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있다는 증거, 공간과 건축
우리는 공간에서 태어나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공간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공간의 디자인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그는 건축을 두고 자연이 만들어 내는 흐름을 거스르는, 인간의 지혜이며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욕실로 자연의 빛을 이끌어 오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욕실은 자유 평면(le plan libre)의 조형적 공간을 극적으로 만드는 오브제 투르베 (Objet trouvé) 였다.* 것에서부터, 주변 환경에 따라 유입되는 모든 것의 동선을 계획하는 등의 방식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자연을 거스르는 공간을 디자인한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이질적인 두 가지를 유기적으로 녹아들게 하는 그의 건축은 늘 인간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실을 향한다.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인간 외부 세계 사이의 중심을 잡아주는 예술성을 건축에 부여하는 것이다.
올해 초를 기점으로 우리 가족은 서서히 집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실은 아주 예전부터 엄마와 집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긴 했었다. 서로 살고 싶은 집에 관한 얘기를 시작하면서, 지금의 방 구조는 이러한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제안을 하기도 하고. 가구의 배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웃긴 사실은 그러다가 결국에는 집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말자는 결론으로 도달한다는 것이다. 공간에 애착을 부여할수록 그 공간에 얽매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공간을 바꾸는 일을 진행하면서 르 코르뷔지에가 구축한 공간의 예술성은 내게서 먼 것으로 느껴졌다.
공간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과정
나이를 먹은 벽지를 뜯어내 새로운 페인트를 바르고, 각자가 좋아하는 가구들을 새로 구입하거나 기존의 것을 이리저리 옮겨보면서 우리 가족은 비로소 집이라는 곳에 나름의 예술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애정을 부여할수록 집은, 공간은 참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부 쏟아내듯 집이라는 공간은 자신이 얼마나 따듯하고 기분 좋은 공간일 수 있는지를 열심히 알려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집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의 '인식'이 미처 닿지 못했을 뿐. 마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예술품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레디메이드(Ready-made) 예술로 우리가 칭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작은 화병을 놓아볼까 고민하고, 어떤 향기로 공간을 채울까를 고민하는 것은 모두 나의 공간을 더욱 깊게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간에 대한 애착이, 애착이 불러온 인식의 변화가 우리를 공간에 얽매이게 할 것이라는 가설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인식의 행동은 예술을 향한 것이었다.
공간을 하나의 피사체로 보는 것
피사체를 여러 방면으로 살펴보며 발견한 다양한 미의 모습들을 화폭에 옮기는 것. 사람들이 기존에 잘 보려고 하지 않던 것의 나열을 통해 생경한 미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이러한 문장들은 큐비즘(Cubism)의 예술 작업들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큐비즘의 대표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e Picasso)의 회화를 보고 독일의 평론가 칸바일러(Danie-Henry Kahnweiler)는 '현상학적'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는데, 피카소의 작업이 보여주듯 우리가 상(像)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비로소 시간과 애정을 가지고 세심히 살펴보아야 그 대상이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하나의 피사체로 보고.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를 한 사람의 화가로 바꿔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공간에 대해 여러 시선으로 인식하고 가꿔주는 것은, 피카소가 위치를 바꿔가며 대상을 고찰하던 것과 유사한 것이 된다. 공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또 한명의 르 코르뷔지에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아트렉처 에디터_윤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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