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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Mar 30. 2021

다 헛것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올해 초반에는 모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김희연씨와 어울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대화가 깊어지면 이야기는 늘 신세한탄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결론은 버킹검이 아니고, "다 헛 것"으로 내려졌죠. 다와 헛 사이에 한 호흡의 공백을 넣어 길게 뽑을 수록 인생무상의 어감은 살아났죠. 


 지나고 나면 다 허무할지언정 예술작품은 남는 법이죠. 그렇지만 여기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 그 또한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벌였던 설치 작업은 사라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쿠바에서 태어나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이 퀴어 미술가에 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테죠.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Felix Gonzalez-Torres, 1991. 이미지 출처 | Wikiart


 그의 대표작이 있습니다. 제목을 전부 <무제>로 달아 둬서 작품이름보다 사탕더미라고 해야겠습니다. <Portrait of Ross 1991>란 부제가 딸리긴 했습니다. 전시공간 한 켠에 잔뜩 쌓아둔 사탕은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쌓여 반짝입니다. 엇, 웬걸? 관객들이 맘껏 가져가도 된다네요. 


 뭔가 하면,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이름은 작품 부제에 적힌 Ross고, 1991년에 세상을 떠났겠죠? 떠난 애인을 못잊은 작가는 건강하던 로스의 체중인 79kg만큼의 사탕을 쟁여두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사탕을 집어가며 줄어드는 무게는 쇠약해진 연인의 줄어든 몸무게입니다. 가벼워지고 훼손된 인스톨레이션은 그때마다 또 원래대로 채워집니다. 토레스는 두 사람이 좋았던 시절을 늘 떠올렸겠죠. 그리고 그도 연인과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애인보다 6년을 더 살았지만, 그때가 1997년입니다.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21세기를 못보고 갔네요. 그가 죽었던 해에도 좋은 소설, 음악, 영화가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까. 그래도 작가는 데릭 저먼의 퀴어 무비는 봤겠죠. 레오 카락스의 영화 <나쁜 피> 또한 봤을 공산이 큽니다. 그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은 카락스가 에이즈에 걸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찍은 모습을 보며 토레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토레스의 인스톨레이션은 죽음과 실연 앞에서 처연하게 맞선 작가의 고통스러운 기록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벌써 과거가 된 그 시대상입니다. 왜냐면 이제는 에이즈가 비록 완쾌는 어렵더라도 적절한 관리를 통해 더이상 필멸의 저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많이 관대해졌고요. 


"Untitled" (Perfect Lovers), Felix Gonzalez-Torres, 1990. 이미지 출처 | Wikiart


 저는 토레스의 작품을 보면 그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부재한 자가 남긴 빈 자리로부터 생긴 아픔 말입니다. 푹 꺼진 상태로 남은 연인의 베개 작품도 그렇고요. 한날 한시에 맞춰져 가다가 배터리가 닳아서 먼저 멈춰 각기 시간을 달리 하는 시계 작품은 또 어떻습니까. 하지만 다 헛 일 같습니다. 토레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작품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는 자기애가 강했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부재하는 이 자리에서 작가는 그 실존을 대체할 뭔가를 두기 원했고, 잊혀질 권리를 갖고 안식을 찾을 로스를 끝없이 소환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p.s 그건 저도 모를 일이죠. 이 순간에도 지나간 기억에 대하여 끝없는 방점을 글에다 찍어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Retroperspective 2019 -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 / 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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