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맵 매거진 Aug 26. 2021

팀 노블과 수 웹스터 <Forever>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팀 노블(Tim Noble)&수 웹스터(Sue Webster)


TIM NOBLE & SUE WEBSTER ⓒDavid Bailey (이미지 출처 = TIM NOBLE & SUE WEBSTER 홈페이지)


 요즘 근황이 궁금한 듀엣, 팀 노블과 수 웹스터(Tim Noble, Sue Webster)입니다. 둘 다 영국 사람이고, 연인 관계라고 하죠. 지금도 그런 사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두 사람의 이름은 여전히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2018년 봄에 버밍엄에 있는 험버 스트리트 갤러리라고, 그렇게 크지 않은 화랑에서 벌인 전시가 본인들 이름을 걸고 벌인 마지막 전시였습니다. 전시 제목 <Forever>가 뭔가 의미심장한 건 저만의 느낌이겠죠?


FOREVER, PINK NEON, 2015 (이미지 출처 : TIM NOBLE & SUE WEBSTER 홈페이지)


 그때 노블과 웹스터가 발표한 작업은 전구와 네온등을 알파벳 단어를 만드는 식이었습니다. 작가 데뷔 이후 꾸준히 벌여온 이 작업은 요즘도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고 있죠. 하지만 이 작업과 다른 별도의 작품들이 이들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그들이 현지에서 직접 모은 쓰레기나 폐기물을 쌓은 더미에 빛을 비춰 그림자 형상을 연출한 시도입니다. '모은', '쌓은', '비춰', '연출한', 네 개의 동사가 하나의 미술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면 그건 예술이 될 수 없었습니다.


DIRTY WHITE TRASH (WITH GULLS), 1998 (이미지 출처 : TIM NOBLE & SUE WEBSTER 홈페이지)


 이 기발한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고 재미있어 합니다. 그러고는 곧 관객들은 "요거, 나도 만들 수 있겠는걸?"이란 생각을 품게 됩니다. 작가들은 그걸 노렸습니다. 마치 평론가 윤 모 씨가 비평을 통해 글쓰기가 고상한 몇몇의 특별 활동이 아니란 걸 독자에게 전하려는 시도와 같다고나 할까요. 글쓰기는 수월할지 몰라도, 그들의 작업을 따라 하는 건 생각만큼 만만치 않습니다. 원리가 있긴 한데요, 그림자 상이 맺히는 이차원 벽 맞은편에는 그냥 조각들의 뭉치가 아니라, 이 또한 수많은 절편의 레이어를 쌓는 식입니다.

 팀 노블과 수 웹스터의 미술은 폐품 쓰레기를 활용했으니까 정크 아트로, 그림자를 발생시키므로 쉐도우 아트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숱한 미술가들이 거기에 걸맞은 작업을 하고 있는 터라, 이들만의 작업을 가리키는 용어를 억지로라도 만들 법한데, 고맙게도 아직까진 새로운 개념어가 없습니다. 그 대신 서구 미술계에선 노블과 웹스터가 보여주는 창작 태도에서 펑크 Punk 정신을 곧잘 찾습니다.


BRITISH WILDLIFE, 2000. (이미지 출처 : TIM NOBLE & SUE WEBSTER 홈페이지)


 출세작에 해당하는 전시 <영국 쓰레기>부터 그들은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들을 도발해 왔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품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되지만, 그 표현 수위가 센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들 한 쌍이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데, 자화상 속에선 낯 뜨거운 장면이 흔하게 연출됩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영국 청년세대에 퍼져있는 서브컬처의 여러 요소가 작품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펑크라뇨. 두 사람의 반항적인 모습은 그전에 나왔던 영화 <시드와 낸시>의 주인공 남녀의 이미지와 겹칩니다. 1970년대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 Sid Vicious 와 그의 연인이 벌였던 애정행각은 영화를 통해 더 유명해졌는데, 실제로 두 미술가가 대중음악의 사고뭉치 커플의 이미지를 끌어 쓴 혐의는 꽤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1994년에 삼인조 밴드 그린 데이 Green Day가 내놓은 앨범 두키 Dookie 가 히트 치며 대중문화계는 펑크를 다시 맞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의 기본도 없이 덤비던 예전 펑크는 말 그대로 전설이 되었고, 뮤지션이 아닌 두 미술가의 경력은 같은 미술대학에서 같은 해 박사 학위까지 받을 만큼 예술의 깊이가 달랐습니다. 노블과 웹스터를 거론할 때 늘 펑크 이야기가 따라다닌다는 건 그만큼 서구의 미술 이론가들이 문화인류학과 다른 예술 장르에 관해 얄팍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지금도 팀 노블, 수 웹스터 듀엣이 미술 평단과 미술 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레퍼런스로 다뤄지고, 미술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은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쓰레기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뜻일까요? 예술도 알고 보면 쓰레기로 가득하다는 뜻일까요? 이야기를 끝내려는 지금도 어느 쪽인지 생각하고 있지만,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윤규홍, 아트맵 디렉터/예술사회학)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