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문득 든 생각인데,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최근에 줄어든 것 같습니다. 20세기 후반의 일입니다. 그 당시 미술의 공기를 들이마시던 사람들이라면 그를 외면하기 힘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로선 발음하기 어려운 프랑스 이름 뒤뷔페는 몰랐어도, 또 아르 브뤼(art brut)란 용어를 몰랐어도, 원시미술이란 말은 이미 익숙해진 게 그때였지요. 대학교 서양화 이론과 실기 시간에는 늘 뒤뷔페 그림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화가를 다른 몇 작가들과 엮어 원시미술의 주제로 삼은 논문들이 설익은 채로 발표되기도 했고요.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국 미술인들이 하나둘씩 퇴장하면서 장 뒤뷔페 레퍼런스도 함께 줄어들었습니다. 십여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신세계 갤러리 전국 순회전은 제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이벤트였습니다. 하지만 뒤뷔페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화가이자 조각가 중 한 사람이란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죠. 이젠 옛말이 되고 있지만 "20세기 전반은 피카소의 시대고, 후반은 뒤뷔페의 시대다"란 평가도 허튼 과장만은 아니에요.
막춤이란 게 있잖아요? 그렇다면 '막 그림'이란 말도 있을 법한데, 명사화되어 쓰는 말은 아닙니다. 장 뒤뷔페의 그림이야말로 막 그린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작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초반 작품들이 그러한데, 마치 인지력과 손동작이 덜 영근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 상식 속 미술의 격조가 그의 그림에는 없습니다. 이런 특징이 그의 작품을 인간적으로 느껴지게끔 하는 건 맞습니다.
사실 더 인간적인 건 그의 인생입니다. 어려서 미술을 배우다 말다, 작가 생활을 하다가 멈추다가, 재료도 이것저것 얼렁뚱땅, 물감에 모래나 타르와 석횟가루를 섞은 시도도 잘 알려져 있고요. 그 모든 걸 삶의 모색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작가가 아닌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고요? 죄송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장 뒤뷔페가 가진 외부자 기질은 사실 과장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건 당시 유럽 화단에서 그를 흥미롭게 혹은 가소롭게 보던 긍정과 부정의 편견이 후세에 굳어진 면모입니다.
뒤뷔페의 존재감이 드러났던 시기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는 또 한 가지가 뭔가 하면, 그의 아르 브뤼에 대한 논리 배경입니다. 원어나 한국 번역문에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설명 문구가 있습니다. "꾸미지 않은, 익히지 않은,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원초적 미술." 어떤 학자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과대평가되었지만, 구조주의를 열어젖히며 문화예술계에서 유명해진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입니다. 우리는 그가 <야생의 사고>, <구조인류학>, <날 것과 익힌 것> 같은 저작을 연달아 내며 뜬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를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불란서 비평가들은 예술작품에 레비스트로스의 대중적인 인류학을 끌어들이고 싶은 유혹을 참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게 끼워진 첫 단추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만약 여기에 머물렀다면, 장 뒤뷔페는 그저 그런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겁니다. 평론계의 찬사가 후하거나 박하거나 상관없이, 그는 새로운 시도를 펼쳤습니다. 바로 우를루프(L’Hourloupe) 연작입니다. 이 시리즈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듯한 작가의 작업 태도는 보존된 채 조형성이 한 단계 더 나아간 파격이 있습니다. 도무지 같이 놓일 이유가 없는 여러 대상이 구도나 원근법이 무시된 채로 뒤죽박죽 들어 차 있는 이미지입니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이 조합은 검은 테두리 선으로 정리가 되어, 그림을 퍼즐처럼 보이게 합니다. 작가는 이 그림을 여러 재료를 쓴 입체 조각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 작업은 1970년대를 거쳐 그의 말년까지 이어졌고, 많은 아류작의 탄생을 부채질했습니다. 초기의 아르 브뤼와 후기의 우를루프, 미술 애호가들은 어느 쪽을 더 좋아할까요? 앞선 작업에 비해 우를루프는 색이 표준화되고 선으로 정리가 된 바람에 뭔가 길들여지고 갇힌 야성 같지 않나요? 그럼 이것도 원시미술의 연장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그것의 포기일까요? 저는 딱 잘라 이야기 못하겠습니다. 그게 예술이고, 인생이니까요.
(윤규홍, 아트맵 디렉터/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