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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Oct 23. 2019

경복궁, 경복궁타령의 노랫말을 따라서

https://artlecture.com/article/1122


어떤 장소에 가면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여수에 가면 ‘여수 밤바다’가, 제주도에 가면 ‘제주도의 푸른 밤’이 듣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들어 꽤 오랜 시간 동안 끊긴 것 같았던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특정 인물과 그룹을 통해 매스미디어에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혹은 내가 국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어서인지 정확히 특정 지을 수 없으나, 특정 장소에 가면 듣고 싶은 음악이 국악인 경우가 더러 있다. 경복궁타령도 그중 하나이다.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 사진=pixabay)



경복궁타령은 메기는 소리의 가사 절반 정도가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의 여러 건물들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노래만으로도 경복궁과 주변의 모습 그리고 건물들을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경복궁을 창건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화재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경복궁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다. 그렇게 270여 년간 경복궁은 ‘궁’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폐허의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을축년(1865년) 흥선대원군이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폐허가 된 경복궁을 재건하는데 앞장섰다. 경복궁타령은 소리의 가사로 미루어 보아 경복궁을 중수할 때 만들어져 불린 노래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복궁타령으로 경복궁을, 그리고 중건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을축사월갑자일에 경복궁을 이룩하세 /

수락산 떨어져 도봉이 생기고 북악산 줄기에 경복궁 짓세

한양조가 생신 후에 경복궁을 이룩했네 / 광화문을 중심하여 좌우편에 십자각 섰네

북악산을 등에 지고 한강수를 띠하였네 / 광화문은 정문이요 북으로는 신무문일세

동쪽에는 건춘문이요 서쪽에는 영추문일세 / 근정전은 정전이요 강령전과 사정전이라

아미산 뒤의 함화당은 향원정 조망이 더욱 좋다 / 경회루의 웅장함은 반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경회루라 / 연꽃 우거진 향원지에 묘한 정자가 향원정이라



(경회루는 경복궁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사진=pixabay)



노랫말처럼 근엄함이 느껴지는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 앞에서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들이 임금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좌측으로 넘어가 많은 관람객들로 가득 찬, 연못 위로 우뚝 솟은 경회루의 은은한 멋에 감탄한다. 그러다 문득 이 넓고 웅장한 궁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들어갔을까 상상해본다. 노동은 고되고 지루한 일이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행위에 대한 삶의 애환을 풀어내곤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대게 노동요 속에는 한이 설여 있으면서도 노래에 맞추어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박진감 있으며 경쾌하다. 경복궁타령도 마찬가지이다. 3소박 4박자이지만 2소박 단위의 헤미올라 리듬이 자주 출현하여 선율과 리듬의 기교가 뛰어나며, 메기고 받는 형식을 통해 공동 노동을 행했을 노동자들이 보다 능률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

우광꿍꽝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는 데 회방아 찧는 소리라

조선 여덟도 유명탄 돌은 경복궁 짓는 데 주춧돌 감이로다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간다

석수장의 거동을 봐라 망망칠 들고서 눈만 꿈벅한다

경복궁 역사가 언제나 끝나 그리던 가속을 만나 볼까

*에헤- 에헤 에이야 얼럴럴 거리고 방아로다



경복궁타령을 들으며 경복궁을 거닐면 신나고 경쾌한 노래와는 달리 풍자적인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경복궁을 재건할 때부터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경복궁을 중건하는 데는 많은 세금이 필요했고, 세금을 낼 형편이 되지 못하는 백성들은 경복궁 중건의 일꾼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삯바느질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일해야 했던 전국 팔도의 백성들은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인다는 이유로 평생 밟을 수 없을 곳을 짓기 위한 노동력을 바쳐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경복궁이 완성되기 전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여타의 노동요와 마찬가지로 경복궁타령 역시 일꾼으로 차출된 하층 평민의 고달픔, 작업에 얽힌 정경을 노랫말의 비유나 해학으로 풀어냈다. 노랫말을 곱씹을수록 주춧돌을 만들고자 돌을 다듬는 석공, 기둥을 만들고자 나무를 깎는 목수, 경복궁을 짓기 위해 고된 노역을 감당하며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조선팔도 인력들의 삶과 애환이 그려진다.


북악산이 노을빛으로 물들며 선선해지는 날씨에 경복궁은 평일 주말할 것 없이 과거를 느끼고 전통과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적당히 단풍 져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가을의 경복궁이지만 괜스레 애달프게 느껴진다. 지금은 조선 왕조도, 경복궁을 짓던 노동자들도 모두 사라진 채 궁만이 남아있다. ‘큰 복을 누리리라’라는 뜻을 가진 경복궁. 경복궁의 이름대로 조선 왕실 뿐 아니라 경복궁을 짓느라 먼 길 가족을 떠나 고생했던 모든 이들에게도 고루 복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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