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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Aug 31. 2021

찢어진 담벼락 안, 어떤 텅 빔(space)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김정인 <녹일 수 없는 이미지>


김정인, 나무에게 가는 길, 181.8x227.3cm, oil on canvas, 2020 (이미지 출처 = 이응노 미술관)


 이전에 글로 다룬 바 있는 김정인 작가입니다개인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응노 미술관 M2 프로젝트룸에 갔습니다이 전시는 2021 아트 대전으로 벌어지는 릴레이전입니다김정인 작가의 그림에 관해 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그런데 막상 신작을 대하는데 낯섦이 느껴졌습니다이건 몇 가지 중 하나죠내가 그의 작업을 실은 잘 모르거나그동안 스타일이 획기적으로 바뀌었을 수 있습니다그런 게 아니라면원래 작업이 언제나 낯섦을 감싸고 있다는 가정도 세울 수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이 평범한 재현체는 아닙니다많은 그림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상황이나 시점을 한 화면 속에 쑤셔 넣어두고 있거든요그래서 쓰인 장치가 거울입니다거울에 깨지면 맺힌 상도 덩달아 여러 조각으로 비치잖아요그리고 또 다른 거울이걸 뭐라 부르죠도로에 양편에서 오는 자동차나 사람을 잘 볼 수 있도록 세워진 볼록한 거울 말입니다그림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거울에 비친 인물상은 오손 웰즈의 1940년대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거울 방 씬에서처럼, 쪼개어져 내비치는 인물을 표현합니다붓 터치는 참신하지만거울과 쪼개진 자아 설정은 미술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입니다.


김정인, 잔해가 만든 별, 91.0x116.8cm, oil on canvas, 2021 (이미지 출처 = 이응노 미술관)


 더 재미있는 건 따로 있습니다마치 캔버스 폭을 찢어놓으니까 그 아래 또 다른 그림이 숨어있다는 식으로 상상하면 됩니다어떻게 보면 이건 마블 코믹스 <데드풀>에 묘사되는 제4의 벽처럼 펼쳐진 서사를 뜬금없이 해체하는 형식을 떠올리게 합니다주인공 캐릭터가 만화 칸을 뚫고 나와서 만화책에 관해 품평하는 건 거슬러 올라가면 우디 알렌을 거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닿겠지요물론 같지는 않아요4의 벽이나 소격효과는 창작물 속 인물이 주체가 되는데김정인의 그림 속 대상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관찰한 대상이니까요찢어진 담벼락 안에는 어떤 텅 빔(space)이 있습니다작가는 무엇을 봤고어디로 향해 가려고 하는 걸까요,

화면 색조는 실재보다 몇 단계 가라앉은 듯 침울합니다그 안에 등장하는 오브제와 캐릭터들도 그 분위기에 부응합니다바삐 돌아가는 지금에 걸맞지 않게 낡고색이 바래고부서진 것들이 그림을 채웁니다그의 그림은 마치 인플루언서들과 그 따라쟁이들이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리는 쨍쨍하고 화려한 사진 속 세계와 정반대 편에 있는 후줄근함만 수집해놓은 것 같아요.

 물론 이런 게 젊은이들에겐 힙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입니다작가도 그 세대군에 들어갈 거고요서브컬처가 예술을 지배합니다예술가가 서브컬처를 이끌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우리는 윌리엄 버로우스나 데이비드 보위가 될 수 없습니다.


김정인, 이미지 연대, 162.2x130.3cm, oil on canvas, 2021 (이미지 출처 = 이응노 미술관)


 전시장에는 작업에 관한 서술과 작가노트가 있었습니다거기엔 이미지의 용해와 해체그 이미지로 세계에 저항하고자 하는 작가 태도가 담겨있었습니다짐멜과 벤야민, 그리고 버만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초중반의 모더니티 세계관이 남겨놓은 흔적입니다작가 본인과 관찰 서술가가 소개한 그 현상과 태도는 제가 볼 땐 지금 성취하지 못한 희망사항입니다.

 이 전도유망한 화가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하지만 작업 자체에 묘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더 열심히 그려서 완벽하게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아닌 그림으로 나아갈 테다?' 작가는 그림 그리기의 대부분이 고통이란 생각을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그것은 자칫 지지부진함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그러다가 금방 사십 오십 살이 됩니다이런 모순은 작가가 극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지병과도 같습니다이게 김정인 작가만의 상황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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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규홍, 아트맵 디렉터/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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