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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Aug 31. 2022

내 마음의 패턴

(The Pattern of My Mind)

연애일기 전시 전경 (제공: 부산문화재단)


 ‘교환 일기’라는 프로그램 명 하에 부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장애 예술인 창작 공간, ‘온그루’의 작가들은 창작 과정 속에 담긴 개개인의 이야기를 ‘일기’에 비유하며 ‘대화’, ‘취미’, ‘상상’ 등의 세 개의 키워드를 상정하여 풍성한 담론을 일구어 내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 이를테면 평범한 풍경이나 동, 식물, 그리고 사물 등이 작가에게 말을 걸어와 하나의 의미가 되고 결국 시각적인 결과물을 형성하게 하는, 그리하여 전시와 워크샵의 형식으로 관객과 호흡하며 또 다른 의미를 만들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작가들은 대화와 취미, 그리고 상상의 범주로 분류하여 어떻게 예술이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 중 세 번째 기획전인 ‘연애 일기’는 자신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풍경이나 사물을 재해석하고 시각화하는 작가 천수민, 김지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두 작가는 다른 이들이 간과하기 쉬운 일상 속의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대상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일상 그 자체로 만든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희망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동물, 나무, 음식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소재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애정을 담아 작품으로 표현한다. 늘 가까이 있어 지나치기 쉬운 대상 속에 깃든 행운과 행복을 강조하여 작품화하는 것이다. 또렷이 우리를 응시하는 동물의 시선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내기도 하고 분홍, 연두 등의 따뜻한 색감의 마카롱이 전해 줄 수 있는 소소한 행복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매일의 기록인 일기처럼 자신들에게는 사유와 명상의 결과물이 되기도 하지만 이들의 비밀스러운 애정을 공유하는 관객에게는 행복과 행운을 이야기하는 뜻밖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치유와 행복을 전해 주는 힘이 그림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창작의 고통을 거친 예술 작품 하나가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결국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연애 일기’ 전은 고스란히 확인시켜 준다. 일상을 채워 주는 작업 과정 자체가 자신들의 생활 속의 하나의 중요한 의식이 되고 그렇게 하나의 큰 부분으로 자리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은 이들의 마법과도 같은 치유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은 또한 작품과 연결되는 워크북으로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인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참여자들은 자신들만의 연애 일기를 완성한 후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함께 만들어 간다. 전시 관람과 연계 프로그램인 셈인데 이들의 예술이 혼자만의 독백에 그치지 않고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조그마한 하나의 반향을 일으키고자 하는, 이들의 작가적 태도와 연관이 있다.


천수민, 고양이와 바다, 2020


 천수민 작가는 고양이나 선인장 등의 동, 식물의 형상을 주된 이미지로 채택하여 자신만의 색채와 패턴으로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 가는 작가이다. 고양이의 털을 묘사하느라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쓴 점묘를 쓰기도 하고 채도가 높은 색을 이용하여 화면에 생기를 더한다. 작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인적 특성으로 인해 사납게 짖는 개 보다는 조용하면서도 어느 샌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고양이에 애정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굵은 선묘와 다소 비현실적인 색채로 표현된,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고양이 형상은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우리 개개인의 인간처럼 특별한,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고양이의 개성을 어필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작가가 성실히 그린 선인장 그림은 다소 어두운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후에 꽃을 피우는 선인장의 특성처럼 결국은 우리에게 찾아 올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정한 규칙과 패턴을 가지고 있는 선인장의 질서와 조화는 작가 자신이 바라는 자유로우면서도 완전한 유토피아에 관한 투영이다. 작가는 2015년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마카와 색연필 등의 드로잉 위주의 매체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아크릴 물감을 통해 빨강, 주황, 에메랄드 그린 등의 채도가 높은 색을 연구한 흔적을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색을 다루는 태도에서도 다소 평면적이고 자유분방한 터치를 보인다. 그는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한 후 그 스케치를 토대로 하여 캔버스 위에 젯소를 바르고 채색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어떤 그림들은 한 달이 넘는 작업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림 위에 빼곡히 박혀 있는 패턴화된 점묘는 매일 작업을 한다는 작가에게 그림이 곧 명상이거나 일기, 혹은 기도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커다란 생활의 한 부분이요,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작가적 태도에 대해 호소하는 것만 같다. 글쓰기가 취미라는 작가에게 그림이 갖는 의미 또한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분석하고 확인하게 해 주는 글쓰기의 논리화와 의미화의 과정을 즐기는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각적 형식을 뛰어 넘는, 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담아 내는 그릇인 것이다.


