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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Sep 02. 2019

소의 말, 사람의 마음

이중섭과 소

소의 말, 사람의 마음 – 이중섭과 소

https://artlecture.com/article/953


동물에 대한 애정도 학대도 어느 때보다 첨예한 요즘이다. 인권을 넘어 동물의 생존권과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졌다는 것은 ‘사람의 삶’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SNS 에는 반려동물을 테마로 한 각종 사진들이 쏟아지고, 서점가에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책이 넘친다. TV에서도 동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잔학행위나 가혹행위에 분노하는 것은 반려동물을 주인의 소유물로 보기 보다는 독립된 개체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탓이리라. 주로 개나 고양이, 혹은 몸집이 작은 다른 포유동물이 문화권을 막론하고 반려동물로 사랑받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 문화에서는 더욱 오래 전부터 사람과 함께해 온 반려동물이 있었다. 한평생을 우직하게 함께하고, 뼈와 살과 가죽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때로는 그 대가로 학문의 우골탑을 쌓을 수 있게 해 주기도 한. 소야말로 반려동물의 원조격이라 할 만하다.



소를 유난히 사랑한 화가가 있었다. 정물이나 인물, 풍경을 그린 화가는 많고 특정 인물과 장소를 즐겨 화폭에 담은 화가를 찾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한 동물에 자신을 투영시켜 그린 화가는 흔치 않다. 화가의 모든 희망과 분노, 염원과 애환은 이 동물을 통해 승화된다. 이중섭의 이야기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듯, 고갱이 타히티를 그렸듯, 이중섭은 소를 그렸다. 이중섭의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은 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슴도 말도, 게도 물고기도 단골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중섭의 소는 특별하다. 다른 동물이 단지 그림의 소재라면 소는 그 자신인 것만 같다. 때로 호탕하게 웃음짓는 것 같기도 하고, 인자하게 미소짓는 것 같기도 하고, 멍에를 지고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것 같기도 한. 소의 얼굴과 모습 속에서 우리는 비운의 위대한 화가 이중섭을 본다. 당시 그의 마음 상태는 그가 그린 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중섭의 소는 유난히 굵고 힘찬 선으로 표현된다. 때로는 구상이 아닌 추상에 가까운 소의 형태는 때로 그 붓자국과 질감만으로도 감정이 읽히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소의 그림은 이중섭 특유의 관찰력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중섭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오랫동안 눈여겨 보며 눈에, 마음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소를 그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넋을 잃고 소를 바라보게 했음이 틀림없다. 낯선 남자가 자신의 소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오해한 소 주인은 이중섭을 도둑으로 의심해 신고를 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중섭은 소에게 다른 주인이 있다는 사실마저 잊었으리라. 소를 단순히 객체로서 감상한 것이 아니라 소에게 동질감과 동화감을 느끼며 한껏 애정이 담긴 눈빛을 가득 담아 바라 보았으리라.



황소, 1953
흰 소, 1954


이중섭은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는 아픔을 겪었지만,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여 일본 유학길에 오른 이중섭은, 일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도쿄의 ‘자유미술가협회’에서도 그의 작품은 호평을 받았고, 함께 유학하던 친구들과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조용한 귀공자로 여학생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 이중섭은 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해 1945년 유학 시절 만난 그의 일생의 사랑,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결혼식을 올렸다. 젊고 재능 있는 화가의 앞길이 그토록 가시밭길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서귀포의 환상, 1951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고 싶었을 화가는 곧 전쟁을 마주한다. 부산으로 피난을 온 그는 제주도까지 내려가 피난 생활을 이어간다.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예술가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곤궁함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고통은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행복한 것이었다. 제주도에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지만, 이중섭의 아내는 전쟁의 참상과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돌아간다. 1952년의 일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이중섭이었으나 시대도 사람도 운명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1953년 잠시 일본을 방문해 가족을 만난 것이 그가 가족과 함께 한 마지막 날들이었다.



