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안녕하세요, 아트맵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전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혹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방문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청계산, 관악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반영해 '자연 속 미술관'을 모토로 하고 있는 가족·자연 친화적 미술관입니다. 특히 미술관 2층과 3층 사이 야외공간에 위치한 원형옥상은 둥글게 트인 하늘과 주변의 자연 경관을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인데요.
개관 이래 별도의 용도로 활용된 적은 없었던 이 원형옥상에서, 이번에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가 기획되었습니다. 바로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님이 참여한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 - 느리고 빠른 대화》.
황지해 작가는 정원 디자이너이자 환경 미술가로,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식재 연출과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담은 프로젝트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정원을 원예와 조경의 한계를 넘어, 더 다양한 가치를 지닌 예술로 확장시키고자 합니다.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에서 창작의 의지를 찾으며,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고유한 종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정원을 이야기하는 황지해 작가. 원형정원 프로젝트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작품명인 <달뿌리 - 느리고 빠른 대화>는 대한민국 전역의 하천가에서 자생하는 '달뿌리풀'에서 따왔다고 하는데요. 동시에 원형정원이 자리한 건물의 원통 형태가 식물의 줄기와 유사하다는 데에서, 정원이 하늘의 달을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장소인 원형정원은 2원형전시실 내부에 위치하면서도 둥글게 트인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야외공간입니다. 자연에 조성된 인공지반인 과천관,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세워진 자연 - 원형정원. 건축가 환경이 만나는 공공장소라는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 정원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자 인간의 생활로 들어온 자연이라는 점에서 삶, 문화, 자연을 매개하는 장소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로 조성된 식물 군락은 건축으로 분절된 주변 생태와 과천관을 연결하고 자연-자연, 인간-자연, 인간-인간을 이어주는 화합의 장으로 확장시킬 것입니다.
원형정원을 둘러싼 관악산과 청계산의 능선은 정원과 하늘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됩니다. 작가는 미술관을 둘러싼 주변 산야의 식생을 정원의 가장 주된 재료로 사용하였는데요. 한반도의 자연환경에서 적응하며 진화한 자생의 식물군으로,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원초적인 상태를 재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땅 생태의 일부가 정원에 옮겨짐으로써, 황지해 작가는 종의 보존과 우리가 가진 유전 자원의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원형정원의 식물은 주변 산에 서식하는 새와 곤충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식량 창고이자, 나비의 산란장이 되기도 합니다. 생명의 산실이자 공동 서식장소인 이 정원은 우리가 지금 생각해 보아야 할 자연과의 공생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죠.
야외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식물들이 건네는 느리고 빠른 대화에 귀 기울여 보세요. 작가는 관람객들이 더디게 흘러가며 끝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무한한 시간성과 순간순간 변화하는 자연의 찰나를 체감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형정원 프로젝트는 2023년 말까지 약 2년에 걸쳐 운영되어 과천의 사계절 생태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동하는 자연의 순환 과정을 미술관에서 즐기다니, 금방이라도 출발하고 싶어 몸이 들썩이지 않나요?
앞서 원형정원 프로젝트의 주된 재료가 주변 산야의 식물들이라고 소개드렸는데요. 더불어 멸종위기 야생식물 몇 종도 포함되어 있어, 간략한 식물들의 정보를 알고 가는 것도 관람에 있어 큰 재미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단양쑥부쟁이(Aster altaicus var. uchiyamae), 섬개야광나무(Cotoneaster wilsonii Nakai), 큰바늘꽃(Epilobium hirsutum L.)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섬개야광나무의 경우 울릉도에만 분포하는 우리나라의 고유종이라고 하니 꼭 만나보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인간의 활동이 잠시 멈추면서 훼손되었던 자연물들이 하나 둘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의 활동이 시작된다면 다시 훼손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으로 모두가 지쳐 있는 이 때, 자연의 곁에서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는 것은 무척 좋은 휴식의 한 갈래가 될 겁니다. 다만 우리가 관람하는 이 전시에 멸종위기 생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과 공생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원형정원 프로젝트는 2023년 12월 17일까지 이어집니다. 이번 주말, 시간을 내어 친구 혹은 가족과 방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 아트맵 에디터 이지민
자료 | 국립현대미술관,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