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20. 2023

강석호 전시 리뷰 <3분의 행복>

https://artlecture.com/article/2985


강석호의 회화는 전체가 아닌 부분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매일 보았던 일상의 장면들이 그의 시선에 의해 편집되어 복잡한 서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우리와 마주한다. 


“(중략) 나는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를 않습니다. 아니 다시 정정하면 생각을 하질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난 그저 숨만 크게 쉬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떨 때 보면 3분이라는 시간은 아주 긴 터널을 지나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강석호- 



강석호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의 응시를 통해 포착해낸 이미지를 그린다. 낯설고 비껴진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가 마주한 인물과 사물을 표현해내고, 그런 그의 그림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각인된 경험과 기억만이 말할 수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1999년 친구의 스웨터 일부를 그린 드로잉을 시작으로 강석호는 인물 사진을 특정한 구도로 잘라내고 확대하여 회화로 옮겨왔다. 특히 옷의 무늬, 색, 질감, 주름 같은 요소들을 회화의 조형적 조건으로 활용하며, 인물화를 통해 풍경과도 같은 서정적 미감의 세계를 창조해내기 시작한다. 


내면의 자기를 응시하여 내면의 자기와 마주하는 그래서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키워내는 이 변주된 형태는 규칙과 체계의 지배하에 사는 우리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판타지를 부여하며 오랫동안 그 앞에 멈춰서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 더 깊이 수렴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받으며 형태 이면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강석호는 실제로 흰 바지나 청바지를 입은 뒷모습을 그린 자신의 그림에 대해 백자와 한국의 바위 풍경을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언급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그에 의해 재편집되어 새로운 세계로 전이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난 보는 행위를 무척 좋아합니다. ”





이제는 단순히 본다는 것에도 피로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강석호의 응시는 오히려 따스한 안식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의 바라보기에는 다정한 무심함을 유지하는 관조적 거리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찰나에 머무는 듯한 그의 시선에 대한 기억과 은유 그리고 이를 전시하는 유연하고 실험적인 방법들은 그가 자신을 ‘미학의 탐구자’라고 부른 이유에 대해 가늠토록 한다.





어느 소설가는 ‘작가란 모든 인간이 점차 기능적으로 완벽한 말만을 추구해 갈 때 그 효용성에 무심한 채,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새삼 강석호가 그 정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모더니즘 서사의 형식을 견지하면서도 이를 삶의 비유적인 표현과 연결을 시키려 늘 고민했던 누구보다도 진지한 작가였다. 또한, 끊임없이 현재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개인의 역사에 각인된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며 그 관계 맺기를 통해 감정을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해 끝없이 탐구했다. 특히 형식적 단순성을 유지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은유와 인간의 감성과 태도를 자신의 예술 안에 담고자 일생동안 분투와 수행을 지속했다. 그리고 그는 신체에 대한 형식주의적 은유로써 그 답을 찾는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관계’라는 테제는 어쩌면 회화라는 형식 이전에 사람에 관한 그 무엇이었을지 모른다.‘





강석호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익숙한 존재의 모습을 빌린 후 그것을 사각 프레임 안에 담는 것에 집중했다. 비록 작가의 시선에 상응하여 제한적인 프레임에 가두었지만 저마다의 기억과 시간이 포개어지며 그 공간은 깊이를 더해가고 프레임 밖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미세한 시그널까지 감지시킨다. 그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솔직함과 솔직함에 묻은 고민들은 그때의 감정과 함께 우리에게 전달되고 나와 관계 맺는 것들에 대해 다시 살피게 한다. 복잡다단한 서사가 탈각된 채 마주한 지나치게 무관심한 그의 응시는 오히려 더 많은 관계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작가가 주는 선물과도 같은 아름다운 삶을 본다.


이번 전시는 관계와 사람 그리고 삶에 천착했던 강석호의 세계를 담아내는 다양한 방식과 그의 시선의 변주를 통해 그가 짧은 삶 속에서 중요시했던 일상과 조형, 유토피아, 산책 등을 함께 감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한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가시적인 현실로 구축해내기 위해 보냈던 그 지난한 시간과 울림은 우리 곁에 영원히 공명하여 삶의 감각을 회복하게 하고, 전시 제목인 ‘3분의 행복’처럼 일상 속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하게 할 것이다. 


<3분의 행복>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22.12.15. -2023.03,19 까지 전시중입니다.

https://artlecture.com/project/9261



글 아트렉처 에디터_박미란

Artlecture.com

Create Art Project/Study & Discover New!

https://artlecture.com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