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언어로 예술이라는 집을 짓는 여성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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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유칼립투스의 잎사귀가 길게 늘어져 화면을 채운 두 개의 그림. 하나는 긴 머리카락 같고 하나는 여성의 음부 같았던. 한없이 부드럽고 고요한 그 틈새에서 안온했다. 작년에 보았던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칼립투스의 향기> 전은 작품 ‘마망’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은 거대한 거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녀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정교사와 긴 시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그런 아버지를 용인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 또한 복잡한 것이었다. 그런 루이즈 부르주아는 성장하면서 애착을 요구하는 관계에서 힘겨움을 느꼈다. 부모, 형제자매,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모순적(양가적) 감정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그녀는 작품에서 부모에 대한 기억을 반복하여 표현했다. 대표적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거미’로 나타냈고, 아버지에게 느꼈던 폭력과 분노는 방 크기의 재현작 ‘아버지의 파괴’로 드러냈다. 출산 이후 부적절한 감정에 사로잡힌 루이즈 부르주아는 가족에 대해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은 탯줄이 잘리지 않은 채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아기와 여성을 표현한 작품, 집을 가면처럼 눌러쓴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찾는 것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도 아니에요. 내가 재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것은 원하면서 주고 싶기도 하고, 파괴하고 싶기도 한 감정이에요. 그러한 힘에 대한 확인(identification)입니다.”*
_루이즈 부르주아
한때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수년간 정신분석에 몰두하기도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에 매달렸고, 불안한 감정을 작품이라는 물리적 대상으로 구현했다. 초기 그녀의 작품에는 이러한 감정이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드러나 관객을 당혹시켰다.
그녀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온전한 정신을 지켜줍니다.”, “예술은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그녀는 평생에 걸쳐 ‘외로움이나 질투, 분노와 두려움’ 등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다양한 재료와 모티브를 탐구하며 창작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70여 년에 걸쳐 만든 작품은 실로 엄청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동물과 곤충, 자연물에서 특정 신체 부위(성기나 가슴, 눈 등)나 얼굴, 초상화, 모성과 가족, 음악과 나선 등 무수한 모티브를 변형하며 작품에 등장시켰다. 또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재료와 도구로 작업을 시도했다. 여러 판화 기법(아쿠아 틴트, 드라이포인트, 에칭, 리소그래피 등)을 사용해 인쇄 작업을 했고 드로잉과 조형, 그리고 대형 설치 작업에 이르도록,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예술은 그녀와 한 몸이 되어 그녀를 살게 했다.
유칼립투스,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칼립투스의 향기>(2021, 국제 갤러리) 전에는 작가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작업한 판화 작품과 조형물이 전시되었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머무르며 병든 어머니를 보살폈던 젊은 시절의 부르주아는 당시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억으로 작가에게 유칼립투스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스튜디오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곤 했던 작가의 습관을 떠올리면 작가에게 유칼립투스는 실질적이면서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추억을 자극하여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내는 매개체이자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전시실에는 다양한 질감의 종이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된 작품이 걸려 있었다. 동판화(에칭)로 찍어낸 그림은 나뭇잎이나 씨앗, 꽃이나 식물 줄기를 연상시켰다. 때로 여성의 가슴이나 음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여러 겹 섬세하게 덧대어 그어진 선은 대상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럽고 유연했다. 루이즈 부르주아가 아흔이 넘어 작업한 판화 작품에서는 직설적인 폭력이 아닌 은유적인 시정과 치유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내면으로 #4(the smell of eucalyptus)>였다. 같은 상을 뒤집어 찍은 듯 두 개의 작품이 한 몸처럼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결코 같지 않고 다르지만 다르다고만 할 수 없는 미묘한 간극, 그 사이에 관객을 머물게 했다. 유사성과 동일함 사이, 가깝지만 멀기도 한 거리를 사유하는 사이 짝을 이룬다 해도 본질적으로 혼자인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의 파괴’나 ‘마망’, ‘여성의 집(팜므 메종)’처럼 과거 그녀의 작품에서 강조되었던 불안과 분노, 폭력의 기운은 없었다. 외부와의 역학 관계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노년에 접어들어 변모한 걸까. 주요 모티브로 반복되는 씨앗과 낙엽, 꽃과 줄기 같은 자연의 일부, 똬리를 틀고 있는 혈관과 내부 장기처럼 자연과 유기물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은 아닐까. 억압적으로 작용하는 감정에서 벗어나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 속 유동적 존재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 것 같았다.
치유의 가능성, 시도하길 멈추지 않는 것
“시도하고 시도하고… 그러다 갑자기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자신의 작품 세계)이 그런 식으로 될지 몰랐어요. 그것은 미스터리랍니다.”*
_루이즈 부르주아
70세가 되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개최) 미술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된 그녀는 98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새로운 기법과 시도로 누구보다 활발하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그녀에게 예술은 고통스러운 삶에 대처하며 깨끗한 정신을 지켜 내기 위한 도구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고 작품 활동에 몰두했으며 70여 년에 걸쳐 끝없이 시도하길 멈추지 않은 작가. 자신의 어두운 상처와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마침내 부드럽고 고요한 ‘치유’의 세상을 빚어낸 사람,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는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자신의 과거와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했고 그로써 자신과 화해하는 평온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리라.
"나는 이것이 출몰하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과거가 되길 바랐습니다. 과거, 유령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 말이죠.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해 나가기 전까지는."
_토니 모리슨
유칼립투스의 온화한 선을 그리기까지, 자신의 기억과 내면을 순전히 바라보기까지 그녀가 거쳤을 불면의 밤은 얼마나 길고 깊었을까. MoMA의 온라인 아카이브에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방대한 작품이 저장되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작품)를 클릭하며 그녀의 상처와 고통을 가늠해보았다. 거기 침몰되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일기를 쓰고 작업에 몰두했을 그녀를 상상하면 필자의 현실적 고통과 불안은 옅어졌다.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그림을 떠올리면 희미한 유칼립투스의 향이 코 끝을 스친다. 향기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스쳐간다. 시도하고 시도하고... 그러다 갑자기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진 및 인용 출처>
* MoMA의 온라인 아카이브
https://www.moma.org/search/?query=louise+bourgeois
글 아트렉처 에디터_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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