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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Apr 19. 2021

사건을 다르게 보기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한스 페터 펠트만 (Hans-Peter Feldmann)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올림픽은 관심조차 안 두고, 월드컵 축구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내게 삼성 라이온즈는 유일한 응원팀이다. 응원이 즐거운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게 라이온즈 팬의 역사다. 늘 준수한 실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마지막 한국시리즈에 가서는 번번이 준우승에 머물던 이 팀이 새 시대를 맞은 해는 2002년이었다. 삼성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튿날, 나는 스포츠신문이란 신문은 죄다 샀다. 신문으로 벽을 도배하고 싶었던 게 내 심정이었다. 그러진 못하고 모은 신문을 타입캡슐에 넣었다. 최근 들어 성적이 좋아서 타임캡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Hans-Peter Feldmann,  9/12 Front Page, 2008. 이미지 출처 | 303gallery.com


 내가 별 쓸모없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한 그해 바로 직전에 비슷한 짓을 벌이고도 주변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는커녕 찬사를 받은 사람이 있다. 독일 작가인 한스 페터 펠트만(Hans-Peter Feldmann)이다. 일단 이 사람은 나보다 스케일부터 컸다. 그는 9.11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전 세계 신문들을 모았다. 내가 찬찬히 살펴봤는데, 우리나라 신문은 없었다. 모든 신문의 1면에는 여객기가 뉴욕 무역빌딩에 부딪혀 불을 뿜는 사진이 있고 온갖 자극적인 제목이 달려 있었다. 커다란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신문지가 그의 작품 <9/12 Front Page>이다.


 관객은 뭘 느꼈을까? 테러의 비참함? 아니다. 언론의 속성이다. 역사에 남을 비극을 특종으로 뽑아내어 발행부수를 올리려는 태도는 설령 그 신문사들을 비난하기는 뭐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TV연예 프로그램을 볼 때 내가 느끼는 얄미움, 예컨대 스타들에게 닥친 나쁜 일 앞에서 진행자들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속으로 박수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펠트만은 다른 맥락을 가진 낱개를 모아서 그것들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사회적 발언을 해왔다. 책과 전단지와 엽서, 또 신문지가 단골 소재다. 그는 이런 설치 작업 외에도 조각이나 회화를 곁들여 ‘사건을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 몇 해 전에는 패션 브랜드 휴고 보스(Hugo Boss)가 제정한 미술상에 최종 우승자로 뽑혔는데,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 벽면 전체를 1달러 지폐 십만 장으로 도배했다.


Hans Peter Feldmann, Legs, 31 photographs, pinned on board. 이미지출처 | se.royalacademy.org.uk


 물건이 가지고 있는 쓰임새나 뜻이 더미를 이루면 달라지는 그의 창작론은 물신주의에 닿아있다. 작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역전 현상을 설명한 경제학의 물신화(reification)를 표현했지만, 더러는 정신분석학의 물신주의(fetishism)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들의 입술이나 다리 사진만을 모은 연작은 ‘그녀를 좋아하므로 그 입술과 각선미도 예뻐하는’ 게 아니라, ‘아무 여자 입술이나 다리라면 다 탐하는’ 성적 집착을 암시한다. 이처럼 주객이 서로 바뀌어 벌어지는 집요함은 우리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할 때 흔히 쓰는 ‘선정적’이란 표현과 통한다. 이쯤이면 한스 페터 펠트만은 옐로 저널리즘의 주적과도 같은 존재가 분명한데, 그의 전시를 소개하는 미술 언론 또한 다를 바 없다. 세상은 재미있다.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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