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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Sep 18. 2019

교란과 저항의 '무정형 가면'

자크 블라스의 <얼굴의 무기화>

https://artlecture.com/article/1041


최근 뉴스를 통해 다뤄졌던 중국의 도로 전광판을 알고 계시나요? 중국 정부가 무분별한 무단횡단을 규제하기위해 도입한 고육지책입니다. 이 전광판에는 무단횡단자들의 신상이 한달간 공개됩니다. 고도로 발달한 안면인식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도로 위 카메라가 촬영한 얼굴은 바로 당사자를 알아내는 자료가 되죠. 도로를 잽싸게 가로질러 달려나간 이들조차 기술에 의해 정체가 탄로나는 덴 속수무책입니다. 이제 개인은 신분증 없이도 자동으로 식별이 가능해졌습니다. 안면인식기술의 고도화로 얼굴은 정체성 정치의 중요한 소재가 된 것이죠. 이 기술은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특정 개인을 추적하고 색출하는 작업도 가능하게 합니다. 어쩌면 군중 속 익명이라는 표현은 곧 문학 속 은유적 표현으로만 남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안면인식기술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사람의 얼굴이 자동으로 잡히죠. 별도의 편집을 하지 않아도 얼굴을 예쁘게 포샵처리해주는 어플도 이젠 일반적입니다. 아이폰의 사진첩에도 인물들의 얼굴을 구분해 분류하여 보여주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도 사진 속 인물들을 인식하여 자동 태그를 다는 놀라운 인식 기술을 가지고 있죠. 대면조사가 기본이었던 출입국조사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여권스캔, 손바닥, 지문 등을 활용하는 생체인식기술-과 더불어 사진촬영을 통한 안면인식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기술의 수혜와 동시에 기술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엄청나게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기술은 더욱 정교하고 섬세하게 진보하게 될 것 입니다. 우리의 편리함은 증대되겠지만 이러한 기술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과 연합하게 된다면 분명 위험하겠지요. 


과학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분야로 믿어졌고 가장 신뢰할만한 근거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은 특정 가치를 지지하고 추구하게끔 하는 논리로써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독일 나치에서 유태인 학살 작전을 행한 근거도 ‘우생학’이었지요. 


미국의 자크 블라스(Zach Blas)는 이러한 생체기술이 갖는 위험성을 예민하게 사유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기술의 정치적 위험성에 무기력하게 항복하지 않고 이에 대항하여 얼굴을 무기화하는 전략을 세웁니다. 현대사회에서 얼굴이 개인을 식별하는 족쇄가 된다면 ‘얼굴없음’은 그러한 사회에 위협이자 불안이 되는 것이겠죠. 그는 안면인식 기술로 탐지될 수 없는 무정형의 가면을 만듭니다. 기술의 알고리즘을 파괴함으로써 그것에 토대하여 성립된 정체성 정치의 장에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죠. 특정 존재가 되는 것이 권력 또는 범죄가 되는 것이라면 이 가면은 어떠한 존재도 아님, 즉, 무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자크 블라스의  (2012). 8분 가량의 영상에는 무정형의 가면을 만들게 된 배경이 설명된다.



자크 블라스는 작업 영상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얼굴의 무기화가 필요함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얼굴 데이터를 모아 성적 지향을 결정짓는 과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잠재적인 위험인물-인종, 민족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속해있다-을 식별하고 자동으로 차단하는 크고 작은 게이트들의 보안기술도 문제 삼습니다. 기술은 어떤 정치적 목적 아래 사용 되느냐에 따라 편의를 상승시키기도 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자크 블라스는 불공정하고 폭력적인 기술에 의해 포착되어 언제나 유의주시 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그들이 아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자신의 본래 정체성을 가리는 가면 뒤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고 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은 많습니다. 가면을 통해 그들은 비로소 사회에 보여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삭제되고 거부되던 소외된 그들이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로울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으며 자동화된 낙인에 저항하며 전복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자크 블라스의 가면 연작 시리즈.


작품명: (첫번째 이미지부터 시계방향순)*1. <Mask - May 31, 2013, San Diego, CA> 2.<Mask - November 20, 2013, New York, NY> 3. <Fag Face Mask - October 20, 2012, Los Angeles, CA> 4. <Mask - May 19, 2014, Mexico City, Mexico> (출처: 자크 블라스 사이트: http://www.zachblas.info/works/facial-weaponization-suite/)



*자크 블라스(1981년생, 미국)는 현대기술에 대한 리서치와 이론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이자 영상 및 퍼포먼스 등의 작품활동을 진행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퀴어, 페미니즘, 이민자 등 소수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제하려는 국가의 정치, 보안 및 통제기술에 대해 사유합니다. <Facial Weaponization Suite> 작품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해 집단가면을 제작했고 이 가면들은 인종차별, 페미니즘,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며 사회운동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자크 블라스의 전시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불온한 데이터 Vertiginous Data>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불온한 데이터는>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가 초래하는 가능성과 위험 등을 실험적인 작품으로 풀어내는 전시로, 2019년 3월 23일부터 7월 28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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