서 자연을 대하는 창의성이 있다. 낮은 담은 소통하는 문화가 있다.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살리고 그 위에 집을 앉히는 데서 상생하려는 마음이 있다.
한국의 지난 세대들은 이렇게 기술과 함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전통까지 선물로 남겼다. 그런 전통은 곳곳에 여전히 살아 있다.
한옥은 내가 살았던 미국이나 공부하면 만난 다른 나라의 건축물들하고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들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 외에도 공간 배치나 구성 요소, 마감, 자연과의 조화 방식 등 다양한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들고나는 문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한옥에서의 살을 엮어 만든 문은 안과 밖을 뚜렷하게 나누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유롭게 흐르는 문이 바로 한옥의 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문은 대부분 살에 창호를 바르는 형태의 문이나 나무를 통으로 사용하는 문이었다. 통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단단한 원목을 판재로 잘라 붙여 외부와 구분하는 형태가 많았다. 그중 흥미를 느낀 것이 초가집이건 기와를 얹은 집이건 한옥에서의 문은 한지를 이용해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그것을 감싸고 지탱하는 틀은 아무런 인공적인 장식을 가미하지 않은 원목의 편안함이 있었다.
한옥에서 만난 창틀은 바깥 풍경을 담아 놓은 액자가 되는가 하면, 바람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햇빛을 맞이하는 그릇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한옥의 매력은 외형에서도 드러난다. 지붕이나 처마의 선을 보면 완만한 곡선이다.
실제 한옥을 세우는 현장에서 보게 된 선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었다. 양쪽에 나무 막대를 수직으로 세우고 긴 실을 여유 있게 연결해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한옥의 처마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대로 이어온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만난 한 친구는 지붕선이 한국의 산의 형태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나는 육면체나, 원기둥, 원뿔, 반구 등 기하학적인 도형이 결합한 구조의 집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한옥의 이러한 외형은 내가 알던 집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깨우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늘어진 곡선이야말로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 자연의 얼굴에 가까웠다.
자연의 선(線), 그것은 한국의 선(Line)이 되었다. 이러한 완만한 선이 이루는 아름다움은 현대 건축에서도 충분히 접목 가능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한옥은 모양에서뿐만 아니라 구조 면에서도 유럽이나 현대식 집들과 차이가 있다. 나는 한옥을 사색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방문객들에게 한옥이 가진 멋의 깊이를 천천히 발견하게 해주는 인간 친화적인 디자인은 이전까지 내가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이다.
한옥은 대문과 현관, 거실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구조를 피한다. 대신 자연 속을 산책하게 하고 그러면서 사색하는 철학자가 되게 한다. 담장을 따라 걷다 어느 순간 작은 식물들과 만날 수 있다. 처마를 돌다 보면 시원한 바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길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아침과 늦은 오후의 모습이 다르다.
나도 종종 이런 사색의 길을 걷는 것을 즐기곤 한다. 내가 지금 사는 부암동은 경복궁이나 한옥마을에서 멀지 않다.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이런 한옥이 만든 철학자의 길을 접할 기회가 많은 편이다. 나는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쪽문이 나오고 그 쪽문을 지나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직선적인 배치보다는 계곡 사이를 물이 흘러가듯 사람들이 흘러가게 한다. 그 공간을 따라 숲을 거닐 듯 사색하며 걷게 만든다.
그 길 위에서 나는 한옥이 주는 즐거움의 크기에 감탄하곤 한다. 한옥이 주는 이런 선물은 다른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소중한 것이다. 이 선물을 다듬고 발전시켰을 때, 그 가치는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일 수 있다. 고궁이나 한옥마을, 민속촌 어딘가에 있는 건축이 아닌 현대 한국 건축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나아가 세계에 ‘주거문화 한류’로 나아가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와서 대전에 거주할 때다. 가까이 논산에 갔다 만난 한국의 전통 가옥 하나가 있었다. 조선 중기 세도 가문인 파평 윤씨 종택인 논산 ‘명제 고택(윤증 고택)’이다. 이 고택은 300년 전에 지어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조선 사대부가의 주택이다.
