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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Apr 02. 2021

장난감들이 펼치는 하나의 세계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마크 다이언(Mark Dion)



 한 달쯤 전부터 택배를 갤러리로 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오는 상품이 책과 음반입니다. 가끔 운동화가 있기도 하고요. 1층에서 일하는 큐레이터가 그 물량을 보고 놀라더군요. 매주마다 오는 CD 갯수가 평균 10장이니까 한 달에, 일 년이면 대략 갯수가 나옵니다. 책은 그 정도는 안 되고요. 집에서 시간 날 때마다 음반을 목록별로 정리합니다. 그러면서 알았죠. 취미라면 취미일 수 있는 이 재미의 핵심은 분량을 불리는 것도 아니고, 돈을 탕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그건 CD나 책을 가지런히 배열하는 질서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전음악을 아렌스키부터 비발디까지, 팝음악은 아바부터 지지탑까지 알파벳 순에 따라 채웁니다. 그런데 재즈는 블루노트, 리버사이드, 콜롬비아, ECM 식으로 음반회사별로 둡니다. 매번 사재끼는 수량만큼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중고가게나 자선단체를 통해 처분합니다. 수집목록을 어떻게 들이고 갖추느냐 하는 건 다 내 맘대로입니다. 


Travels of William Bartram Reconsidered, Mark Dion, 2008. 이미지 출처 | Wikiart


 수집은 곧 어떤 걸 수용하고 어떤 건 배제하는 일정의 편집 행위입니다. 편집은 세계 만물에 대한 선택과 새로운 질서 부여입니다. 당연히 그 수집가(편집자)가 가진 주관이 깔립니다. 이상한 건 공공의 수집 제도, 그러니까 박물관이나 뮤지엄 같은 기관이 모은 목록은 대부분 비슷한 질서 패턴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나라 저 나라가 다 그게 그거예요. 저는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을 리야 없지만, 어떤 가치 지향의 이데올로기는 충분히 숨어있을 만 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 다이언(Mark Dion)도 나같은 생각을 하나 봅니다.


 그는 주로 자연박물관이나 폐건물 중 일부를 전시장에 뚝 떼어온 듯한 설치작업을 해왔습니다. 어떨 땐 아예 박물관이나 현장에 직접 전을 펼칠 때도 있고요. 박물관이 관객들의 구경을 위해 전시물을 공개하고자 한다면 일단 식별하기 쉽도록 종류와 순서를 맞추어 배열하겠죠. 그 질서 부여에 대하여 영국의 스펜서 브라운 같은 논리학자가 굉장히 우아하고 또한 난해하게 증명을 보였는데, 그 내용은 나중에 제 논문 같은 지면으로 따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아무튼.


When Dinosaurs Ruled the Earth (Toys R U.S.), Mark Dion, 2008. 이미지 출처 | Wikiart


 마크 다이언은 대상을 수집하고 이해하고 전시하며 통제하려는 박물관의 의도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또한 수집, 이해, 그리고 전시를 기술(글쓰기)로 바꾸고 통제에 이르는 같은 절차를 가지죠. 이 세상에 막스 베버가 생각한 순수하고 객관적인 과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걸 그러려니 하는데, 작가는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마크 다이언 왈, 예술가의 활동은 곧 지배 문화가 현재화한 결과물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라 했답니다. 


 마크 다이언은 자기가 예술가로 불리길 원하지만 욕심이 많아서 학자로, 사회운동가로, 교육자로 저리매김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여러 방면에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좀 잘 할 일이지. 그는 여기저기에 걸친 인연으로 발이 워낙 넓어서 예술계를 벗어난 장소나 기관과의 협업을 종종 벌여왔습니다. 박물관이 그렇고 수족관이나 동물원도 빼놓을 수 없죠. 그 장소는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자기네들 앞마당 뿐만 아니라 중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에 걸쳐있습니다. 동아시아는 글쎄요. 저는 정보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크게 알려져 있지 않죠. 대신 비슷한 전략과 접근방식을 취한 작가는 꽤 되죠. 제가 이미 여러 번 이런저런 종이 매체에 썼던 나현 작가가 그렇고, 이번에 이인성미술상을 받게 된 조덕현 선생의 작업도 진작에 비슷한 부분이 있죠. 제가 볼 땐 우리 작가들이 근소하게 지적인 작업관을 갖고 있습니다. 


The Library for the Birds of New York and Other Marvels, 2016. 이미지 출처 | Tanya Bonakdar Gallery


 최근 2016년에 공개한 <뉴욕의 새를 위한 도서관>을 한 번 보세요. 철장 속에 새 22마리를 집어넣고, 새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할 곳 같은 책들을 바닥에 쌓아두었습니다. 제 생각인데, 나는 법을 깨우치라고 항공학을, 철새를 위해서 지리학을, 또 조류학이나 기타 여러 책들을 넣고 새들을 위한 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뻔뻔하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새들은 책 위에 새똥을 뿌리는 곳 외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무슨 도서관이라며 들어서고 있는 책들의 집합 장소가 노리는 게 과연 뭘까요? 


 작가 인터뷰 동영상을 보니까 자꾸 캐비넷이란 단어를 꺼내더군요. 제가 들은 캐비넷이 맞을 겁니다. 뭔가 하니까, 이 사람 작업 형태가 한 전시 공간 전체를 가짜 박물관으로 꾸며놓는 게 아니고, 수집한 것들을 펼쳐진 부스 형태로 공개합니다. 열려진 캐비넷 속의 대상들은 예술의 이름으로 자기 거짓말에 면죄부를 가집니다. 바비인형이나 실바니안 같은 장난감들이 펼치는 하나의 세계를 머크 다이언은 참조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안 하던데요. 좌우지간 이런 작업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긴 합니다.




Retroperspective 2019 -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 / 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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