김지윤, 행운나무새3, 2022


 김지윤 작가 또한 일기를 쓰듯 매일 작업을 한다고 한다. 작가는 클로버, 새와 나무, 마카롱 등 행운을 상징하는 여러 동, 식물과 사물 등을 그린다. 힘든 세상을 살아 내는 자신과 우리 모두의 염원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 내기라도 하듯 성실히 작업에 임하는 작가는 동부산대 생활도예과를 졸업하고 보다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특수 아동학과에 다니며 학업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천수민 작가와 마찬가지로 도예를 배운 경험의 흔적이 회화 작품에 잘 녹아 있는데, 그릇, 접시 받침, 화분 등을 성실히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에도 행복한 패턴을 한 땀, 한 땀 수놓듯 이어 간다. 흔한 마카롱, 나무들이 어떻게 행복감과 위안을 주는 무엇으로 둔갑하는 것일까?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는 새와 나무, 행복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마카롱 등은 실은 그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에메랄드 빛과 보랏빛, 혹은 작가가 특히 좋아한다는 보랏빛과 분홍빛이 무수히 병치되며 만들어 지는 초록 열매, 붉은 꽃, 주황빛 씨앗 등인데 그 수많은 색점을 겹치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완벽한 모양의 새와 나무의 형태나 실제의 마카롱과 똑같은 색채의 구현 등이 중요했을까? 수많은 시간의 흔적인 작품을 보며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다른 이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림의 요소들이 무의미해지는, 자신이 곧 그림 자체가 되는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향연을 경험한 시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연애일기 전시 전경 (제공: 부산문화재단)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하는 루마니아의 화가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는 “모든 그림이 추상이다. 나는 형상을 믿지 않는다. 재현을 시작하는 순간, 무언가를 묘사하려는 의지를 갖는 순간 그림은 죽은 것이 된다. 이러한 시점이야말로 자신의 손으로 그림을 죽게 만드는 때이다. (Every painting is abstract. I don’t believe in figurative. As soon as it starts to imitate, to depict something, then a painting is dead. This is the moment when you kill painting.)” 라고 말한다. 구성(composition) 자체가 재현적인 그림들은 많겠지만 그림의 힘을 결정하는 것은 표현 효과이지 그림이 가리키는 특정한 대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나무를 그리려 할 때 우리는 곧 나무의 모든 잎사귀를 그리는 일이 불가능함을 곧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심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나무를 암시하는 하나의 움직임을 평면 위에 구사하게 되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추상’이라는 것이다.


 김지윤, 천수민 작가 역시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새와 나무, 고양이 등의 이미지를 일정한 패턴과 색으로 표현하여 자신이 그림을 통해 받는 위안과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지 그 요인이 새와 나무, 고양이라는 대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선인장, 고양이, 마카롱 등의 이미지로 출발하지만 결국은 점을 찍거나 채색을 하는 등의 본능적 행위와 효과를 통해 자신의 의식을 형식화하며 그러한 과정이 더욱 의미 있는 행위의 예술이 되는 것, 삶과 예술이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그림은 그리는 이와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예술의 이러한 역할과 의미에 무감각해 지기 쉬운 요즘 같은 나날들 속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순수한 몸짓, 열정, 목소리가 천수민 작가와 김지윤 작가의 그림 속에서 폭발하고 있다. 그들의 다음 행보가 추상이든, 구상이든, 그것은 그들의 순수한 마음 속의 지형도이며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사하는 하나의 풍경일 것이다.



글 | 김윤경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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