그런데 고택에서 특이했던 것은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마당이었다. 이 마당엔 어떠한 조경 시설도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 문화에 익숙해 있던 나에겐 낯선 충격이었다. 여기엔 오랜 세월 이어온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한여름 앞마당이 태양 빛으로 뜨겁게 달궈지면 그곳에 있던 공기는 상승한다. 이때 숲과 연결된 뒷마당의 서늘한 공기와 온도 차이로 대류 현상이 일어난다. 뜨거운 마당의 공기가 상승하고 나면 뒷마당의 차가운 공기가 앞뒤로 뚫려 있는 대청마루를 통과해 마당으로 들어온다. 이 때문에 뜨거운 여름에도 대청마루는 시원함을 유지한다.
이 원리는 현대 도시건축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아파트 숲 가운데서 열기가 위로 이동하면 그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로 바깥 공기가 아파트 건물 사이로 들어와 시원하게 유지된다다.
고택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혜는 배치에 있다.
장인은 이곳 안채와 곳간을 배치하며 사이의 통로 폭을 다르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바람을 조절하려는 것이다. 고택의 안채와 곳간 사이를 지나다 보면 남쪽보다는 건물 북쪽으로 가면서 그들 사이의 간격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차이로 바람의 세기가 달라지고 더 시원해진다. 이를테면 자연의 에어컨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곳간의 제일 시원한 끝 칸은 오늘날의 냉장고의 역할을 한다. 수 천 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이 안에 들어 있다.
한옥에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절묘한 과학은 난방에 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부엌은 취사를 위한 공간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한옥의 부엌은 취사 기능 외에 한가지 역할을 더 한다.
가장 열효율이 높고 기능성이 좋은 난방이 그것이다. 한옥의 독특한 구들 시스템은 불의 열기를 내부에서 모두 소진하고 굴뚝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일본만 해도 난방은 고대 시대의 중앙 화덕을 놓고 지내던 방식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본이 겨울이 짧고 여름이 길고 습하다 보니 건축에 난방보다는 여름철 습도 조절이 더 많이 반영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겨울이 한국보다 더 혹독하면서도 부분 난방의 형태다. 그리고 서구의 난방 방식은 벽난로를 이용한 난방이 주를 이룬다. 사실 열효율 면에서 보면 이러한 벽난로 방식이 가장 낙후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옥의 구들은 작은 열만으로도 최대한 효과적으로 난방이 가능하게 만든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한옥은 창의적이면서 철학적인 특성을 모두 가진 한국의 소중한 보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별함은 얼마든지 현대적인 방식을 도치되고 어떤 식으로든 응용이 가능하다. 과거건축기술과 현재건축기술을 접목하는 단계에서 완성된 목록은 없다. 애정과 자긍심, 노력만이 숨겨놓은 과거 엔지니어들의 보물을 찾을 수 있다.
한옥에 숨겨진 자산이 현대 건축에서 응용된 사례는 가까이 서울 도심에 있는 한 건축물에서 만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설계를 맡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을 보면 충분히 그 가능성이 보인다. 건축가는 개방적이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로지아(1면 이상의 면이 벽이 없이 트인 방 또는 홀)를 연상케 하는 한옥의 마당 정원에 매료되어 이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마당 정원은 자연과 집을 구분하던 주택 구조에서 큰 변화다. 자연을 집 안으로 들임으로 해서 사람과 자연을 서로 어울리도록 만든다. 이런 한옥의 창의적인 구조를 건축가는 놓치지 않았다. 건축가가 설계한 세 개의 정원은 사람들이 건물 내 어느 곳에 있더라도 자연과 가깝게 호흡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했다. 한옥에서 느끼는 자연과의 호흡은 딱딱한 현대식 건축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이 외에도 설계자는 한국의 전통 가옥의 여러 장점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곳곳에 반영했다. 그 요소가 모여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로 재탄생하도록 만들었다.
한옥의 햇빛을 차단하는 나무 발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어 건물 외관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파사드(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에 유선형의 수직 알루미늄 핀 커튼월을 설치했다. 나무 발이 그러한 것처럼 이를 통해 직사광선으로 인한 눈부심을 막아주고, 자연 채광을 실내 공간에 골고루 확산시킨다.
치퍼필드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가끔은 한옥의 특성을 살린 건축물을 상상하곤 한다. 현대적인 고층 건물에 한옥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요소들을 응용한 호젓한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다.
