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이미지 출처 = Martin Creed 홈페이지)
"그는 오늘날 미술계에서 항상 논쟁의 중심에 있는 작가이다." 이런 식의 표현은 많이들 쓰는 도입부죠.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에 관한 글 역시 이 기성품 문장을 넣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글쎄요. 이 영국인이 현대 미술에서 논쟁 한 가운데 늘 있었나요? 확실한 건, 2001년에 터너상을 받았을 땐 논쟁이 있었습니다. 다들 아실, 텅 빈 방에 불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5초 간격으로 반복되는 <작품번호 227>로 수상했을 때 꽤 시끄러웠습니다. 그다음엔? 큰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그를 불러들일 때마다 작은 소동이 벌어지긴 했어요. 많은 사람은 터너 프라이즈 때의 잡음이 메아리처럼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적어도 그 장소 안에서 허용되는 논란의 범위에서요. 이 작가는 이 범위 안에서 놉니다.
<작품번호 227> 말고도 유명한 작품은 많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을 다 알지 못합니다. 저는 2010년에 영국 에든버러에 있는 프룻마켓 갤러리 개인전 때 얻은 도록을 갖고 있는데요. 이것만으론 어림도 없죠. 아는 범위 안에서 제 취향은 풍선으로 공간을 채운 작업 쪽입니다. 그중에서도 파란 에어볼들을 모은 <작품 번호 628>도 많이들 봤을 겁니다. 정말이지, 간단한 재료와 구성만으로 한 장소를 완벽히 예술로 바꾸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장난 같은 그의 작업 가운데 또 생각나는 것들은 종이상자를 큰 것부터 작은 것들을 탑처럼 차곡히 쌓은 작품입니다. 선인장 화분을 크기순으로 쫄로미 줄 세운 작품도 같은 맥락 속에 있고요. 작가는 별의별 것들을 다 쌓고 포개어 왔습니다. 반복이 주된 개념일 건데, 그림도 엇비슷하게 그려서 일렬로 디스플레이하는 방식이라든지, 종이를 접었다 다시 펴서 붙여놓고 작품이라고 우기는 작업도 그가 무명작가 시절부터 벌여 왔습니다.
알파벳으로 DON’T와 WORRY라고 된 네온등을 작품도 꽤 알려졌죠. 이 연작을 보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몇몇 자료를 보면 "걱정 마"라는 발언이 관객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선사한다고 소개합니다. 모르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Be Happy"를 떠올렸습니다. 마틴 크리드만큼 갑자기 등장했던 천재, 바비 맥퍼린이 <Don't Worry, Be Happy>로 음악계를 휩쓴 게 1988년이었습니다. 마틴 크리드에겐 존재하지 않은 기호까지 능글맞게 다루는 재주가 있습니다. 생략과 절제의 농담이랄까요.
마틴 크리드의 작품 리스트엔 비교적 멀쩡한 그림도 있습니다. 간단한 붓질로 그린 인물화들은 딴 미술가라면 모르는데, 워낙 엉뚱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얌전히 그린 거라 되려 웃깁니다. 아크릴 물감으로 선을 주욱 그어 추상화라고 부를 만한 작품도 여러 점 발표했습니다. 이쪽 계통의 화가들이 '어린 애들도 그리겠다'는 대중의 평가에 얼마나 부단히 맞서 왔습니까? 내 생각에, 그 그림은 마틴 크리드가 추상작가들이 지닌 과잉된 자의식을 꼬집는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은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하나의 상황 안에 의미가 굉장한 밀도로 채워진 것도 있습니다. 순백의 공간에 한 사람이 구토하고, 관객 누구에게나 그 장면 촬영이 허락된 작품도 유명하지요. 보는 우리도 비위 상하는, 이 작품의 번호가 503이군요. 성인이라면 누구나 몇 번씩은 과음 끝에 토악질하는 경험을 해봤을 텐데요. 싫지만 그때를 떠올려 보렵니다. 술자리에서의 구토는 곧 그날의 패배감으로 이어집니다. 분출의 고통은 에로틱한 쾌락의 배설과 반대편에 놓입니다. 그 짧은 순간에 이 세계는 열패감에 휩싸인 자신과 그 나머지 것들로 양분되죠. 이처럼 마틴 크리드의 작품은 세계의 일부지만, 어느 순간만은 전부가 되는 형식논리학의 질서 속에 배열됩니다.
이쯤이면 악취미나 썰렁함은 기발함과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예술적인가는 별도의 문제고요. 그를 탓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작업이 방만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반찬을 제대로 집어 먹지도 않고 수저로 여기저기 들쑤시는 모양새 같아요. 그 때문인가, 그는 작품들 제목마다 번호를 매깁니다. 순수 음악이 종종 그렇잖아요? 클래식에서 후대 연구자들이 한 작곡가의 음악을 분류하는 기능의 목적과 달리, 마틴 크리드가 보여주는 집착은 음악적 망상에 다가섭니다. 그의 작업 곳곳에서 드러나는 음악의 요소는 반세기 전에 벌어져 이젠 김빠진 기념품이 된 플럭서스 운동을 돌이켜 보게끔 합니다. 박제 같은 예술 융합도 마틴 크리드에겐 또 하나의 작업 오브제인 걸까요?
그가 이 세계 안에서 여기저기 쪼아댄 미술의 실천에는 통쾌한 부작용 한 가지가 따라붙습니다. 그건 바로 예술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놉들에게 한 방 먹이는 효과입니다. '미술가 누구라면 어떤 작품' 식으로 책 몇 줄, 인터넷 몇 분으로 전부를 섭렵한 줄 아는 심미적 지적 속물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마틴 크리드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면, 한두 가지는 자신있게 말하겠지만, 그다음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비틀즈의 어떤 곡을 좋아하냐 물을 때 렛 잇 비, 예스터데이 이 정도밖에 대답 못 한다면 그 사람은 비틀즈를 모르는 거잖아요?
(윤규홍, 아트맵 디렉터/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