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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Aug 18. 2019

전시 공간의 시초

Cabinet Curiosité

전시 공간의 시초, Cabinet Curiosité

https://artlecture.com/article/952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인 개인의 화실에서부터 공공장소라 불리우는 국립 미술관 그리고 각 도시의 지형 문화적인 특색을 살린 아트 축제(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등)와 같이 오늘 날의 전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 공간의 시초는 놀랍게도 개인의 컬렉션에서 시작된다. 16세기 탐험의 시대에 유럽의 탐험가들이 기념품을 간직하기 위해서 개인의 캐비닛에 장식하던 것이 전시 공간의 시초이다.  당시 서양인들은 탐험에서 획득한 희귀한 식물 혹은 광물 같은 것들을 본인의 취향에 따라 각자의 캐비닛에 보관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여행을 가서 사온 기념품을 집에 전시해 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탐험의 시대에 개인의 캐비닛에 전시하던 이 전시물들이 컬렉션이 되고, 오늘날의 전시 방법으로서 연구와 발전을 이루어 왔다고 보여진다.


Le Cabinet de curiosités par Domenico Remps (1690) - Florence.



그 탐험가들이 전시하던 것을 프랑스인들은 Cabinet curiosité 라고 부른다. 이 캐비닛 큐리오지떼는 가구, 희귀한 물건 혹은 새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당시 대부분의 탐험가들이 희귀하거나 새로운 물건들을 방에 전시하여 장식품으로서 취급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예술품의 가치는 작품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희귀할수록 즉 구하기 힘든 물건 일수록 그 가치가 높게 측정되었다. 1600년대에 문을 연 박물관들은 최초의 전시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캐비닛을 전시하였다. 구체적인 예로 1683년에 전세계 최초의 대학 박물관인 애슈몰린(Ashmolean Museum)에서는 첫 전시로 Elias Ashmole의 개인 캐비닛을 전시했다. 이 캐비닛에는 다양하고 새로운 표본 모음이 가득하였다. 그로 인해 이는 과학적 지식과 연구로도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의 과학적 발달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살롱, Salons.


개인의 캐비닛을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관객) 보여주고 자랑하는 것에서부터 살롱으로 이어진다. 불어로는 응접실이라는 뜻도 있으며 이러한 것으로 보아 사람들을 접대하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캐비닛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친목을 쌓는 공간인 작은 규모의 전시 박람회라 볼 수 있다. 17-18세기 프랑스의 귀족들은 그들의 집 안에 있는 거실 즉 살롱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개인의 컬렉션을 보여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전의 전시 공간인 캐비닛에서는 예술품들이 데커레이션의 역할을 해왔다면 살롱에서부터는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컬렉션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문화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살롱의 문화를 통해 예술 비평가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예술에서 비평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1667년 귀족의 문화였던 살롱이 규모가 커져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전시 박람회의 역할을 시작했다. 같은 해에 팔래호화얄에서 아카데미의 주최로 열린 살롱이 전시 박람회의 시초이다.  이후 같은 전시가 루브르 궁으로 이전하면서 약 10회정도 전시 박람회가 계속해서 개최되었다. 그에 따라 1737년 이후부터 대규모 살롱으로 발전되어 미술 발표 기관으로서 기능이 확립되었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 이상 귀족들의 문화공간이 아닌, 일반 시민과 미술을 맺어주는 역할의 공간이 되었다. 이 살롱이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시초이다.



1787년 루브르 살롱 전시의 모습. (출처_위키피디아)



화이트 큐브, White cube


살롱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데커레이션 즉 장식의 성격을 띄며 그림들이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살롱의 규모가 커져 혼잡해지는 공간을 보고, 미술학자들은 전문적인 전시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한다. 또한 같은 시기에 큐비즘의 탄생으로 인해 작품의 이해를 높이는 전시공간을 연구하게 된다. 작품을 관람할 때 작품 이외의 장식적인 요소들은 그 작품의 순수성을 이해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가장 순수한 색인 흰색으로 벽을 칠하게 되었다. 또한 관객의 시각에 하나의 작품만 오롯이 관찰할 수 있도록 하나의 흰 벽에 2열 배열로 작품을 걸어 놓았다. 이러한 유럽의 전시 방식은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이트 큐브’ 라는 전략으로 연구가 되었다. 이후 1936년 뉴욕 미술관에서 ‘큐비즘과 초상’ 이라는 전시를 통해 화이트 큐브 라는 전시 공간을 확립하게 된다. 



“Cubism and Abstract Art” 1936. (출처_ARTSY)

+ 상단: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New York. Photo: Beaumont Newhall.




이후 1939년 문을 연 미국의 MOMA 미술관이 이 영향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전시 공간 내부는 건축 보다는 예술 작품에 중점을 둔 화이트 큐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후 1950년대 부터 화이트 큐브는MOMA에서 상업용 갤러리로 그리고 박물관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뉴욕 예술계에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전시공간.


현대의 전시공간은 화이트 큐브와 그것을 탈피한 공간으로 나뉘어진다. 먼저 상업용 갤러리에서는 여전히 화이트 큐브가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하지만 베니스 비엔날레 혹은 카셀 도큐멘타와 같이 지역적 특성을 살린 예술 축제에서는 예술품에 따라 야외 그리고 더욱더 화려하게 장식된 공간에서 전시를 하기도 한다. 이는 기술 발달에 따른 개념미술과 랜드 아트의 등장으로 미술품이 더 이상 벽에 붙어 있는 2차원 적 회화가 아닌 3차원 혹은 4차원 적인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개념미술은 미술품에 포함된 관념이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것 보다 선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혹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소리가 작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랜드 아트는 자연을 이용한 예술 즉 대지 예술이다. 따라서 작품의 소재도 그리고 그 공간도 자연에 있는 예술이라 화이트 큐브와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실내 전시 공간에서 우리는 흰색벽을 찾을 수 있으며 흰색 공간에 전시 되어있는 회화 작품 혹은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전시 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확립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에 따라 혹은 전시회의 특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Marta Minujín: The Parthenon of Books (2017)_카셀도큐멘타 (Photo Thomas Lohnes/Getty Images.)


Arche de neige, Andy Goldworthy 1984 (랜드 아트)




글_아트렉처 에디터_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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