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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Oct 21. 2019

Sophie Calle의 호텔, 위반과 환상의 공간

소피 칼(Sophie Calle, 1953~)

https://artlecture.com/article/1125



소피 칼(Sophie Calle, 1953~)은 프랑스 출신 소설가 겸 미술가로, 자신과 타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실제와 허구를 섞는 방식의 작업을 지속해왔다. 특히 1980년대의 작업에서 그는 가상의 인물로써 생활을 한다거나 위장하는 방식으로 타인의 존재를 ‘훔쳐보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1980년대 작업들은 타자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의 반복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는 1979년 오랜 해외여행을 한 후 파리로 돌아와서 낯선 도시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시간을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 여행 중 사용한 카메라를 가지고 거리에 나와 모르는 사람들을 미행한다. 그렇게 미행하던 사람들 중 한 남자와 우연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 경험으로 그는 <베니스에서의 미행Suite Venetienne>(1980)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소피 칼은 <베니스에서의 미행>의 연장으로 다시 베니스로 돌아가, 한 호텔에서 3주 동안 청소부로 취직해 사람들의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베니스에서의 미행Suite Venetienne>(1980)



소피 칼은 고립과 고독의 감정 때문에 낯선 사람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몇 년 동안 정체성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탐구는 계속되었고 한 번은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관찰하는 상황을 위해,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사립탐정이 자신을 쫓아다니게 하는 프로젝트를 행하기도 했다. 특히 1981년의 작업 <호텔l'hôtel>(1981)은 그가 베니스의 한 호텔 청소부로 일하며 포착한 타인의 흔적들을 모은 작업물로, 그의 초기 작업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소피 칼은 <호텔> 프로젝트를 위해 한 호텔에 위장 취업하여 청소부라는 가면을 쓴다. 앞선 <베니스에서의 미행>에서 칼은 미행하는 남성에게 들키지 않게 군중 속 익명의 가면을 썼고, <호텔>에서는 호텔이라는 환경에 어울리는 직업의 가면을 쓴다. 1981년 2월 16일, 그는 첫 ‘작업’의 대상을 만나게 된다. 욕망의 실현이 시작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로부터 3일 후 투숙객은 떠나고, 칼은 그를 그리워할 것 같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2월 25일 24번 방, 한 커플의 대화를 몰래 듣던 그는 갑자기 지루함을 느끼며 흥미를 가지려 노력하고, 결국 지루함에 나가떨어진다. <호텔>작업의 마지막 날인 3월 6일, 그는 갑자기 호텔에 가득 찬 기묘한 침묵을 느끼게 된다. 그는 편지를 보고, 음식을 훔쳐 먹고 화장품을 훔쳐 쓰면서 타자의 자취를 향유하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느끼는 것은 침묵이다. 소피 칼이 만들어낸 결여와 만족을 위한 행위 뒤에 느끼는 침묵은 사실 욕망 자체가 욕망을 존재하게 했으며, 욕망의 대상이 그 원인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투숙객이 체크아웃했다는 서술을 하며 덧붙인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떠났다”는 글에서 볼 수 있듯, 애초에 칼이 욕망한 것은 관음증적 행위로는 채워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소피 칼은 자신이 느낀 침묵, 공백을 부정하지 않는다.



<호텔l'hôtel>(1981)



<호텔>의 어지러운 방의 사진과 그 밑에 위치한 물건 목록, 일기 내용은 칼이 빈 방을 처음 대면했을 때와 같이, 누군가에 대한 비밀을 알려줄 수 있을 듯 감상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제욱시스의 눈을 미혹한 파라시오스의 베일 그림과 같이 인간은 누구나 베일 뒤의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다. 따라서 관람자의 응시는 알고자하는 욕망으로 작품 위에서 작동된다. 여기서 관람객의 욕망은 화가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자하는 것도 포함한다.


라캉의 도식에 따르면 예술은 ‘스크린’으로 기능하며, 상징계와 실재계를 중재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때 관람자의 욕망의 대상은 대상의 현존에 연연하지 않으며, 그 원인은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에, 관람자는 사실 원하던 실재의 것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호텔>은 그 비슷한 것을 제공하며 관람자의 눈을 달랜다. 여기서 관람객이 포착한 대상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원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체가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보길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실재계의 공백을 덮는 베일이자 스크린이다. 소피 칼은 실재에 대한 리비도적 욕망을 행동으로 옮겨 규칙의 위반으로 해소하고자 했지만 결국 실재 자체에 닿는 것은 실패했다. 대신에 그는 실재의 파편, 공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침묵을 느끼고 이를 예술작품으로 제시한다. 작품은 소피 칼이 느꼈던 관음증적 욕구를 관람자에게 불러일으키며 타자의 비밀을 알려줄 듯, 베일 사이로 보이는 한 줄기 빛으로 그들의 응시를 미혹시킨다. 그들이 <호텔>로 얻게 되는 것은 열화된 실재계의 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관람자는 소피 칼이 느낀 실재에 대한 허무와 공백을 안전한 방법으로 확인 가능하다. 라캉의 말처럼 그림은 재현의 영역에서 기능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표상 속의 주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곳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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