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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Oct 19. 2018

정치와 예술 사이의 다리 놓기

프란시스 알리스 <지브롤터 항해일지> 展

정치와 예술 사이의 다리 놓기: 프란시스 알리스 <지브롤터 항해일지> 展



https://www.youtube.com/watch?v=8xVX-1gAEo0



 아이들이 슬리퍼로 만든 조각배를 들고 바다로 뛰어 들어간다. 한줄로 맞춰선 아이들을 카메라는 따라간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 물살을 거스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거대한 화면을 채운다. 물소리와 함성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마치 내가 저 대열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전시전경,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스페인과 모로코의 해안가에서 각각 출발한 아이들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바다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지브롤터 해협은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의 폭 13km의 좁은 해역이다. 아무리 좁다 해도 아이들이 맨몸으로 바다를 헤엄쳐 서로를 만난다는 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전시관의 스크린에서도 이들이 얼만큼 갔는지, 과연 만났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꺄르르 웃으며, 헤엄치고 뛰면서 바다로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전시전경,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그 윗층 전시관에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과 쿠바 사이에 배-다리를 만드려는 계획이다. 쿠바의 작은 나무 배들과 미국 플로리다 주 시민들의 요트를 동원해 키웨스트와 하바나 사이의 다리를 놓으려는 것이다. 작가가 등장해 사람들에게 배를 끌고 한날 한시에 모여줄 것을 요청한다. 작가가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처음에는 ‘이 작가 이번엔 또 이런 무모한 걸 하네. 왜 하는 거지.’ 하던 나도 별안간 몰입해서, ‘배들아 얼른 와라, 좀 더 오면 정말 다리가 만들어질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얼른 와라!’ 하며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약속된 날 모여든 배는 다리를 완성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두 프로젝트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프란시스 알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 <지브롤터 항해일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벨기에 태생의 작가로 멕시코에 바탕을 두고 주로 예술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회정치적 문제상황을 비판하는 작업을 해왔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지난 겨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에서였다. 행위예술과 이를 찍은 영상작업에 대한 기획전었던 이 전시에는 알리스의 <실천의 모순 1: 가끔은 무엇인가를 만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97)>이 있었다. 영상 속 그는 멕시코시티 한복판을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밀며 걷고 있었다. 얼음은 길에 축축한 흔적을 남기며 녹아 사라졌다. 비쩍 마른 몸으로 아무런 쓸모도 없이 무거운 얼음을 미는 그를 보며, 저 사람은 저 작은 몸뚱이를 통해 이 거대한 사회에 소리없이 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이러한 무모한 프로젝트는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어떤 상징적이고 강력한 이야기, 훅은 어떤 신화를 만들고자 한다. 신화처럼, 그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혹은 그것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며 이에 대해 다층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참여와 협업으로 작업을 많이 한다. 그에게는 프로젝트의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해석, 반응을 기록하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의 일부로 참여하면서 행위자들과 감상자들 모두가 정서적, 인지적으로 반향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과 <다리(2006)>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리스는 두 나라의 아이들, 선원이나 선주들을 동원해 상징적인 다리를 상상하고 만듦으로써 오래 이야깃거리가 될 사건을 만든다. 그 이야기들은 결국 국경과 경계, 난민에 대해 묻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같은 인간임에도 국경 너머에 있다는 이유로 장벽을 치는 현 사회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해보게 된다. 특히 전시공간에 병치되어있는 난민문제를 다룬 기사들과 이미지들을 보다보면 난민이나 불법이주자들도 정치외교적 이해를 다 제치고 보면 결국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이 프로젝트들을 담는다. 영상에는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내는 회화나 조각과 달리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뿐 아니라 그저 그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담긴 여러 주변적인 부분들까지도 포함된다.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의도 말고도 감상자 각각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점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다리(2006)>에서 쿠바와 미국의 정치 경제적인 차이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든지, 사람들의 행동방식, 말투, ‘예술’을 한다고 했을 때에 보이는 반응들에도 눈길이 가면서 작품이 주는 인상이 풍부해진다.





과연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작가는 이 프로젝트들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의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있자면 씁쓸하다. 실패는 개개인을 동원해 무언가 큰 일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는 경우에는 결국 작은 변화를 낳는것은 개개인의 행동이 모였을 때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한 낱 개개인들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사회, 개인들을 제약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상들을 만들어내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무력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들은 결국 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변화시키는 것도 개개인들이라고 말한다. 정치와 예술 사이의 다리를 놓는 프란시스 알리스의 지브롤터 항해일지는 11월 4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계속된다. 






아트렉처 에디터_지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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