내가 일본에서 공부할 당시 일본에서도 그들의 전통 건축을 현대 건축에 접목한 여러 시도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현대적인 테크놀러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인간을 최대한 자연과 밀착시키는 건축을 추구하고 있었다. 과학 기술은 숨어 움직이도록 하는 친환경시스템이었다. 그들은 현대인의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감을 치료할 수단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집의 안락함과 편안한 수면이 근본적이 치유가 될 수 있고, 그 모델을 제시한 것은 그들의 전통 건축이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첨단은 바로 ‘자연’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전통 건축은 인위적인 부분이 많고 한국처럼 자연 그대로의 순환 구조가 아니다. 어찌보면 현대 IT기술을 접목했다는 의미에서 첨단이다. 한국처럼 전통 자체가 첨단은 아니다.
나는 이 첨단을 한국의 한옥에서 무수히 발견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어느 건축보다 뛰어나다. 지난 수 억 년 동안 이 땅에 사는 생명들의 삶을 지배한 자연 에너지야말로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모두의 고민이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집이다.
한옥은 이 고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한 결과물이다. 세계는 이 자연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우리 안으로 들여올까’에 대한 고민의 답을 한옥에서 찾게될 것이다. 그들에게 한옥은 여기에 안정과 여유까지 제공하는 공간의 장점이 있어 더 매력적이다.
지금도 나는 건물의 한 층은 완벽히 정원으로 분리된 공간을 가진 한옥을 상상한다.
이러한 독특한 디자인은 현대 건축물이 자연의 에너지를 주거공간으로 친근하게 옮겨오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한옥은 이런 면에서도 좋은 모델이 된다.
또한, 전 세계 어느 건축가나 건축주에게 영감을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건축가들은 그 영감을 토대로 한옥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찾아 작품에 응용할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한국 건축을 우뚝 서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고, 한국 전통 건축은 디자인과 멋, 감성 측면에서 전 세계 표준을 설정할 수도 있다.
그 표준은 자연과의 조화, 인간과의 관계, 재료의 특성 등 다양하게 제시될 것이다. ‘한국 스타일’이란 새로운 건축 양식도 가능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건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강조한 ‘소프트파워 외교’를 보면 한옥은 한국 외교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한옥은 문화사절단의 역할도 가능하다. 한국을 알리고 한국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외교가 문화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내가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재직할 때, 그곳에 있던 일본관(Japan House)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은 한국의 백제로부터 건너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의 기후 조건과 빈번한 자연재해에 맞서 오늘날의 양식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일본의 전통 건축은 한국처럼 자연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또한, 절제된 화려함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보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의 전통문화를 미국 사람들에게 전하는 공간으로 이 일본관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일본관을 찾아온 이들은 그곳에서 다도에 대해 배우고 일본의 아름다움에 관해 설명을 듣고 이를 직접 체험한다.
일본관은 학교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그들은 그곳에 모여 일본 예술과 문화, 미학, 그들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두고 토론하기도 한다. 일본관은 미국인들에게 일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곳은 일본의 전통과 삶의 모습, 그리고 정신적인 가르침을 주는 공간으로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일본을 가장 깊은 곳까지 알려주는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처럼 미국의 어느 도시에 한옥을 세우거나 한옥의 특성을 살린 건축물을 짓는다는 의미는 공간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과거 불교 건축을 보면 건축 방식보다 그 건축을 뒷받침하는 문화가 함께 유입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 유럽식 근대 건축이 처음 들어 왔을 때 주거문화를 비롯한 생활 전반의 문화가 함께 들어왔던 것처럼.
모스크바, 파리, 런던, 도쿄, 방콕, 시카고 등 어디에 들어서건 한국관은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가 살아 있고, 전통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영향력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정도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에 대한 재평가까지 유발하는 상황 변화를 끌어 낼 것이다.
이미 많은 코리아타운이 세계 곳곳에 있지만, 그것은 한국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설령 외국인들이 그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국 음식을 체험하거나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사기 위해 가는 것이다. 한국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한옥을 다시 이해할 수 있도록 문화를 담은 공간을 수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 건축가들, 미래의 디자이너들, 미래의 도시 공학자들에게 한옥의 가치를 다시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세계 어디에 자신들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든 그곳은 한국만의 특성이 잘 녹아 있는 공간으로 자리할 것이다.
글: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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