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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Sep 08. 2020

불안을 인정하고 응시하기

https://artlecture.com/article/1856


2020년 9월. 이 글을 쓰는 현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이다. 1년 전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안전하게 가만히 있다가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떠오르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생겨나는 우울함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현 시대를 살아나가고 있다. 이렇게 불안감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겨내야 할지 계속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중,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1929~)'라는 작가가 떠올랐다. 강박증이라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작업을 통해 극복해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를 통해서라면, 불안에 휩싸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해나가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사마 야요이, <호박> 연작, 2013.


 

한국에서는 물방울 무늬가 가득한 호박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 여성 작가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 교육을 받고 활동하다, 29살부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조형적 특징은 ‘반복’이다. 주로 물방울 무늬와, 망을 반복적으로 그려 넣는다. 또한 입체물을 만들 때에도, 남근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덩어리들을 반복적으로 붙여나가며 작업한다. 



(좌) 쿠사마 야요이가 10세 때 처음 환각을 겪고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어머니; (우) 쿠사마 야요이, , 2013.


 

그녀의 작업에서 물방울(Polka Dots)과 무한망(Infinity Nets)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까닭은, 그녀가 겪고 있는 신경증으로 인해 모든 사물이 점, 그물 등으로 뒤덮인 환영을 보는 증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신경 쇠약을 겪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어머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몹시 가부장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녀를 억압하였다. 항상 쿠사마의 행동과, 그녀가 작업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녀에게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해왔다. 근본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는 결국 ‘강박 신경증’을 앓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증상을 겪고 있다. 

쿠사마는 자신이 느끼는 강박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캔버스 안에 물방울과 무한망을 계속해서 채워 넣는다. 채워 넣는 행위를 ‘계속’ 한다. 병적인 증상에서 나온 반복이라는 행위는, 남들이 보기에는 미친 것 같고 부질없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반복해서 그려내고, 만들어내는 행위를 하는 시간은, 그녀에게 탈출구이자 온전한 삶으로 향하는 입구와도 같다. 반복적으로 어떤 형상을 그려내는 행위는 그녀에게 단지 ‘기계적인’ 반복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극복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좌) 쿠사마 야요이, <천 대의 보트쇼>, 1963; (우) 쿠사마 야요이, , 1962.


 

그녀의 작업 〈천 대의 보트 쇼(One Thousand BoatsShow, 1963)〉를 살펴보면, 남근 형상을 딴 핸드메이드 오브제로 덮인 8피트의 보트가 중심에 놓여진다. 벽은 999장의 똑같은 포스터 사이즈의 사진으로 채워진다. 남근을 모티브로 한 형태는 그녀의 주된 작업 중 하나인데, 이에 대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의부증에 시달리던 쿠사마의 엄마는, 늘 쿠사마에게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훔쳐보고 오라고 시켰고, 그런 그녀는 스파이 역할을 강요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로 인해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고, 반복적으로 남근 형태의 오브제를 만들며 성에 대한 정신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전시를 통해 공개된 그녀의 작품은 여성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풍자하고 있었다. 남근 형태의 반복은 단지 형태적인 반복이 아니라, 심리적 불안에 대한 해소 행위이며, 성에 대한 사회적 풍자로까지 나아간다. 또한 999장의 반복되는 사진들은 당시 미술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개인의 심리적 불안에서 시작된 작업이, 사회에 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동시대 미술에 대한 비판을 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쿠사마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이겨냈다. 그녀가 ‘이겨내기’ 위해서 한 것은, 그녀의 불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물론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요소를 자신의 삶에서 떼어놓지 않고, 인정하고 응시했다. 눈앞의 환영을 계속해서 그려내며 그 형상을 분석했고, 그 행위를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안 속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가 쿠사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태도는,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 때 깨달아지는 것은,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나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깨달은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조건적으로 불안에서 탈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일단 현 상황으로 인한 아픔과 불안을 인정한 후에, 끊임없이 바라보며 분석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극복의 대상이 될 것이고, 언젠가는 극복해낸 대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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