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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Jan 19. 2021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사토 하루나 佐藤令奈


 당연히, 귀엽다. 사토 하루나(佐藤令奈)의 갓난아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여기에는 아기의 따뜻한 체온과 보드라운 살결이 화폭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게다가 옹알이하는 소리, 파우더 향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작가는 우리가 아기들을 떠올릴 때 가지는 그러한 공감각적(共感覺的) 요소를 그림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림 속 아가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냐는 것보다 그림을 보는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사랑스러움을 끄집어낸다는 점이다.


사토 하루나, Soft and warm Ⅵ, 패널에 유화, 65.8 cm x 90.6 cm , 2009


 그녀의 작품 속 아기들은 너무나 어린 탓에 스스로가 예쁘거나 귀여운 것을 알 리가 없다. 그 무심함은 오래 가지 못한다. 만약 더 자란 아이들이나 어른이 화가의 시선 앞에 선 경우라면 자신이 가진 매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표정과 몸짓, 각도와 옷차림새로 자신을 꾸밀 것이다. 어린 아기들은 그런 자각적(自覺的) 주체가 아니다. 작가는 거의 전능(全能)한 시선으로 아기들을 관찰한다.


사토 하루나의 작품에서 아가들이 그려진 구도는 부모들이 찍는 흔한 사진과 조금 다르다.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에는 얼굴이나 손처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도 있다. 반면에, 몸의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확대해서 그린 탓에, 어떤 부분인지 언뜻 식별이 어려운 그림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작가의 시선에서 예비 인격체로서의 아기가 아닌, 유아기라는 유기체 생명 현상에 집착하는 강박증으로까지 읽혀진다. 그래도 우리의 관용적인 판단으로는 작가의 회화적 실험이 아이들 개개인에 대한 애착(愛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일반화된 본질에서 출발했다고 보인다.


사토 하루나, Warm and Soft


 그녀는 아기와, 그 아기를 품은 엄마라는 거의 고정된 소재를 가지고 약간씩의 변화(variations)를 두어 세세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일관된 이미지를 강조하기에 충분하다. 잠든 아기의 조용한 숨결, 느리고도 어설픈 몸부림, 권태롭지만 동시에 경이롭기도 한 대비(對比)를 우리는 사토 하루나의 그림에서 발견하다. 이럴 때 관객들에게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한다. 시시콜콜한 문제이긴 하지만, 한 편으로 보자면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작가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작욕이, 만약 미래에 그녀가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가진다면 작품의 방향은 어디로 흘러갈까?'


 작가가 여성이기에, 생물학적 성차(性差)의 환원론이라는 게으른 선입견으로 작가의 작업 동기가 모성애적인 이끌림으로 갓난아기의 순수를 칭송하는 걸로 단정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처럼 단순하게 넘겨짚고 싶진 않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딸로 이어져 오는 모성만큼이나 사토 하루나 작가에게는 그녀에게 예술적인 기법이나 영감을 전한 미적 계보가 있다. 또한 수 없이 많은 습작을 통해 쌓은 기교는 그 자체만으로 지금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온기와 감촉을 그림 속에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이 점이 우리들, 그리고 아마도 다음 세대의 관객들이 그녀의 회화에 매혹 당할 가장 큰 부분일지도 모른다.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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