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분명 긴 연휴인데, 왜 이리 짧게 느껴지는지! 설날을 보내는 동안 아마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이 '임인년'일 것 같습니다. 임(壬)이 흑색,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하는 '검은 호랑이의 해'. 육십 갑자 중 39번째를 차지하고 있죠. 임인년을 맞아, 호랑이를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거장들이 그려낸 호랑이의 모습은 어떨까요?
호랑이는 우리 민속에서 산군자(山君子), 산신령 등으로 상징되면서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靈物)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 등 친근한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호랑이는 조선시대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입니다. 소나무 아래 용맹한 호랑이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마치 털의 촉감이 느껴질 정도로 수준 높은 필력을 자랑합니다. 김홍도는 호랑이 털을 바늘처럼 가늘고 빳빳한 붓으로 수천 번이나 그어 세밀하게 표현해냈다고 하는데요. 극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호랑이의 생명력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송하맹호도>가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여백으로 인한 균형과 조화 때문입니다. 그림의 상단부에 등장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이시나요? 소나무의 굵직한 둥치가 좌상 구석을 메우며 비스듬히 솟아있고, 우측 하단을 향해서는 얇은 잔가지 하나가 뻗어있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상단의 여백을 채우고 그림에 전체적인 무게를 더합니다. 또한 우측에서 좌측으로 갈수록 공간이 점점 커지는 하단부의 여백은 관람하는 이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호랑이는 용맹함과 강인함을 지닌 동물로 대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호랑이를 그려낸 작품에서도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데요. 폴 루벤스 Paul Rubens 의 <The Tiger Lion and Leopard hunt> 를 좀 보세요.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저 흉포한 눈동자를 마주한 이들은 꿈쩍도 못하고 굳어버렸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다지 무섭지 않은 듯한 호랑이도 있습니다.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가 그려낸 <Fight between a Tiger and a Buffalo> 속 호랑이. 왠지 허공을 바라보는 듯 가늘게 뜬 눈과, 사뿐히 내려앉은 - 왠지 찰랑이는 듯한 갈기. 버팔로와 싸우고 있는 상황의 긴박함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귀여워보이지 않나요?
호레이스 피핀 Horace Pippin 은 흑예 노예 출신 가정에서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간 화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난한 환경 탓에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피핀은 쉬지 않고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팔을 부상당했음에도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로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해, 미국 미술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The Blue Tiger> 속 사납게 벌려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두 다리로 굳건히 땅을 디디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의 호랑이도 마치 피핀의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가 녹아들어 있는 것 같네요.
인간의 추함보다는 오염되지 않은 동물의 순수함에서 영감을 받은 화가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그는 작품에 감정을 투영하고 정신적인 깊은 반향을 전달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주의, 미래파 등 근대의 광범위한 미술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는데요. 무엇보다 단순한 형식과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개성적인 표현으로 그려낸 호랑이가 매우 매력적이네요.
미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사무엘 에르하르트 Samuel Ehrhart. 그의 작품 <The tiger's Prey>는 호랑이가 도시의 어둠을 헤치고 먹이를 물색하는 포즈가 인상 깊습니다. 한 번 잡은 먹이는 절대 놓칠 것 같지 않은 날카로움이 돋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롭고 쓸쓸해보이기도 하네요.
고상우 작가의 <운명> 작품은 2022년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 설치되기도 했는데요. 위 작품은 2019년 사비나미술관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전시에서 선보였던 <Destiny> 입니다. 작가는 원본 사진과 보색으로 나타내는 네거티브 필름에 작가의 의도를 담아, 색을 한 번 더 반전시켰다고 합니다. 마치 꿈결 속에서 마주친 듯한 몽환적인 이미지, 그리고 강렬한 색채는 호랑이의 존재를 독특하게 인식하게 만드는데요.
고상우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사살된 600마리의 호랑이에 주목했고, 동물의 몸에 그려진 하트와 나비는 마음, 심장, 사랑, 희생, 생명을 뜻하며 그들도 인간처럼 영혼을 가진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했습니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 호랑이 하면 생각나는 가장 유명한 문구가 아닐까 싶은데요. 전세계인이 모두 아는 시리얼 슬로건처럼, 2022년 임인년은 호랑이의 기운을 담아 더욱 힘차고 강인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 | 아트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