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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Oct 04. 2019

고통받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

손지연, Uneasy noise

오!재미동 갤러리, 2019. 09. 10 ― 2019. 10. 08

https://artlecture.com/project/3921

https://artlecture.com/article/1083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벌거벗은 한 여자가 있다. 여자의 얼굴은 애초에 이목구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비어 있다. 삭막한회색 공간에 홀로 있는 여자의 뒤쪽 벽에는 거울이 걸려 있다. 거울은 여자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여자의 머리 위에는 자주색으로 크게 ‘uneasy noise’라고쓰여 있다. 작품의 제목이자 전시의 제목인 ‘불안한 소리’는 과연 무엇일까? ‘불안한 소리’는작가를 힘들게 하는 외부의 요소들이다. 이는 충족되지 못한 애정, 해소되지못한 인정 욕구, 원활하지 못한 인간관계, 자기 연민과 불신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Uneasy noise>는 자라나면서 사회적으로 학습된 강박으로인해 고통받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시이미지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 것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서는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말살하고외적인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게 만든다. 방송 매체를 통해 사회는 외모 지상주의를 끊임없이주입하고 특히 여성에게 엄격한 외모적 잣대를 들이댄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겉모습은끊임없는 평가의 대상이 된다. 획일화된 미적 기준은 결핍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성을 정서적 불안과 자괴감에빠지게 한다. 작가는 외모에 지나치게 가치를 두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신의 모습을 제니라는 또 다른자아를 통해 표현한다.



작품에서 제니는 늘 벌거벗고 있고 때로는 머리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얼굴은 개인을 인식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의 성질과 살면서 겪는여러 가지 경험들은 결합되어 한 사람의 얼굴을 빚어낸다. 제니의 지워진 얼굴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기혐오를드러낸다. 본래 모습을 알 수 없이 뭉개진 얼굴은 온전치 못한 육체와 정신의 상태를 반영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은 불안의 또 다른 모습이다. 벌거벗은몸은 무방비한 상태로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렵다. 부정적인 생각은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지만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강박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는 탈출을 꿈꾼다. 제니의 나체는 잘못된 사회적관습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의 반영이기도 하다.



<늪지대>에서 사각의 늪 속에 있는 제니는 늪 밖에 있는 또 다른 제니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있다. 늪 속에 있는 제니는 유령처럼 형체가 희끄무레하다. 희부연한 제니에게안겨 있는 늪 밖의 제니는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얼굴이 지워진 제니들은 불만족스러운 외모를 지워 버리려는자기 파괴적 욕망의 표식이며 외모 가꾸기를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아름답든 추하든 여성은 외양에 대한 평가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늪지대>는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애가哀歌이다.



손지연은 작품에서 자신의 결핍을 끊임없이 반추한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기억을 집요하게 떠올리며 과거에 머무르려 한다. 과거는이미 완성되어 불변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편안하다. 미래는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렵다. 그렇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끊임없이회상한다.



전시이미지2



<우리의 죽음>에서는 수많은 제니들이 등장한다. 제니들은 모두 이목구비가 없다. 이목구비가 생략된 얼굴은 누가 누구인지 식별이 불가능하다. 텅 빈얼굴의 제니들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제니들이 있는 회색 공간의 바닥에는머리 없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머리는 굴비 두름처럼 엮어져 천장에 매달려 있다. 여기서 제니들은 사회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당하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외모 또는 관계에 대한 강박 관념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제니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다. 그림을 다시 살펴보면 화면 한쪽에 WE ALIVE라고 쓰여 있고 그 주변에는 풀이 자라고 있다. 풀은작가의 또 다른 자아이다. 풀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매해 다시 살아난다.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제니는, 풀은 살고 싶어한다.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구는마음을 옥죈다. 강박은 인간을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한다. 불안과열등감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든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쉽게 좌절감을 느낀다. 손지연의 작업은 사회로부터 유리된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또한 스스로에 대한 자아 성찰이자 자기 모멸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는우울하고 고립된 자신의 내면세계를 작품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 준다. 되풀이되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때로는 자기감정에 매몰되고 또 때로는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는자기 치유의 여정은 더디지만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나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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