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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Dec 03. 2023

이미지 메이커와 스토리 텔러

https://artlecture.com/article/3155


그/그녀는 이미지 메이커입니다.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이나 번뜩이듯 찔러 오는 결정적 순간을 담은 한 장의 사진으로 시선을 붙듭니다. 그/그녀는 스토리 텔러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흘러가며 늘어놓은 이미지에 담겨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그/그녀는 사진가입니다. 사진은 단지 정지된 순간을 포착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흘러간 시간의 한 점을 목격하기도 하고, 단편적인 점들을 이어 그린 선 위에 담긴 세월을 읽기도 합니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그리고 김신욱 작가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는 카메라를 활용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 능숙합니다. 그러한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네스호에 사는 괴물의 흔적을 쫓은 <네시를 찾아서>, 한반도 어딘가에 존재했을 호랑이에 대해 다룬 <조선 호랑이> 등의 작업을 했고, 자칫 뜬구름 같을 수 있는 이야기를 구체화해 보여줬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떠도는 보물을 추적한 기록을 정리한 새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2023.10.13~12.31) 전시입니다. 작가는 백여 년 전 러일 전쟁 당시 침몰한 러시아 군함 드리트리 돈스코이호에 얽힌 기사를 읽고,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이름조차 생소한 러시아 군함에 실은 엄청난 양의 보물이 실려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깊은 바닷속 난파선은 소동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현재 가치로 150조 원에 달한다는 보물의 가치가 일부 사람들을 현혹하고, 탐사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수십억 원의 암호 화폐가 팔려 나가는 등 근거 없는 보물 이야기는 소문에서 현실 -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존재하는 - 로 변했습니다.


작가는 하나의 소문이 태동하고, 살이 붙어 굴러가는 사태를 보면서 직접 그 근원에 다가가 보기로 했습니다. 군함이 침몰한 울릉도 앞바다에 가보고, 전쟁 당시의 사료를 뒤졌습니다. 한데 그의 발걸음은 위도와 경도로 특징지을 수 있는 동해의 한 지점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행보는 부산과 제주도, 동·남·서해안의 여러 섬을 포함해 멀리는 일본의 대마도까지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보물들’의 소문을 찾아 기록하고, 러일 전쟁과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남긴 잔해들, 제주 4.3 사건의 역사가 얽혀 있는 현장 등을 함께 담았습니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필자는 김신욱의 이러한 작업 과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예술가가 얼마나 예민한 존재인지, 미지의 보물을 둘러싼 한 편의 소동에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멀리 뻗어가는 지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사진가 김신욱은 뛰어난 이미지 메이커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스토리 텔러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네시와 한반도의 호랑이, 동해에 가라앉은 러시아의 보물섬은 그의 손끝을 거쳐 몇 페이지짜리 단편에서 방대한 서사시로 변모합니다. 그는 작은 흔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엮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작가는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을 ‘실체적 진실’을 기록한 현장 사진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묶어 구성하였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진의 장점이자 한계가 “그곳에 있었다 혹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했는데, 사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은 바로 철저한 연구와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비어 있는 시간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전시를 보는 것도 좋지만, 함께 출판한 사진집에 실린 풍부한 아카이브와 세세하게 적어 둔 인덱스를 함께 읽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바다와 섬들의 풍경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온 컨테이너 야적장은 무슨 의미인지, 오름 정상에 패여 있는 물웅덩이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는지를 알게 되면 이미지를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기계평론가 이영준은 김신욱이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을 찍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카메라가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도구임을 생각할 때, 모순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김신욱 작가가 “비가시적인 것들이 가시적인 세상에 작동하는 방식" 1) 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영준 평론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가 프레임에 담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필자는 전시장에 걸려 있는 백여 년 포대 진지의 흔적, 그곳에 포연처럼 희뿌옇게 남은 바람/나뭇잎의 자취를 보며 보이는 것 이상의 존재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신욱이 쫓는 소문과 역사는 마치 “유령"처럼 가시적인 세상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현실의 작동 방식 - 소문을 믿고 추종하는 이들의 탄생처럼 - 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신욱의 작업을 보면 ‘지독하다’라는 표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집요하게 파고들고, 탐구한 끝에야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은,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진정성"이며, 결코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진심임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전시 풍경

                    

각주.

1)<현대예술사진학회> 제3회 정기학술대회(2023.11.25) 발표 주제.




글 아트렉처 에디터_최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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