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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Nov 10. 2021

자연을 담은 한복의 아름다움

《담채, 빛으로 담아 채우다》


복식(服飾)은 삶과 문화, 사상과 미의식이 반영된 산물로 그 시대와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 중 한복은 한국의 전통복식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미를 추구한 한국인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미의식을 확인 할 수 있다. 현시대에 한복은 문화연구라는 고답적 방법론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와 삶에 대한 문화콘텐츠로서의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문화컨텐츠란 문화의 원형 또는 문화적 요소에 담긴 의미와 가치, 잠재성, 원형성 등을 찾아내어 매체와 결합하는 것으로, 복원과 재현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활용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본 전시인 《담채, 빛으로 담아 채우다》 이러한 문화콘텐츠의 실천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복은 한국의 미(美)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통 복식이며, 우리의 문화와 역사의 서사성(narrativity)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 한국의 미에 대한 연구는 1920년대부터 안드레 에카르트, 고유섭, 김원용, 최순우, 조요한 등 많은 미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한국적 미학의 특징은 바로 자연미(自然美)로 이는 자연과의 조화, 대상의 본질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노장(老莊)의 ‘무위자연’과 불교의 ‘그대로(yathabhutam)’의 철학에 뿌리를 두었던 한국의 미는 인위를 거부하고 자연을 모태로 하여 자연에서 미를 발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자연스러움을 중요시한 한국인의 정서는 소박하고 고담하며, 원만하고 우아하다. 동적인가 하면서도 정적인 우리 민족적 정서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자연한 곡선과 빛깔로 이루어진 한복일 것이다. 한복의 유연한 깃과 도련, 배래 등에서 곡선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상징적 색채인 소색(素色)은 단아하고 우아한 멋으로 자연의 미감을 보여주고 있으며,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따른 오방색(五方色)은 상생과 상극의 원리에 따라 인간과 우주의 생성과 화복(禍福)을 반영한다. 




전시의 각 공간은 빛의 확산, 여과, 반사를 통해 한복의 아름다움, 전통, 새로운 시각, 전통과 현대와의 연속된 시퀀스(sequence)를 형성한다. 제1전시관 조화관에서는 고증 한복을 통해 한복의 고유함과 전통성을 확인 할 수 있다. 태조 어진에 나타난 청색 곤룡포와 복은 공주의 홍색 혼례복은 복도 끝에 마주보고 있는데, 조명의 빛과 어우러져 전통 한복의 위엄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제2전시관 나리관은 일상 한복들을 다양한 색의 조명과 선보인다. 한국적 정서가 담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색채의 한복은 조명과 뒤섞여 담백하고 은근한 품위를 자아낸다. 문양을 복식 전체에 장식하여 착용자의 신분과 위엄을 강조한 1관의 화려한 궁중복식 또는 의례복과 달리, 일반 한복의 경우 저고리의 깃, 끝동, 치마단 등 일부에만 문양을 장식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미적 효과를 추구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확인 할 수 있다.




제3전시관인 순백관은 전통 한복에 현대 디자인을 접목하여 한복을 재해석하였다. 전통 한복의 색감과 곡선미를 현대적 소재와 디자인으로 재구성한 한복은 한국적 정서를 가진 새로운 한복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제4전시관의 담채관은 한복 소재로 특수 설치된 스크린에 전시의 주제를 포괄하는 영상이 맵핑 형식으로 상영된다. 한복 소재에 투영된 영상은 수묵적 공간과 채색적 공간을 통해서 전통과 현대의 시공간적 초월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전시장에서의 빛은 단순히 대상을 비추는 밝음이 아닌 한복 고유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선과 질감을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하며, 공간은 한복의 아름다움과 함께 빛을 담았다. 대상에 부여되는 빛은 그 상태와 광선 등의 특성에 따라 실체를 가시화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람자의 감각에 영향을 준다. 즉, 빛은 비물질적 실체로 빛을 받는 소재와 형태 및 제반 조건들과 상호 작용하여 조형적 측면에서 시각적 효과를 배가시키고, 관람자와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빛과 한복의 조화가 어우러진 본 전시는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인 미감을 확인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서 우리 고유의 한복의 전통과 그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야갈 것인가. 엘리어트(T.S. Eliot, 1888~1965)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통이란 상당히 넓은 의미의 문제이다. 그것은 저절로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원할 때 당신은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우선 역사적 감각과 관련돼 있으며 또 우리는 그것을 아무에게나 나누어 줄 수도 없다. 역사적 감각이 하나의 지각이며 과거의 과거성일 뿐 아니라 과거의 현재성이다.”




전통은 지난날의 복귀가 아니다. 외부의 변화에 적대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정신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포착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전통미를 키워 나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전시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한복의 미의식과 전통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전 세계에 한류 열풍이 고무된 가운데,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복(hanbok)이라는 단어가 새로 등재된 사실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이는 한국적 정서와 우리의 문화형성력이 세계를 헤치고 나갈 힘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담채, 빛으로 담아 채우다》는 한복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인식하고 한국적 아름다움을 반추함과 동시에 현대적 활용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복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글, 마승재 (예술철학, 아트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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