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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Apr 01. 2021

일요일 아침처럼
조용하고 가벼운 마음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프레드 샌드백 (Fred Sandback)



 1980년대 초중반 팝계는 라이오넬 리치가 날리던 시기였습니다. 솔로가수로 창청히 뻗어가기 직전, 그룹 코모도스의 리드싱어로 이미 인기가 드높았던 그가 그룹 말년에 불렀던 노래 중에 하나가 "Easy"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껏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은 그루브 감을 깐 달달한 사랑타령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멜로드라마에도 종종 쓰였죠.


 정작 이 노래 가사 내용은 좀 달라요. easy가 홀가분하다, 짐을 벗었단 의미라네요. 어떤 여자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며 행복했지만 그 둘에겐 그만큼의 괴로운 짐도 있었죠. 끝내 각자의 길로 돌아선 이제 그 사랑은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답니다. 정신없던 토요일이 지나고,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조용하고 가벼운 마음(Easy just like sunday morning)이랍니다.


Blue Day-glo Corner Piece, Fred Sandback, 1968. 이미지 출처 | Wikiart


 여기 아주 가벼운 조소작업을 펼치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제 한국에도 웬만큼 알려지기 시작한 프레드 샌드백입니다. 그가 만드는 작업을 실조각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나는 조각에 대한 글을 쓸 때 종종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작품의 공간점유와 무게입니다. 무게는 작품 사이즈나 재질 같은 객관적 정보지만 꼭 밝히는 사항은 아닙니다. 예컨대 미술은행 작품매입 과정에 무게는 꼭 명시되곤 합니다마는 보통은 그렇지 않죠. 하나의 조소작품 무게는 그 작가가 겪은 노고와 꼭 비례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참고사항은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프레드 샌드백은 중량이 주는 압박감에선 참 자유롭네요. 그 가벼운 선들이 빈 공간을 드로잉하듯 종횡무진합니다.


 그의 실조각은 처음부터 그렇게 지정된 게 아니라 철사나 로프 혹은 고무줄 같은 재료를 썼다고 합니다. 아무튼 선이 만드는 임의의 공간 연출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잡힌 것이죠. 무엇보다 선은 염색이나 색칠이 가능하여 착시나 강조처럼 한층 더 정교한 시각적 연출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Untitled,  Fred Sandback, 1968. 이미지 출처 | Wikiart


 실은 선에 가까운 재료이며, 이 선들이 모여 입체감을 만듭니다. 말하자면 가상의 부피감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이때문에 그의 작품은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조각에서 덩어리감이 없다면, 그냥 윤곽만 존재한다면 이것을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뭐 꼭 조각이라 할 이유도 없고, 아니라며 부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든 아니든 이 작가의 작품을 별로라며 싫어하는 사람을 나는 못 봤습니다. 얼마나 홀가분합니까? 이 글을 읽고 누군가가 "내가 바로 싫어하는 사람이다"고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troperspective 2019 -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 / 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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