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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Mar 05. 2021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자비에 베이앙 Xavier Veilhan

 

 혹시 만화가 김성모 아세요? 꽤 탄탄한 매니아 층을 가진 만화가인데, 많은 분들의 짐작과 달리 저는 그 사람 만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상한 예술계에 계신 분들은 “그게 누구?”라고 하실 거고요. 김성모가 어떤 만화가인가 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 말은 그의 만화에서 주인공이 범죄를 도모하며 무슨 장치를 만들고 다루는 방법을 설명하다가 말을 접어버리는 장면에 쓰였답니다. 작가는 진짜 존재하는 이 도구가 만화 설정처럼 범죄에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그랬다고 하네요. 대단한 이야기가 잔뜩 이어질 것 같다가 그렇게 마무리되는 걸 본 독자들은 참 허탈했을 것 같아요. 


(출처 = 김성모 작가의 만화 '대털' 中) 


 이 장면은 만화책을 뚫고 나와 인터넷 여기저길 돌아다니며 쓰이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댓글이 이어지다가 더 이상 답하기 귀찮거나 난처할 때 이 그림을 달아버리면 됩니다. 참 쉽죠. 하기야 예술비평에서 이와 비슷하게 영혼 없이 글을 끝맺음하는 패턴도 종종 있죠. 뭐 이런 식으로요. “해석은 이 작품을 감상하는 여러분에게 맡긴다”나 어쩐다나. 그게 수용미학에서 출발한 독자반응비평도 아니고, 그냥 글쓰는 사람이 논지를 마무리 지을 능력이 없을 때 열린 결말로 떼우는 전형이죠.


Xavier Veilhan © Manfredi Gioacchini


 어디 2차적 관찰인 비평만 그럴까요? 세계를 1차적으로 해석한 예술 작품에도 그런 건 넘쳐납니다. 조형예술에서 작가들은 자기 작업을 어느 지점에서 끝맺어야 하는지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그 적실한 포인트는 몹시 주관적인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겟죠. 그런데 프랑스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은 아무리 자기 맘이라고 해도 완벽한 재현 상태에 한참 못 미치는 입체물을 완성품이라고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폼이 참 좋습니다. 1980년대부터 이름을 서서히 알리더니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조각가가 됐네요.


The Monster, 2006 (출처 = veilhan.com)


 베이앙의 조각은 재료 덩어리에서 완성태를 향해 쪼아내는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딱 멈춰버린 것 같은 외형을 지닙니다. 그게 실은 캐스팅, 레이저컷팅, 3D프린팅 같이 당대 중범위수준 이상의 기술(하이테크까진 아니고요)을 써서 완성한 것이죠. 그는 변증법적 의미에서 완결된 작업보다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어느 지점에 멈추는 게 대상이 가진 삼차원의 특성을 더 잘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인물들의 표정과 이목구비, 코스튬 같은 특징은 당연히 빠져 있음에도요. 이 세계와 각 개인이 가진 복잡함은 상당 부분을 쳐내고 남은 기본 형태만을 남겨둘 때 비로소 보이는 본질이 있습니다. 막스 베버의 사회학 방법인 이념형 설정처럼 자비에 자비앙의 조각도 단순함이 통찰을 이끕니다.


Nataša, 2018 (출처 = veilhan.com)


 워낙 유명한지라 우리 주변에서도 그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인천공항에 가도 볼 수 있고, 또 어디에 있었는데 기억 안나요. 젊은 작가들이나 학생들의 아류작도 많고요.바우바우 여자 핸드백보면 꼭 이 사람 조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올초에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그의 작품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요. 나무 합판이나 합성수지 판을 퍼즐처럼 엣지를 살리면서도 아주 매끈하게 이어 붙여 폴리싱한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그 정밀함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기계공학을 전공했거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은 다 알 겁니다. 이게 대단한 기술은 아니라는 걸요. 다만 공장에서는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처음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제품 성격으로 제작되겠죠. 반면에 에디션 순번이 붙더라도 소량에 그칠 자비에 베이앙의 조각은 판매가가 높은 상품이니까 초기 투자 비용을 금새 뽑고도 남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설치된 ‘그레이트 모빌’ (출처 = 그자비에 베양·313아트프로젝트)


 조형감각이 기술과 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는 그의 조각 밑천을 채우는 건 바로 조각이 그 주변의 실재 인물들을 모델로 삼았단 겁니다. 이거야 말로 그의 발목을 붙잡을 기술결정론이나 아니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버린 대충대충스러움을 잠재울만큼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입니다.




- Retro perspective 2019 -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 / 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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