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고 이건희 회장의 소장 미술품 2만 3천여 점이 최근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소장 작품들 중에는 문화재급의 작품들이 다수로 알려졌는데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 이름만 들어도 대표작이 떠오르는 거장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미술품 수집과 기증은 역사 속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메디치 컬렉션’을 남긴 메디치 가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메디치 가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영향력 있었던 가문으로, 네 명의 교황과 피렌체의 통치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경제적, 정치적인 면 외에 문화예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이런 결과에는 메디치 가문이 가졌던 부유함이 바탕이 된다.
메디치 가문의 경제적 기초를 다진 조반니 메디치(Giovanni di Vicci de’ Medici. 1360-1429)는 메디치 은행(Banco dei Medici)을 설립하여 피렌체에서의 경제적 세력을 키웠고, 조반니의 아들인 코시모(Cosimo di Giovanni de’ Mdedici. 1389-1429)가 이탈리아 외의 유럽의 지역들로 은행 지점을 확대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후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Lorenzo de’ Medici, 1449-1492) 대에 이르러 메디치 가문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럽 예술의 꽃, 르네상스 시대에는 엄청난 예술가들의 역사가 전해진다. 도나텔로, 미켈로초,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단테 등 천재적인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 작가들이 등장한 시기이다.
이 시대에 천재가 많았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금융업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이루게 된 메디치 가문은 정치적으로도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후 예술인 후원에 많은 지원을 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여는데 일조하게 되는데, 메디치 가문이 처음부터 부유했던 것은 아니다. 본래 메디치 가는 약사를 의미하는 ‘메디코’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듯 약업에 종사하는 가문이었다. 이후 은행업으로 피렌체에서 손에 꼽히는 거부가 되며 피렌체의 실권을 쥐게 되었다.
기독교적 가치관이 당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현실에서 부를 추구하는 상인들을 천한 존재로 여겼다. 따라서 금융업(이라고 쓰고 ‘대금업’, ‘돈놀이’라 읽을 수 있는)으로 부를 이룬 과정은 그들의 콤플렉스였고, 이러한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지 않으며 금융업을 합리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후원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이 있다.
피렌체의 대표적 관광지 ‘우피치 미술관’에는 ‘메디치 컬렉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6세기 중반, 메디치 가의 코시모 1세 (Cosimo I de’ Medici)에 의해 착공된 우피치 미술관은 집무실(Office)라는 뜻의 우피치(Uffizi)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메디치 가의 공무 집행실로 사용되었다. 이후 메디치 가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 (Anna Maria Luisa de’ Medici)의 기증으로 미술관으로 변경되었고, 13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작품 컬렉션으로 유명하며, 2010년 기준, 연간 관람객의 규모 약 1백65만 명에 이르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오늘은 중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당시 메디치 가문은 그들의 후원으로 인한 영향이 5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질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그들의 후원이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었어도, 가문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그들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은 역사 속에서의 업적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글 | 아트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