부산과 제주도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피난 생활을 할 당시 그를 괴롭힌 것은 가난이었을 것이다. 이중섭이 일 년도 채 머무르지 않았지만 이중섭이 살았던 집으로 유명해진 제주도의 피난처는 당황스러울 만큼 좁은 공간이다. 고흐가 말년을 보냈던 여인숙의 좁은 방이 오히려 더 넓게 느껴질 만큼. 그러나 그토록 숨막히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피난 시절 이중섭의 그림에는 가족과 살을 맞대고 숨결을 함께 하는 일상이 주는 소탈한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소처럼 묵묵히 달구지를 끌고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화가에게 경제적 궁핍은 멍에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앞으로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가족을 책임지려는 가장의 책임감이 있었다. 그의 그림에 있는 힘찬 소의 모습처럼.



길 떠나는 가족, 1954


싸우는 소, 1954-1955 추정



때로 호탕하게 웃음짓는 것 같기도 하고, 인자하게 미소짓는 것 같기도 하고, 멍에를 지고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것 같기도 한. 소의 얼굴과 모습 속에서 우리는 비운의 위대한 화가 이중섭을 본다. 당시 그의 마음 상태는 그가 그린 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의 그림은 식물이나 풍광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화가의 심리를 담아내고, 타인을 그린 초상화나 인물화 대신 친근하고 익숙한 동물을 통해 화가 자신을 투영한다.



이처럼 정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으리라는 화가의 기대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서 책을 수입해 한국에 판매하는 사업을 하던 중 사기를 당해 빚을 지게 된다. 이 빚을 갚기 위해 그림에 매진한 이중섭은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고, 그림 또한 제법 판매가 되었다. 문제는 판매된 그림의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예술에 대한 재능만 있었지 이재에는 밝지 못했던 화가는 전시와 판매가 성공해도 그림값을 받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한다.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전시를 하지만 이번에는 호평을 받지 못한다. 계속되는 운명의 채찍은 맞서 싸우려던 화가의 의지를 꺾어버린 것일까. 거식증과 조현병 등에 시달리며 투병생활을 하다가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친 안타까운 화가.



그의 아내에게 빚을 지게 한 업자와는 달리, 그의 그림을 가져가고도 대금을 치르지 않은 구매자들과는 달리, 이 순박한 화가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죄값을 치르게 하지 못했다. 화와 울분을 타인에게 쏟는 대신 그 괴로움을 오롯이 스스로 감당했기에 그토록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우리네 농촌의 누렁소처럼. 우리의 소는 땀과 열기로 가득찬 스페인의 투우에서 보이는 소가 아니다. 서부의 황야와 들판을 달리는 미국의 물소도 아니다. 신성화된 인도의 소도 아니다. 소에게도 달리거나 싸우고 싶은 본능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인간의 무게를 나눠 지고 인간의 일을 함께, 혹은 대신 해 주는 동물. 야생의 본성도 내재된 신성도 모두 배제당한 채 길들여지고 길들여진 길을 가야 하는 동물. 한평생을 인내와 희생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며 여름의 타오르는 볕과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동물. 말 못 하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인간의 친구이자 말벗이자 반려자로 함께해 온 동물. 강아지처럼 도둑을 쫓거나 꼬리치며 주인을 반기지도 못하고, 고양이처럼 민첩하거나 아양을 떨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집 안에 들일 수 있을 만큼 작거나 귀엽지도 않다. 도시화되는 삶에 적합치 않은 소는 반려동물보다는 축산용으로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소와 농부의 반려인생을 소재로 한 영화 ‘워낭소리’에서 그러던가.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준다”고. 사랑하는 가족과 그림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결국 가족을 보지 못한, 먼 발치에서만 그리다 떠난 비운의 화가 이중섭의 삶은 너무나도 소와 닮아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만 같은 요즘, 이중섭의 소는 너무 맑고 선한 눈을 하고 있어 볼 때마다 부끄럽기만 하다. 소처럼 묵묵히 땀흘려 뚜벅뚜벅 외로운 걸음을 걸었을 이중섭의 생이 자꾸만 생각나, 이 젊은 화가의 고통이 선연히 느껴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더욱 따뜻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것만이 이 화가에게 경의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이중섭이 머물던 제주도 집에 걸린 그의 시 ‘소의 말’이 이야기하듯, 우리도 서로에게 참되고 고운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닐까.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제주도, 이중섭이 머물던 집.




글_아트렉처 에디터_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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