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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Dec 08. 2019

TERRY ALMIGHTY_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테리 보더 EAT. PLAY. LOVE

https://artlecture.com/article/1243


TERRY ALMIGHTY

사비나 미술관, 테리 보더 <EAT. PLAY. LOVE>


요즘 웃을 일이 많이 없다. 출퇴근길은 똑같고, 회사 주변 점심은 뻔하며,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은 볼품없기 일쑤다. 주말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예전엔 개그콘서트 보면서 웃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화만 더 돋울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으면 우울증 오기 5분 전! 그럴수록 우리에겐 유머가 간절하다. 실없는 농담이라도 좋고 슬랩스틱에서 오는 원초적인 재미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지루하지 않은, 그리고 나의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유머라면 더 좋을 것만 같다. 잠깐 화려한 뮤지컬, 오페라를 제치고 대학로 소극장 연극이 인기를 끈 이유가 뭐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관객이 제한적으로나마 극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 재미를 준 대학로 소극장 연극처럼 우리와 밀접하게 붙어 있는 사물들로 우리를 웃게 하는 작가가 있다. ‘테리 보더’ 그의 생활밀착형 유머가 담긴 전시 <EAT. PLAY. LOVE>를 보고 조금이라도 웃고 살자.



<씨리얼 킬러(Cereal Killer, or Lactose Intolerant), 2007>



길고 어려운 글을 쓰는 건 기술만 있다면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고 재밌는 글을 쓰라면 도저히 잘 쓸 자신이 없다. ‘짧다’는 건 핵심만 전달해야 하는 것이고 ‘재미’있는 건 모두가 공감할만한 포인트나 코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테리 보더’의 선택은 아주 기똥차다. ‘공감’을 위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물들에 집중하고 ‘재미’를 위해 언어유희와 오마주, 풍자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짧고’ 직관적이다. 보면 바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한 그의 작품을 보면 왠지 모르게 웃게 된다.



<사랑의 건배(Toast Toasting in A Toaster), 2010>


<완벽한 한 쌍(A Lovely Pair), 2010>


<왕따 계란(Eggregation), 2012>



‘테리 보더’가 사용하는 방법을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완벽한 한 쌍(A Lovely Pair), 사랑의 건배(Toast Toasting in A Toaster)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언어유희와(다만 아쉬운 건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그의 유머를 더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랑의 건배’보다는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같이.) ‘왕따 계란(Eggregation)’에서 보여주는 풍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물의 선택과 사물들이 가진 특징 등의 조합을 통해 단순히 재미를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그런데 그 방식은 전혀 무겁지 않다. ‘인종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계란 바구니에 적혀 있는 ‘COLOR ONLY’라는 단어를 통해 간단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식이다. 극심한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 문제를 가볍게 다루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보는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사실 아닌가. 이렇듯 우리 주변에 사물은 많고 그것들은 ‘테리 보더’의 손을 통해 무한하게 확장된다. 하지만 그것이 꼭 그가 사물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는 사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마시멜로의 화형식(Joan of Marshmallow), 2010>



우리가 전시를 보는 가장 큰 목적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전시를 보는 행위는 일상을 벗어난 일탈이다. 일상을 벗어나 만나게 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생각을 바꿀 수도 있고 그것이 우리 내부의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재미,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일상 속 유머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하루에 하나 이상의 작품을 쏟아낸다는 ‘테리 보더’의 아이디어를 따라갈 수만 있다면! 마치 ‘미녀와 야수’ 속 사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 일상에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펼쳐질 것이다. 내가 쓰는 볼펜이 볼펜 똥을 휴지로 닦고 있고, 생두와 볶은 커피콩을 각각 경찰과 범인으로 둔다면 그건 또 하나의 풍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분명 우리 일상을 재밌는 상상으로 가득 차게 해줄 것이다. 우리가 라라랜드에 열광하고, 디즈니의 상상에 열광했던 이유는 다 이런 이유가 아닐까? 불가능하지만 기분 좋은 상상!



<헬멧 착용하기(This Chap Sticks the Landing), 2007>



고고한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나의 글을 보고 친한 형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너만 알아먹을 수 있는 글을 쓰면 뭐 하냐. 결국 글은 남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거야.’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그 말의 뜻을 새삼 너무나도 깊이 깨닫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예술품은 보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한다는 것. 자기만족만을 위해 세상에 나온 작품은 이미 우리가 그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세상에 던져진 이상 예술은 평가 받는다. 관객이 있어야 영화가 있고, 독자가 있어야 글이 있듯이 관람객이 찾아야 전시도 비로소 빛을 발한다. 현학적인 물음에 지치고,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한 전시가 떡 하니 마련돼 이미 마련돼 있다. 누구를 데려와도 만족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살면서 울 순 없으니 웃어야지 않겠는가. 다들 웃으며 살자.


기간: 2019. 07. 18.~2019. 12. 31.

장소 및 시간: 사비나미술관, 매일 10:00~18:30, 월요일 휴무

홈페이지:

http://www.savinamuseum.com/eng/exview.action?exdgb=OF&exfgb=&startdt=&cpage=1&exidx=157&searchFlag=&searchValue=




글.아트렉처 에디터_이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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